사람들이 기억 못 하는 '금강산' 단신 기사, 지금 읽으면 충격인 이유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고, 이런 기대감은 높은 국정 지지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정 지지도의 배경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다.
사반공배(事半功倍)라는 말이 있다. 전임자가 엉망이면 일을 반만 해도 공은 두 배로 돌아온다는 표현이다. 3년 동안 입을 열면 허언이고, 대답하면 동문서답이며, 밖에 나가면 사고를 치고 안에서는 놀기에 바빴던 전임 대통령에게 지치고 실망한 국민이 후임 대통령에게 보내는 박수는 일시적일 수 있다. 초반에 하는 작은 실수 몇 개가 쌓여 사배공반(事倍功半)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성과는 없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안타까웠던 노무현의 길이다.
교육부 장관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국민통합비서관 지명과 임명을 지켜보며 나는 새 정부 출범에 걸었던 여러 기대 중에서 몇 가지는 반쯤 포기했다. 입시 준비나 취업 준비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학교, 성 정체성이나 나이, 사는 지역을 불문하고 차별이 적은 사회, 그리고 상식을 집어던진 극우세력이 사라진 '진짜 대한민국'을 보리라는 꿈은 반쯤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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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3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신청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확정했다. 사진은 2006년 8월 촬영한 금강산 상팔담 |
| ⓒ 연합뉴스 |
"금강산에도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국내에서 성업 중인 미국계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 체인점 '브라운 & 빈(Brown & Bean)'이 금강산 온정각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문화일보> 2004년 5월 7일 자 경제면에 실린 단신 기사다. 이런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TV 뉴스 헤드라인이나 신문의 머리기사로 등장하지 않고, 일간지 단신으로 전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남북 교류를 주도하고 있던 현대아산의 발표에 따르면 이 커피 체인점은 북에 생긴 최초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었고, 미국에서 직접 원료를 들여와 만든 10여 가지 커피를 팔고 있었는데 젊은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커피 한 잔에 3달러였다. 남북 교류를 주도하고 있던 현대아산 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온정각에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처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글로벌기업의 매장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북측이 이런 매장의 유치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소식이 단신으로 다루어질 정도로 20년 전의 남북 관계는 풍성했고, 통일에 대한 희망은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었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남북관계는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식었다. 2016년 개성공단은 가동이 완전히 중단되었고, 2020년에 북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관계에 완전한 공백도, 완전한 대화도 있었던 적은 없다. 늘 불안했고, 늘 불투명했다.
2004년에 나타났던 이런 희망적인 남북 관계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백에 가까운 단절, 파국이 예상되는 갈등, 그리고 아슬아슬한 대화 노력이 반복되고 쌓여서 만들어진 희망의 징표였다.
6.25전쟁 이후 20년간 끊겼던 남북이 다시 만난 것은 박정희 시대 중반이었다. 1972년 7월 4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통한 통일을 위해 협력할 것을 선언하였다. 물론 실천 의지는 전혀 없이 행해진 정치적 위기 극복을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중단되었던 남북 교류를 회생시킨 것은 수해였다. 1984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에 많은 비가 내려 사망 189명, 실종 150명, 재산 피해 2502억 원, 이재민 23만 명이 발생했다. 9월 8일 북한적십자회는 방송을 통해 남한에 쌀 5만 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 톤, 그리고 의약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하였고, 대한적십자사가 제의를 수용했다.
예상하지 못한 제의였고, 예상하기 어려운 수용이었다. 9월 29일부터 10월 4일 사이 지원물자가 수륙 양 통로로 남에 전달되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남은 전자제품, 손목시계, 양복 원단 등을 북에 전달했다. 북이 보내온 시멘트는 당시 건설 중이던 88올림픽고속도로 포장에 사용되었다. 이해 11월에는 남북경제회담, 1985년 9월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예술단의 교환공연이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여덟 차례의 남북 고위급 회담과 국제 스포츠대회 공동 참여 등 다양한 남북 교류가 이루어졌다. 1993년에 북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장애물이 있었지만 김영삼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북에 송환했고,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북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과 남의 조문 불허로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김정일 시대에도 대북 쌀 지원이라는 긍정적 이벤트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는 부정적 사건이 교차했다. 북은 고난의 행군을 맞았고, 남은 외환위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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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만남을 그린 현수막이 걸려 있다. |
| ⓒ 유성호 |
이런 파란만장한 경험을 딛고 등장한 것이 북 최초의 테이크아웃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역사는 계획이나 예측한 대로 되는 것보다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에 최초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등장했던 2004년에는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우리나라 영화 역사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Grand Prix)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유명한 경구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였다. 박찬욱 감독이 외국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우연히 머그컵에 써있던 문장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은 19세기 시인 엘리 윌콕스의 시 '고독'의 첫 구절이었다. 그는 그 문장이 시라는 것조차 몰랐지만, 그 문장이 주는 냉소적 뉘앙스를 살려 영화를 만들었다. 우연이 만든 기적이었다.
반면 2004년 같은 해에 오랜 기획을 통해 만든 상품이 실패를 안긴 사례도 있다. 스타벅스는 메뉴판에 '음악'을 추가했다.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다가 6.99달러를 내면 듣던 곡 중 다섯 곡을 골라 CD에 담아갈 수 있는 '스타벅스 뮤직카페' 1호점이 미국 산타모니카에 오픈했다. 이후 잠시 확장되던 뮤직카페는 아이튠즈의 등장과 CD 시장의 몰락으로 4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착실한 기획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우리나라가 당한 수해를 보고 북에서 쌀이든 시멘트든 구호물자 제공 의사를 전해오기를. '두 국가론'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조용하다. 휴전 이후 72년간 만났던 많은 장애물에 비해 두 국가론은 결코 장애물일 수 없다. '두 국가론'을 넘어 평화의 길로 가는 우연한 기회가 벼락같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인문학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동아일보><문화일보><중앙일보> <경향신문> 2004년 커피 관련 기사 일체.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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