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살지 말라"... 50년 전 열사를 기억합니다
[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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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안병권 |
김상진기념사업회는 열사의거 50주년을 맞아 추모문집 '오랫동안, 김상진'을 출간했다. 김상진열사의거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이자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1975.김상진> 감독인 안병권 선생이 발간책임을 맡았다. 그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1970년대는 홀대받고 있다"며 "김상진 열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 유·무형의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라며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출간배경을 설명했다.
"1970년대,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공백"
"영화나 연극 등 콘텐츠 대부분은 1980년대 이후를 다룹니다. 1970년대는 가뭄에 콩 나듯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민주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도 1970년 전태일열사 분신을 언급하고 훅 건너뛰어 1980년대로 넘어가 버리죠."
그는 이런 아쉬움을 "국민들의 심리적 공백"이라고 표현했다. 김상진 열사의 의거가 누군가들에게 '1970년대 기반기억'으로 작동하길 바라며 다섯 가지 꿈을 꾸었다고 했다. 한국민주화운동사에서 김상진의 위상 재조명, 열사의 삶과 투쟁 정리, 4.11 할복 의거의 재구성, 기억투쟁,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50년간의 기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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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포스터 |
| ⓒ 안병권 |
특히 '할복'이라는 죽음의 방식에 주목했다. "할복은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입니다. 자기 몸에 칼을 그어 정권에 항거한 내용은 자못 숭고함을 넘어 우리들을 엄숙하게 만들어요."
더욱 특별한 것은 김상진이 양심선언문 낭독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녹음해 세상에 알리라고 후배에게 치밀하게 요청했다는 점이다.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없는 일"이라며 1973년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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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장증 |
| ⓒ 안병권 |
"파리 근교 바르비종 마을에 2차 대전 당시 그 마을 출신 레지스탕스를 기리는 비석이 있는데, 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이 꽃을 바치고 추모한다는 거예요.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그 순간 '오랫동안'이라는 네 글자가 뇌리에 박혔다고 했다.
"시간뿐만 아니라 지속, 실행, 공간의 의미까지 포함된 말이에요. 김상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우리 곁에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합니다."
50년 만에 복원된 육성 녹음본의 기적
이번 추모집 발간 과정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김상진 열사의 완전한 육성 녹음본을 발견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CBS에서 송출된 1분 20여 초만 알려져 있었는데, 올해 1월 부산에서 선배들을 인터뷰하던 중 김태홍(서울대 농교육학과 73학번) 선배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김의장(서울대 원예학과 72학번) 선배에게 맡긴 기억이 난다고 했다.
"017 구 번호로 전화했는데 연결됐습니다. 김의장 선배가 그 테이프를 딸에게 맡겨 50년간 보관하고 있었어요."
'주의, 개봉못함, 김의장. 75.4.11'이라고 쓰인 메모가 남겨진 종이에 싸인 원본 테이프에서 4분여 간의 완전한 양심선언문 낭독이 재생됐다.
"상진 형님이 50년 만에 우리 곁으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청년
책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김상진의 모습은 '인간애'였다. 전방 군대에서 폐병을 앓는 부하 사병을 사비로 돌보고, 의거 일주일 전 경제적으로 어려운 둘째 누나에게 용돈을 건네며, 다리를 다친 후배 권오섭과 룸메이트가 되어 뒷수발을 들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김상진과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이야기였다. 연인의 둘째 여동생이 연락을 해와 들려준 사연이었다.
"큰언니는 상진형이 세상을 떠난 슬픔을 견디며 모든 삶을 삭히다가 10년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직전 '내가 마음껏 김상진 아저씨에 대해서 얘기할게'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시며 떠나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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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진 민주광장 |
| ⓒ 안병권 |
"김상진 열사 죽음의 무게는 전봉준, 안중근, 전태일, 윤상원 열사와 같습니다. 앞으로 산자들이 그려나갈 삶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서울대 관악캠퍼스 농생대 75동 2층 '김상진 홀'과 수원 상상캠퍼스(옛 서울농대) '김상진 민주광장'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태도인지 이번 작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내란을 진압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무릎 꿇고 살지 말고 서서 죽길 원한다'던 김상진 열사의 뜻이 이 세상을 살아낼 산자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
* 김상진 열사 연보
1949년 11월 25일 서울 출생
1962년 2월 서울 혜화국민학교 졸업
1968년 2월 서울 보성고등학교 졸업
1968년 3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입학
1968년 6월 이념서클 '한얼' 가입
1971년 봄 휴학, 가을 군 입대
1974년 군 제대 후 가을학기에 복학(4학년 1학기)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대 교정에서 양심선언문 낭독 후 할복의거
1975년 4월 12일 오전 8시 10분경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
1980년 4월 11일 서울농대 교정에서 공식장례식
1992년 4월 17일, 4월 혁명상 수상
2021년 6월 10일, 민주발전 유공자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김상진 열사의 삶과 투쟁 재조명
50년 만에 복원된 완전한 양심선언문 육성 수록
동시대인들의 증언과 회고
김상진기념사업회 37년 활동사
현재적 의미와 미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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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병권 선생 |
| ⓒ 안병권 |
1979년: 대전고 졸업 서울농대(농생물학) 입학
1981~82년: 학내시위로 무기정학 처분, 82년 가을학기 복교
1983년 6월: 시위 배후조종혐의로 긴급체포, 강제징집, 백골 3사단
1985년 8월: 만기병장 제대
1985년 10월~1995년 : 빈민지역운동_금천구 시흥2동
1988년~90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구로지부 위원장
1996년~2007: 유기농산물 유통, 전자상거래_정농생협, 풀무원NH 유기농팀장, ㈜이팜
2009년~현재: 이야기농업연구소_농업·농촌 영상스토리텔링
2019~2022: 장편다큐멘터리 <1975·김상진> 감독
2024년 3~9월 : 강제징집·녹화공작 피해자 인터뷰 및 기록화 사업_120여명 영상채록, 성공회대 평화박물관
2025년 6월: 반국가폭력TV 출범(유튜브)강제징집·녹화공작 피해자 및 군의문사,
국가폭력 인터뷰 및 영상기록화작업(감독+PD2명+작가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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