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는 왜 퀴어 코드를 흑백 영화로 풀었을까?
[최해린 기자]
(*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의 오·남용을 통렬하게 지적하면서도 극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 넷플릭스의 SF 앤솔로지 시리즈 <블랙 미러>가 7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시리즈 속에서, 이번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바로 하올루 왕 감독의 '레버리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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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 미러> 에피소드 <레버리 호텔> 스틸컷 |
| ⓒ 넷플릭스 |
하지만 촬영 도중 외부의 기술 문제로 인해 브랜디는 극 중의 '레버리 호텔'의 가상현실에 갇힌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인 클라라에게 영화 바깥의 세상을 알려주며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 클라라는 인공지능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에 혼란스러워하지만, 곧 자신을 연기했던 배우인 '도로시 체임버스'의 기억까지 되찾으며 보다 인간에 가까운 지성체로 거듭난다.
'레버리 호텔'은 왜 '흑백 영화'를 영화의 주요 소재로 차용한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답은 주인공 브랜디와 클라라가 가지는 관계의 퀴어성(queerness)에 있다. 여성인 브랜디는 로맨스 영화의 남주인공 역할을 그대로 가져간다. 예상되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그대로 브랜디와 사랑에 빠진다. 이는 클라라가 '성별 불문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게끔' 프로그래밍 되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성적 지향성에 개방적이지 않던 옛 할리우드에서도 여성을 사랑하기 멈추지 않았던 배우의 의지가 인공지능 '클라라'의 데이터 속에 있었다고 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허용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기반한 소재 선택에 가깝다. 흑백 영화의 역사에서 '여성을 사랑한 여성'을 빼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882년의 영화 < 키스(The Kiss) >는 두 여성의 성애적 키스를 촬영한 최초의 작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사를 통틀어 최초로 입맞춤을 녹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1940년 영화 <댄스 걸 댄스> 등으로 유명한 여성 감독 도로시 아즈너는 영화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안무가 마리온 모건과 공개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아즈너의 페미니즘적 성과를 인정하는 소개 글에서도 종종 생략되곤 하는 부분이다.
'레버리 호텔'은 이러한 영화사 속의 잊혀진 여성애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작품이다.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간 인간'이라는, 다소 평이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SF 소재에 '흑백 영화'를 결합한 이유다. 브랜디와 클라라의 사랑 없이는 '레버리 호텔'이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할리우드의 퀴어 여성사를 놓고는 본작 '레버리 호텔'을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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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 미러> 에피소드 <레버리 호텔> 스틸컷 |
| ⓒ 넷플릭스 |
할리우드는 오래전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 관념적 시선을 캐릭터에 적용해 왔다.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과장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고전 '디즈니 악당'을 비롯해 알프레드 히치콕의 1960년 영화 <사이코>에서 묘사되는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자신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성별과 반대되는 성의 옷을 입는 사람) 살인마에게서도 '퀴어 코드'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성소수자 관객들은, 고전적인 '악당'들뿐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역할에서도 소수자성을 드러내는 단서를 찾는 데 집중해 왔다. 이는 역사적 재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옛 할리우드에 존재했던 '바느질 모임(sewing circle)'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 대표적이다.
전성기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그레타 가르보, 조앤 크로퍼드와 캐서린 헵번 등의 여배우들을 포함했다고 알려진 이 '바느질 모임'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심하던 당대의 '여성애자' 배우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이 모임의 구성원은 영화 속에서 이성애자를 연기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동시에 '퀴어 코드'를 읽어내는 걸 과대 해석처럼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아가씨> 등 대표적인 현대 레즈비언 영화들도 몇몇 평론가들이 '모호한 우정'으로 뭉뚱그려 해석하는 게 대표적이다. '사랑 없이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성애적 관계와 달리 작품 속에서 퀴어적 특성을 읽어내는 것은 치열한 증명 과정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레버리 호텔'은 이러한 퀴어 코드 읽어내기가 헛된 일이 아니라고 보여주는 듯하다. 숨겨진 코드에 접속해 '온전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던 작품 속의 클라라처럼, 성소수자들의 적극적인 역사적 발굴과 재해석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온전한 서사'를 마주할 수 있다. 또, 영화 촬영감독과 사랑에 빠졌던 도로시 체임버스와 달리 주인공 브랜디와 사랑에 빠지는 클라라의 모습은 '고전의 재해석'뿐만 아니라 '새로운 퀴어 서사'의 창작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레버리 호텔'은 작중 곳곳에서 성소수자 역사에 대한 찬가로를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걸작으로 거듭난다. 중국계 여성 감독인 하올루 왕의 감각적인 화면 연출도 이 작품을 한층 더 세련되게 만들었다. 극우 사회로의 퇴행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요즈음,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성소수자 인권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면 <블랙 미러> 속 에피소드 '레버리 호텔'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소수자의 잊힌 역사를 조명하며 미래를 주시하는 작품의 태도 속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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