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쩌면', '마침내'... '부사'들 전면 활용해 책을 쓰다니

전영선 2025. 6. 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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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발한 발상력, 부사가 있는 '근사'한 풍경... 책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전영선 기자]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라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른 글들도 찾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아래 브런치)에서 만난 '소위' 작가는 요 근래 만난 작가 중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가장 인상적인 작가다. 그 작가가 지난달 말,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2025년 5월 출간)라는 제목으로.

사실 소위 작가는 소설로 먼저 만났다. 해마다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을 찾아 읽는데 지난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가 바로 소위 작가였다. 소설가로서의 이름은 김하진('소위'라는 이름은 '소소한 일상의 위대한 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필명이었다), 소설의 제목은 「우는 여인」이었다.

발상 놀라운 책, 되도록 쓰지말라는 이걸 전면에 내세웠다
▲ 소위와 김하진 소위 작가의 에세이집과 신춘문에 당선작이 실린 소설집
ⓒ 전영선
소설은 제목이 밋밋해 읽기 전까지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나가다 피카소의 그림 <우는 여인>을 만나는 순간 밋밋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놀라움이 찾아들었다.

소설에는 길을 잃고 집에 찾아든 한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마음먹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가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으려 한 것은 교통사고로 잃은 아들의 모습을 아이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여자는 아이를 돌려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 여자의 마음을 되돌리게 한 것은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다름 아닌 피카소의 <우는 여인>.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손수건을 잘근잘근 씹으며 우는 여인의 모습에서 작가는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 한 여인과 아이를 잃어버리고 돌이 되어갈 한 여인을 떠올려 소설로 형상화했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책 역시 발상이 놀랍다. 문장에서 되도록 지양을 권장하는 품사 '부사'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대체로, 너무, 아무리, 결코, 제발, 억지로, 언젠가, 설령, 감히, 아무튼…' 총 59개의 부사를 주춧돌 삼아 작가는 자신만의 사유와 색깔을 글 속에 녹여내었다.

'무턱대고'라는 부사로는 살기 위해 무턱대고 들어갔던 수녀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자꾸'라는 부사로는 내면에 깊숙이 박혀 있던 '나만의 슬픔'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대체로'라는 부사로는 어째서 자신의 결혼이 대체로 행복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저히'라는 부사로는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 여전히 방황하는 스스로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 소위 에세이집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59개의 부사를 주춧돌 삼아 이야기를 펼친다.
ⓒ 전영선
책을 읽는 내내 '근사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실린 동명의 글에서 '근사하다'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수학적 진리와는 달라서 100퍼센트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近似'는 꽤 비슷한 상태를 가리킨다)"

책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한 까닭에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그리고 심연을 오롯이 드러낸 까닭에 절로 응원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

첫 부사 '대체로'로 시작한 글('대체로, 나의 결혼은 행복하다')을 읽으며 끄덕이기 시작한 고개는 마지막 부사 '마침내'로 맺은 글('마침내, 내 글이 책이 된다')에 이르러 주먹을 쥐게 만든다.

작가는 섬광처럼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가 이 책을 현재 있게 만들었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소위 작가에게 감동하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섬광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환했다는 것. 그 과정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부사 하나로 글을 쓴다는 것은 흥미롭고 짜릿했지만 때로는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웠으며 때로는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브런치스토리에 매주 연재를 이어 나갔고 한 편 한 편 벽돌을 쌓아 집을 짓듯 글을 완성해 냈다."

모든 인간은 섬광을 지니고 산다. 하지만 그 섬광을 붙들어 눈에 보이는 형상물로 내어 놓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에는 묵묵히 나아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섬광을 붙들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부사로 만들어진 '근사'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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