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대전족`에서 `제이미맘`까지…대치동 변천사

이윤희 2025. 3. 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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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수지의 강남 대치동 엄마 풍자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명문 사립고 이전하며 교육일번지 돼
아파트 실거래가 3.3㎡당 8334만원
재건축 기대감 등이 유입수요 키워드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속 제이미맘 캐릭터를 연기하는 개그맨 이수지 [유튜브 영상 캡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연합뉴스]

"제이미~ 제이미~." "장난감 던지지 않아요~ 돈 두댓." "오케이 캄 다운. 엄마 기다릴게 엄마 눈 봐요."

조곤조곤 교양있는 표준어 말투에 단순한 영어를 습관으로 섞어 쓴다. 아이를 훈육할 때도 "하지마" 라는 공격적인 말 대신 "하지 않아요" 라고 할 뿐이다. 다만 아이의 제기차기 과외 선생을 면접할 때는 웃음으로 위장한 교묘한 수동공격으로 상대를 제어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 젊은 엄마는 개그맨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속 가상 캐릭터 '이소담 씨(제이미맘)'다. '도치맘'으로 불리고 싶다는 소담 씨는 아이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이른바 '대치맘'이다. 그가 아이 '라이딩'을 위해 하루를 다 보내는 내부가 넓은 고급 SUV와 브랜드 로고가 어깨에 뚜렷히 박힌 수백만원대 패딩, 역시 특유의 패턴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프랑스 명품백은 대치동에서는 필수품목으로 꼽힌다.

대치맘과 그들의 터전인 대한민국 사교육 중심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풍자한 해당 영상은 지난 달 초 게시된 이후 단숨에 사회적 화제로 떠올랐다. "현실고증 미쳤다" "대치맘 복사기" 등 속시원한 재미를 느낀 사람도 있고, 다른 기혼 여배우를 대놓고 조롱했다는 논란에 싸이기도 했고, 가정에서 자녀 교육이란 역할을 단독 부여받은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10일 오전 현재 818만건이 넘는다. 이 영상이 화제를 모으면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창피해서 못입겠다"는 이유로 내놓은 특정 브랜드 패딩과 가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두가지 가치가 가리키는 곳. 욕망과 질시, 허영과 선망이 뒤섞인 동네, 대치동은 과연 어떤 곳일까.

양재천과 탄천의 합류지점으로 침수가 잦았던 경기도 광주군 대치동은 광복 후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됐다. 1970년대 영동 제2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한강 이남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되며 현재의 강남구 대치동의 모습에 이르렀다. 은마, 개포우성, 한보미도, 선경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숙명여중·고, 휘문중·고, 중대부고, 단대부고 등 8학군의 핵심 명문 사립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을 둔 중산층 가족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치사거리에는 한국에서 가장 밀집한 학원가가 만들어졌고, 대치맘들의 열성과 학원가의 전문성이 시너지를 내며 변화무쌍한 입시제도에도 대응하는 독보적인 사교육 시스템이 갖춰져갔다. 목동과 상계, 분당, 강남 내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들이 왔고 방학이면 전국에서 수험생들이 대치동으로 향했다. 대치동 일대에는 지난 2023년 기준 1442개 학원이 운영 중이다. 이는 2위 지역인 목동(1022개)보다 절반가량이 더 많은 수치다.

노후 아파트가 즐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은 대치동에는 '대전족(교육을 위해 대치동 전셋집에 사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대치동을 뜻하는 테남(테헤란로 이남)은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걸지만, 이미 자산 축적이 이뤄진 압구정·청담동 등 테북(테헤란로 이북)은 교육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고 구별하기도 한다. 강남 내에서 대치동은 자산가보다는 전문직이나 공무원 등 학력이 높은 중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로, 강남 부동산 시장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NH투자증권이 발간한 '대치 학세권 아파트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치동을 비롯 역삼2동, 도곡2동 등 대치 학세권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치동의 실거래가는 3.3㎡당 8334만원을 기록하며, 부동산 활황기였던 2022년 6월 전고점(7656만원)과 비교해도 약 10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대치동에서도 재건축 사업 진행에 속도가 나는 중이다. 대치동의 주요 재건축 단지로는 대치동 은마, 미도, 우성1차, 쌍용2차, 쌍용1차가 있으며, 도곡동 개포한신, 개포 우성4차가 있다. 대치 미도를 제외하고 모두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 25억원후반대에 거래된 대치 쌍용 1차 전용 96㎡는 올해 2월 29억5000만원에 손바뀜했다. 개포 우성 1차 137㎡은 지난달 50억 5000만원에 신고가를 다시 썼다. 바로 직전 월인 1월에만 해도 42억7000만원, 45억3000만원에 두차례 거래됐는데, 토허구역 해제 발표 이후 50억원을 찍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외부 수요 유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40억원에 매매 최고가로 실거래가 신고됐다. 2023년 1월 28억원 대비 2년만에 12억원이 뛰었다. '재건축 대장주'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76㎡는 토허제 해제 이후인 지난달 14일 28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은마아파트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리지는 않았지만, 투기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재건축 단지에 대한 해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보현 NH투자증권 택스센터 부동산 연구위원은 "최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인해 강남권 아파트 가격의 지지선이 상승하고 하방 경직성이 강화되는 효과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대치동은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흐름이 이어지겠으나, 주요 재건축 사업장은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고, 투기과열지구 규제가 남아있어 (상승이) 제한적일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고 했다.

또 정유나 NH투자증권 부동산 책임연구원은 "대치동은 중대형 평형과 대단지가 주로 재건축 진행 중임을 감안할 때 재건축 사업속도가 대치동 아파트 가격과 외부 유입 수요를 결정짓는 장기 핵심 키워드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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