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말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았는데... 크게 깨달았다

전미경 2025. 6. 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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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쓸모없는 말을 많이 하고 살았던가...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미경 기자]

내가 오마이뉴스에 '사는 이야기'를 쓰면서 유일하게 리뷰한 드라마가 있는데, 바로 배우 정우성 주연의 <사랑한다고 말해줘>였다.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망이며,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 주인공의 심정이 애잔하게 녹아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머릿속에서 "여긴 조용해서 좋아" 하는 장면과 대사들이 떠올랐다. 맥락 없게도.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말들. 방송, 유튜브, 전화, 소셜미디어... 다들 말을 하고, 또 말하느라 바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잠시 '말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며 깨달았다. 우리는 말을 하느라, 진짜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방과 후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을 하는데 목이 살짝 잠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루이틀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음날 아침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막힌 느낌이었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화가 났다. 매일 수업하는 사람도 있는데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말' 하는 사람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곧 돌아오겠지 했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병원을 찾았다. 나흘만이다. 병원에서는 성대검사를 해봐야 안다고 했다. 하지만 비강검사라는 말에 무서워 못하고 약 처방만 받았다. 약봉투에 설명을 보니 일반 감기약 종류. 그동안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거나 무리하게 소리를 지른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에 아이들 집중을 끌려고, 부르고, 설명하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사랑했던 수업이, 내 몸엔 무리가 되고 있었던 걸까.
ⓒ tinaflour on Unsplash
목소리가 안 나오자 생활이 불편했다. 아니, 불편함보다 '답답함'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말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 한다는 것. 나를 설명할 수 없고, 타인을 설득할 수 없으며, 심지어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상태. 몸은 멀쩡한데 고립된 기분이었다. 매일 수다를 떨던 언니와의 수다 통화 루틴이 끊겨 입이 근질근질했고 엄마와의 안부전화도 겨우 응, 괜찮아, 짧게 말하고 끊었다. 엄마는 눈치를 못 채다가 나중에야 알고 마음 아파하셨는데 그 이상 묻지는 않으셨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생활했다.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면 계산을 마쳤다. 재래시장에서는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2000원 어치를 달라고 해도 별 문제없었다. 말없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 이렇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또 생활이 됐다. 다만 방과 후 수업이 걱정됐다.

강사라는 직업은 '말'로 하는 일인데 '말'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해서 교실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집중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내가 조용해질수록 아이들의 작은 소리, 눈빛, 몸짓이 더 크게 다가왔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내가 '조용히'라고 말할 때 보다 ' 조용히'라고 화이트보드에 쓰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강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인 동시에 아이들에게 배움을 받는 일이기도 한데 이 시간은 나에게 말이란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를 돌아보게 해줬다.

목소리가 없으니 자연스레 듣기만 했는데 듣는 일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는지, 말보다 말 사이의 침묵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는 것들을 그제야 알게 됐다. 나는 늘 말하는 데 익숙했고, 듣는 데 서툴렀다는 것을. 상대방이 " 나도 말 좀 하자"라고 했던 때가 있었음을. 목소리를 잃고 나서야, 세상의 말들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셈이다.
ⓒ jannerboy62 on Unsplash
목소리가 없는 삶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생각보다 조용한 세상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는지,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흘러나왔다는 걸, 누가 말을 걸면 일단 반응부터 하는 습관.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분위기를 채우기 위해 던지는 말들. 나는 그걸 '소통'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소 말을 많이 함으로써 내 마음의 불안을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어느 날 아침은 문득 평온했다. 삶이 조용해졌다. '말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머릿속까지 맑아졌다. 감정소모도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시끄러운데 나는 조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꼈다. 아마 그동안 너무 많은 소리 속에서 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를 높이고, 내 존재를 증명하듯 끊임없이 말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떠들며 살다 보니, 스스로의 내면엔 말할 틈조차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정말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말들이었을까. 목소리를 잃고 며칠은 두려움이 컸지만 그 침묵 속에서 얻은 건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서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던,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진심, 침묵 속에서 더 깊이 들리는 타인의 마음, 이제 나는 ' 덜 말하고 더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은 회복 중이고 다시 목소리를 찾게 되더라도 말을 좀 아껴보려 한다. 이전보다 필요 이상의 말은 줄이고, 진심 어린 말은 더 자주 전하고 싶다. 꼭 해야 할 말, 꼭 전하고 싶은 말, 정말 듣고 싶은 말에만 힘을 실어보려 한다. 무엇보다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도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소외가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존재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잠시 말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았던 조용한 세상 속에서, 나는 다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말을 잃고 나서야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었고, 내 삶이,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시간은 고통이 아닌 배움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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