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있는 집주인의 사월은 기다림입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은상 기자]
마당엔 수도가 네 군데에 있습니다. 그걸 다 쓰느냐고요? 물론입니다. 아침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마당을 순례합니다. 마당은 할 일을 알려주죠. 호스와 분사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며 물을 뿌립니다. 씨 뿌린 꽃밭과 텃밭 그리고 모종판과 화분에 촉촉이 물을 줘야 합니다. 그나무 자리 잡은 나무나 다년생 화초는 물을 보채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을 못해요. 아니 집중하느라 더 깜박깜박합니다. 물을 주다가 삐죽 튀어나온 가지가 보기 싫어서 가위를 가지러 가고, 가위 든 김에 시든 수선화 꽃대를 자르다가 새싹 구경에 한참을 머뭅니다.
아차, 하고 다시 분무기를 쥐었다가는 불쑥 튀어나온 잡초와 포자 달린 이끼를 보고 맨손으로 뽑는데 하도 많아서 아예 호미를 가지러 가서는 또 물 주기를 잊습니다. 하여튼 뜰에 들어서면 정신줄을 놓으니, 어쩌겠어요. 잠시도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 풀꽃을 탓할 밖에요.
사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분명 싹튼 감자를 심었는데 왜 이리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지?" 흙을 파서 안부를 묻고 싶었죠. "아, 4월 중순이면 열무를 수확해 김치를 담갔는데 올핸 왜 이리 더딘 거야?" 했지만 늦겨울과 초여름을 오가는 날씨에 "그래, 너무 일찍 심지 않길 잘했어" 하며 다독입니다. 그러다가도 엄나무 순이 이제야 올라온 걸 보곤 "작년 이맘땐 뱃속에 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시죠. 싹을 뽑을 듯 강렬하게 바라보지만 조바심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모종판에선 애호박과 오이가 조용히 흙을 가르며 올라옵니다. 그 순간엔 정말이지 힘찬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붉게 코팅한 씨앗을 머리에 이고 용 쓰는 걸 보면 껍질을 떼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만, 그에게 맡겨 두는 참을성이 필요하죠. 늦추위와 서리, 때아닌 우박과 강풍으로 날씨가 모질었기에 올 4월은 어느 때보다 생사 확인에 맘 졸이는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 ▲ 4월 뜰에서 광대나물, 삼지닥나무, 보리수, 아스파라거스, 흰장미앵초 |
| ⓒ 김은상 |
탐욕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존 식물들을 재배치하기로 합니다. 패랭이와 송엽국을 큰 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천상초와 안개초 씨앗을 심었는데 흙이 말라 죽을까 봐 멀리 가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안절부절못합니다. 깨알보다 작은 씨앗이 무리로 싹터 그 모습이 확연할 때쯤 백일홍과 밀짚꽃도 움텄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공식처럼 굴러가지는 않죠. 같은 시기에 심은 달리아, 금어초, 니포피아, 휴케라는 감감무소식이니까요. 시간이 더 지나면 "어디에 무얼 심었더라?" 되물으며 떠오르지 않는 머리를 쥐어뜯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식물을 키운다지만 어떤 것은 너무나 더디죠. 기다림은 뜰 가꾸는 사람의 첫 번째 미덕입니다. 삼지닥나무가 삼지(三枝)에 또 삼지를 벌려 바위만 하게 커지거나, 등수국이 격자 울타리를 온통 뒤덮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그러려면 정말 오래 살아 기다려야겠네요. 지금은 겨우 몇 뼘 크기니 말이죠. 번듯한 모습으로 자랄 거란 생각에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지만 그만큼 늙어가니 여기서 또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하긴 늙는 것도 행운이 따라야지요. 과연 볼 수 있을지, 결실에 다다를 수 있을지, 늘 존재하는 의외의 상황이 사람의 인성을 담금질합니다. 그날을 그리며 참고 기다려야죠. 4월입니다. 이제 시작인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귀연 재판', 생중계가 필요하다
- 홍준표 "키높이 구두, 보정속옷 왜 하나"...한동훈 "유치하다"
- 영남권 90% 득표한 이재명 "결과 속단 못해, 큰 책임감 느껴"
- 트럼프에 반기 든 하버드...그들이 겁먹지 않은 진짜 이유
- 무당층 이재명·한덕수 초접전? 이 조사 어떻게 봐야할까
- '술 마시니 자신감 생겨' 인스타에 춤 올렸다가 망신당한 방송인
- 김문수는 왜, 937호 들어서자마자 명태균 얘기를 꺼냈나
- [단독] 박정훈 1일 vs. 김현태 85일... 같은 징계사유, 다른 속도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민주당, 육사 없애고 '육해공 통합 사관학교' 추진
- 나경원 "뻐꾸기는 탈당" - 안철수 "당명은 제대로 알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