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는? 저도 깜빡 속았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운규 기자]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향 떠나 서울 와서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 몇 가지 음식과 관련한 문화 충격을 받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누구나 다 아는, "순대를 어디에 찍어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해서 짜장 소스가 없는 잡채밥이라거나 간짜장에 계란 후라이를 얹지 않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이게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처음에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똑같이 즐기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디테일이 다르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고 낯설기도 한 것이다.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진 입맛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나는 지금도 서울의 중국집에 가면 잡채밥과 간짜장은 여간해서 주문하지 않는다. 미완성의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순대를 소금에 찍는 건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거부하는 편이다. 모름지기 순대란 막장에 찍어서 먹는 음식이라고, 서울 생활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굳게 믿는다. 날양파와 풋고추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된장보다 약간 밝은 색이면서 점도는 조금 묽은 순대 전용 막장을 이 동네에서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게 없으면 쌈장이라도 있어야 한다.
반면, 서울에 와서 새롭게 눈 뜬 음식들도 있다. 교통이 발달해서 어디든지 순식간에 갈 수 있는 요즘에야 전국의 음식들이 다 비슷해졌지만 상경 초기는 그래도 음식의 지방색이란 게 많이 살아 있을 때였다. 이 동네에는 흔한데 저 동네에는 아예 없는 음식도 꽤 많았다는 얘기다. 감자탕만 해도 그 당시 부산에는 흔하지 않은 메뉴였고, 사골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내는 것도 나는 서울 와서 처음 먹었다. 아아 이건 정말 맛있네. 신세계였다.
|
|
| ▲ '잼배옥'의 설렁탕(좌)과 '이도곰탕'의 곰탕 한 그릇(우)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의 대비가 뚜렷하다. 조금 다르긴 해도 둘 다 맛은 훌륭하다. |
| ⓒ 여운규 |
나뿐만 아니라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어릴 때 가끔 가던 부산의 유명한 설렁탕집 메뉴판에는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표시되어 있었다. 가격도 같았다. 저 둘이 뭐가 달라요? 하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설렁탕은 국수 들어가고요, 곰탕은 안 들어갑니다. 국물은 똑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무척 놀라운 말이지만 실제로 사장님은 그렇게 말했다. 곰탕을 시키면 국수사리가 없는 대신 날계란 노른자를 넣어줬다.
그랬으니, 서울에 와서 먹은 곰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유명한 '하동관'에서 처음 곰탕을 먹는데 양지와 각종 내장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건더기부터가 압도적이었고, 무엇보다 맑은 국물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아아 이게 곰탕이구나. 곰탕은 맑구나. 날계란을 넣어 먹는 것도 이 집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오랜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 부산의 그 집 곰탕에 왜 계란이 들어가나 했더니!
당연한 얘기지만 서울의 전통 있는 노포들은 설렁탕과 곰탕을 같이 파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 재료도 다르고 국물 자체가 다르고, 아예 다른 음식이었던 거다. 설렁탕은 사골과 잡뼈 등을 고기와 함께 넣어 고아 낸 뽀얀 국물을 쓰는 반면 곰탕은 고기와 내장 등을 주로 써서 맑게 끓여낸 음식이라는 게 이쪽에서 주로 통용되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곰탕'이라는 이름의 음식 모두를 딱 그렇게 정의하기는 어려운 게, 경상도 지방에서 파는 현풍곰탕이나 진주곰탕 같은 것들은 또 국물이 뽀얗다. 그렇게 보면 영남 쪽에서 곰탕과 설렁탕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도 같다.
|
|
| ▲ 애성회관의 한우곰탕 맑고 깨끗하면서 깊고 푸짐하다 |
| ⓒ 여운규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부터 새로 생긴 깔끔한 집까지, 사무실이 있는 시청·광화문 근처에는 곰탕을 먹을 수 있는 가게들이 꽤 많다. 조금만 멀리 나가보자 생각하면 옵션은 더욱 많아진다. 종로·을지로 일대야말로 설렁탕 곰탕의 강자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곰탕만으로 내가 첫손에 꼽는 집은 바로 북창동 '애성회관'이다.
점심시간 웨이팅은 필수인 집이지만 회전은 빠르다. 기다림을 거쳐 받아 든 한우곰탕 한 그릇. 역시 맑은 국물에 세로로 길게 썰어 올린 소고기가 탐스럽다. 밥은 토렴이 되어 미리 말아져 있고, 굵은 중면 사리가 제법 존재감을 뽐낸다. 국밥에 국수사리를 넣는 건 그 옛날 군사정권의 쌀 절약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걸 볼 때마다 어릴 때 귀가 아프게 들었던 혼분식 장려 표어 같은 것이 떠오르고, 도시락에 보리쌀이 섞였는지 검사하던 선생님 모습도 생각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또한 지난 역사의 한 장면이다. 국밥에 넣는 국수 역시 이제는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
|
| ▲ 애성회관의 한우수육 저녁때 소주 안주로 이만한 것이 또 없다. 저 큼직한 살코기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
| ⓒ 여운규 |
이 집은 국내산 한우의 최상위 고기만 사용한다는 자부심이 강한 집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만 원으로 비싸지 않다. 좀 더 푸짐하게 먹고 싶으면 2천 원을 더해서 특곰탕을 시키면 된다.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음식이라니, 나는 매우 만족한다. 모르고 살았다면 후회할 뻔한 맑은 곰탕의 세계다.
서울 음식의 대표는 설렁탕이다. 그런데 약간 세계관은 다르지만 이렇게 맛난 곰탕집 또한 사대문 안에 널려 있다. 그런 걸 보면 아마도 서울은 소고기를 삶아 먹는 음식만큼은 전국 최고가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본다. 농사에 쓰는 귀한 소를 이렇게나 제대로 요리해 먹는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다고 생각해 보면 그 자체로 참 대단한 일이 아닐까. 육백 년 도읍지의 포스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제 와서... "비상계엄 책임 통감" 윤 부부 손절하는 국힘
- 점심식사 자리에 임원 있어도 요즘엔 '엔빵' 합니다
- 검찰이 무혐의 처분... '코바나 뇌물 의혹' 재조준하는 김건희 특검
- "자사주 소각, 이제는 의무"... 주식시장 저평가 대책 2탄 시동
- '윤석열 재구속'에 부산 국힘 의원들 '침묵'... SNS엔 맛집 소개글만
- KTV 영상물 전면 개방... "풍자했다고 고소했던 윤 정부와는 극단적 대비"
- "상차림도 접시 하나 없이..." 더위에 숨진 베트남 청년의 쓸쓸한 마지막 길
- [이충재 칼럼] 이 대통령, '야당 복'도 따른다
- [단독] 윤석열, 지난해 '자폭드론' 장관 직보 받아...사업예산만 69억원
- 조국 전 대표 옥중 서신 '나의 벗, 최홍엽 잘 가시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