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힘든 대학 돕는 BK21은 ‘새는 물’아닌 ‘마중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이 있다. 대학과 대학원 지원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수는 늘어난다거나, 지나치게 건물만 많이 짓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의 선호하는 대학 몇 곳에서 고급 연구를 다 하면 될 텐데 지방에서 왜 나서느냐는 핀잔도 들린다.
‘BK(Brain Korea, 두뇌 한국)21’ 예산이 새는 물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의문에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반박한다.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은 교육 연구의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높이려는 취지이고, 학문과 국토의 동맥경화를 막으려면 기초 학문과 지방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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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지원 사업에 대해 갑론을박
지방 대학엔 ‘가뭄 속 단비’ 역할
경쟁하되 협력 모델에 집중해야
」

한국 정부의 올해 살림 673조3000억원 중에 고등교육 부문은 14조원으로, 전체 교육 예산(104조8767억원)의 14%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초·중등 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3%나 되지만,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68% 수준으로 낮다.
대학원과 직·간접 연결된 연구개발(R&D) 예산은 어떤가. 2024년 기준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비는 약 12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세계 2위다. 그런데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배분되는 대학 연구개발 투자는 연간 10조원으로 국가 연구개발비의 9.1%에 그쳤다.
이 비율이 영국·프랑스·독일 등은 20% 선이고, 일본은 12%이니 그만큼 한국이 적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체 연구 인력의 29%, 박사급 연구원의 54%가 대학 소속인데도 대학·대학원에 대한 연구 지원은 여전히 인색하다.
그동안 정부는 PRIME·CORE·CK 등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을 해왔다. 이들 중에는 불만을 산 사례가 있었지만, BK21 사업은 성과가 독보적이다. 1999년 시작된 이 사업을 학계에선 ‘R&D 유치원’이라 비유한다. 대학원생 등 학문 후속 세대가 안정적으로 학업과 연구에 전념하도록 장학금과 연구 환경을 잘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큰 왜곡 없이 지난 26년간 대학원생 50만명 이상을 지원해 왔으니 ‘장수 사업’인 셈이다. 연간 지원 예산 5000억원(2024년 기준)은 수혜 대학들, 특히 지방 대학엔 가뭄 속 단비처럼 큰 도움이 됐다.
2020년 새로 시작한 ‘BK 대학원 혁신 사업’이 특히 눈에 띈다. 개별 전공을 넘어 대학원 전체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걸림돌이 되는 제도와 행태를 바꾸거나 대학 내부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이 사업은 예산을 지렛대 삼아 대학의 제도와 행태를 바꾸고 있다.

경북대 사례를 보더라도 BK21 사업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으로 본부 차원에서 대학원의 제도 개선, 교육 연구 활성화, 성과 관리를 개선해왔다. 대학원생 권익 보호, 실질 처우 개선, 연구 성장 사다리 제공 등에 대해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고 대학 평판도 좋아졌다.
물론 문제점도 여전히 있다. 그래도 BK21은 유용한 인력 양성 사업이다. BK21 사업은 ‘새는 물’이 아니고, ‘나눠 먹기’도 아니다. 선정·재선정 단계는 물론 매년 평가를 통해 교육·연구·산학협력·국제화 영역을 평가해 하위 대학의 예산을 상위권에 재배정하는 구조다.
물론 이런 평가 방식 때문에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해 대학 특성화·다양화를 해쳐 장기 과제가 소외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데 깐깐한 평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기획재정부·국회·언론의 눈은 매섭다.
BK 혁신의 가시적 성과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지만, 그래도 고쳐가며 지속할 이유는 충분하다. 밑 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다. 앞으로는 박사후연구원 집중 지원,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확대, 인공지능(AI) 등 최신 트렌드 선도가 핵심이다.
혁신의 성과를 공유하고 선순환을 이어가며, 경쟁하되 협력하는 모델에 집중해야 한다. 영국 과학자 뉴턴의 말처럼 대한민국 젊은 연구자들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BK21 혁신은 이 땅의 대학원에 꼭 필요한 마중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시철 경북대 교학부총장 겸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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