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14박 15일, 이순신이 구례에서 만났던 이 사람
구례는 의외로 이순신과 관련이 깊다. 이순신의 정유재란 전략과 전술은 구례에 머무는 동안 다듬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회에는 구례 현감 이원춘의 활약상을 써보려 한다. <기자말>
[정동묵 기자]
지난 5월 말 새벽 6시 반, 나는 명협정(蓂莢亭) 2층 마루에 고즈넉이 앉아있었다. 희붐한 먼동이 트고 동쪽 지리산에 여명이 밝자 구례의 주산인 봉성산 기슭에서 잠을 자던 초록도 발그레한 볼로 잠에서 깬다. 참 평화로운 아침이다. 이제 나라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국민도 불안했던 지난 3년여를 뒤로하면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나라란 본디 이래야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나라란 나라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어느 사상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자고이래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때는 늘 그러했다. 국민 뒤에서 호위 무사를 자처하지만 국민에게는 드러내지 않는.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의 조선 역시 그렇지 못했다. 나라는 전란에 휩싸였고, 능력 없는 왕은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에만 골몰했다. 수렁에 빠진 나라를 어찌 구할 것인가 방법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옥좌를 보전하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 아들인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까지 시샘의 대상으로 삼기 일쑤였다.
|
|
| ▲ 하동에서 구례 피아골 입구를 지나 구례 읍내로 들어오는 19번 국도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장소다. 2024년 9월 1일. |
| ⓒ 김인호 |
|
|
| ▲ 이순신이 말을 타고 건너다니던 구례 신촌마을 앞 잔수진. 구례 구간의 섬진강은 여기서부터 범상치 않게 태극 모양으로 흐른다. 2025년 5월 23일. |
| ⓒ 한상무 |
그는 이튿날 순천으로 가기 위해 곧바로 길을 나섰다. 초계 본부에 있던 권율이 전장 시찰 차 순천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도원수의 배려 아래 그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군관과 조우하고는 전황과 안부를 묻고 들었다. 1593년 8월(음력 7월) 전라좌수사였던 장군은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겼다. 이를테면 부산에 본진을 꾸리고 있던 왜군을 압박하기 위한 전진 배치였다. 그 뒤 한산도를 본부로 삼아 수많은 승전을 올리며 기세를 올린 바 있었다.
약 4년 만에 제2의 고향과 같은 순천에 들어와 여수, 순천, 보성, 고흥 등 인근의 소식을 군관들로부터 들으면서 그는 향후의 작전 계획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알아둘 것은, 백의종군이라는 것이 이등병으로 강등되거나 아예 옷을 벗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미 함경도에서 벌어진 1차 녹둔도 전투 이후 백의종군을 경험한 바 있었다. 당시에도 선조가 백의종군을 명했지만 그는 2차 녹둔도 전투로 전과를 올리면서 복직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이순신은 언젠가 다시 등용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며 그때를 대비해 치밀하게 전황을 따져봤을 것이다.
|
|
| ▲ 장군은 순천에서 구례로 넘어오면서 송치재 인근 바위에서 낮잠을 푹 잤다. 2025년 5월 23일. |
| ⓒ 한상무 |
18일간 순천에 머물던 그가 다시 이 고개를 넘어 구례로 들어온 건 6월 28일(음력 5월 14일)이다. 그는 고개를 넘기 전 순천 학구리 근처에서 말을 매어 놓고 바위 위에 누워 곤하게 잠을 잤다. 매일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 전황을 듣고 앞날을 도모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러고는 저물녘 이르러서야 구례 손인필의 집으로 돌아왔다.
|
|
| ▲ 장군과 구례 현감 이원춘이 수많은 우국 이야기를 나눴던 명협정. 2025년 5월 23일. |
| ⓒ 한상무 |
15일(양력 6월 29일) 비가 오다 개다 했다. (중략) 관아의 띠 정자로 옮겨왔더니 남풍이 바로 불어와서 현감과 함께 종일 이야기하다가 잤다.
16일(양력 6월 30일) 맑음. 구례 현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략) 구례 현감이 음식상을 내왔는데 매우 풍요하였다. 매우 미안하였다.
17일(양력 7월 1일) 맑음. 고을 수령(이원춘)과 함께 이야기했다. (후략)
19일(양력 7월 3일) 맑음. 체찰사(이원익)가 구례현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성안에 머물고 있기가 미안해서 동문 밖 장세호의 집으로 옮겨갔다. 명협정(蓂莢亭)에 앉았는데, 고을 현감(이원춘)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체찰사(이원익)가 현으로 들어왔다. (후략)
20일(양력 7월 4일) 맑음. (전략) "저녁에 만날 수 있겠는가"라고 묻기에 나는 "당연히 저녁에 가서 인사하겠다"고 대답하고, 저녁에 가서 뵈니 체찰사는 소복(素服)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일을 의논하는데 체찰사는 개탄스러움을 참지 못했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후략)
22일(양력 7월 6일) 맑음. 남풍이 크게 불었다. 아침에 손인필의 부자가 와서 만났다. (중략) 저녁에 배 동지(배흥립)와 현감(이원춘)이 와서 만났다.
23일(양력 7월 7일) (전략) 체찰사가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에 가서 뵙고 조용히 의논하는데, 시국의 일이 이미 잘못된 것에 대해 많이 분해하며 오직 죽을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후략)
|
|
| ▲ 428년 전의 이순신을 지켜보았을 명협정 옆의 500년 넘은 왕버들나무. 2025년 5월 23일. |
| ⓒ 한상무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행문화지 계간 구례 여름호(6월 30일 발행)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대통령이 사과할 일 아냐...산림청이 저지른 일을 보십시오
- [단독] 윤석열 경호처·안보실, 계엄 3주 전 HID 예비역 유공자회 방문
- 다단계로 엄마 곗돈 날렸던 청년이 사제가 되어 행한 일
- 윤석열 장모는 왜 법무사에게 현금 2억과 아파트를 줬나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과거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 오세훈, 보수인가 극우인가
- "당비 1번만 내도 투표권, 당원 19만 급증" 홍준표 발언 '사실'
- 윤석열 취임식 특별초청자 명단 보니... 특검 수사대상만 30명
- 태국-캄보디아, 나흘간 무력충돌로 35명 사망... 전격 '조건 없는' 휴전 합의 발표
- 미 상무 "한국 관리, 나 만나러 스코틀랜드 날아와... 협상타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