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의 이코노믹스] 한국 첨단 제조업으로 미국 취약성 메우는 전략 마련해야

2025. 3. 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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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맞설 한국의 전략은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 원장
트럼프 발 관세 폭탄이 연일 세상을 공습하고 있다. 그가 쏘아 올리는 관세 폭탄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들에겐 ‘트럼프 쇼’는 일상다반사가 됐다. 지난 1월 20일 취임 이후 지금까지 트럼프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관세 폭탄을 공표했다. 무역 대국으로 부상하며 구축한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해 트럼프의 관세 폭탄의 영향권에 간접적으로 들어갔던 대한민국은 철강·자동차, 상호관세 등으로 관세 폭탄의 사정권이 확대되면서 직접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경제 패권을 위협할 만큼 성장한 중국에 관세 폭탄을 내세워 대규모 미국산 구매 약속을 받아냈던 트럼프의 관세 사용법은 4년간의 권력 공백기를 지나서 복귀한 지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다. 트럼프에게 관세는 무역적자 해소와 관세 수입을 통한 정부 재정 보충,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한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 유도 등 경제적 목적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과 마약 문제, 전쟁 종식 등 정치적 목적까지 염두에 둔 수단이다.

「 최소 비용·최대 성과가 중요한
트럼프 ‘사업가’ 면모 파악 긴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내는
정상회담 패키지 딜 준비 필요

‘미국 우선주의’ 미국만으론 불가
제조업과 조선업 협력 강화해야

지난 4일(현지시간) 재집권 후 첫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국을 불공정 관세 국가로 공개 지목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관세 위협이 연일 세상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지만, 주목할 것은 대부분은 실행 이전 단계라는 점이다. 언론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 집행자인 상무장관만 부각하고 있지만, 트럼프 옆에는 시장의 안정을 중시하는 재무장관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철강 관세 인상을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곁에 서 있던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철강 관세 덕분에 수만 개 미국 일자리가 확보됐다”며 관세 폭탄 예찬론을 펼쳤다. 반면,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국의 관세 부과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국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관세 폭탄 중 몇 개의 발사 버튼을 누를지는 트럼프의 결기 못지않게 상대국의 반응과 미국 경제 상황에 달려있다.

금전적 성과 최우선에 두는 트럼프
트럼프 기획·주연의 ‘트럼프 관세 쇼’가 무대에 올려졌지만, 흥행 성공 여부는 결국 관객에 달렸다. 급속하고 과다한 관세 인상이 관세 수입을 증가시킨다 해도 급속한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면, 흥행은 실패한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 카드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관세 수입 증대 효과는 빨리 실현되고 물가 상승효과는 서서히 나타나야 한다. 미국 경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달 사이에 쏟아낸 관세 폭탄이란 말의 홍수는 미국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당장의 고통을 감내하면 더 큰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그의 지지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이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고삐 풀렸던 물가 때문에 정권 연장 아닌 정권 교체를 선택한 미국 유권자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다.

김영희 디자이너

여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만약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한다면 트럼프의 강공 일변도 관세 폭탄은 주춤할까. 그렇다면 트럼프는 트럼프가 아니다. 그런 이성적 추론만으로는 트럼프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한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한 관세 위협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트럼프 안의 2명의 서로 다른 트럼프를 이해해야 협상의 길이 열린다. “대통령 트럼프 안에는 2개의 트럼프가 있다. 정치인 트럼프와 사업가 트럼프. 세상은 대통령 트럼프의 말과 행동에서 사업가 트럼프를 본다.”(필자의 최신작 『트럼프 어게인』) 아무런 정치 경력 없이 곧장 대선 경쟁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내면을 장악하는 것은 사업가 트럼프다. 강한 압박과 과장된 표현, 거친 태도는 사업의 세계에서 통용되던 자신의 성공 방식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김영옥 기자

트럼프는 자신이 협상을 주도하고, 자신이 주연이 되는 협상에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즐긴다. 실무자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최종 조정자를 자임하는 전통적인 협상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협상의 시작과 고비 고비마다 나선다. 홍보팀과 대변인이 있지만 트럼프의 SNS는 세상과 실시간으로 고도의 기밀유지가 핵심인 국제 협상을 실시간 중계한다. 트럼프의 사전에는 ‘동맹’이란 단어는 없다. ‘가치’ 역시 찾기 어렵다. 가치 중심 동맹과의 결속은 다른 미국 대통령들의 어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돈, 돈, 돈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 그것도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금전적인 성과를 최우선에 둔다. 그것을 위해서는 독재자를 찬양할 수도 있고, 동맹의 지도자를 몰아세울 수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비호감의 극치인 일론 머스크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 정상 간 협상 선호
이런 트럼프와 협상하기 위해서는 그를 협상 테이블 반대편에 있는 적이 아닌, 바로 옆에서 같이 문제를 풀어 가는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세계 분쟁 지역마다 찾아다니면서 갈등 해소 방안 모색과 중재에 평생을 바쳤던 하버드 법학대학원의 로저 피셔 교수가 강조했던 윈-윈(win-win) 협상을 가능케 하는 기본자세다. 상대의 주장을 나쁜 것, 악한 것으로 몰아치는 것에 그치면 결과는 뻔하다. 더구나 상대는 세계 최강 국가의 대표가 아닌가. 트럼프 속에 존재하는 2명의 트럼프를 이해한다면 ‘국내 상황이 악화하면 트럼프가 관세 폭탄 버튼을 누르지 않겠지’라는 단정은 안이한 낙관적 추론임을 알 수 있다. 충동적인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 트럼프가 상황을 예측 불가하게 몰고 가게 한다면 그 위험 부담은 트럼프와 그 상대방 모두에게 돌아온다. 트럼프가 관세 폭탄을 예고했지만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을 ‘무엇인가’를 줘야 한다. 트럼프가 “미국이 승리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자신의 SNS에 쓸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트럼프와의 협상은 사업 파트너로서 같이 문제 풀기가 될 수밖에 없다.

김영희 디자이너

트럼프는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더는 대통령 연임은 없는 트럼프지만 그에게 2028년 11월 대선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화당의 집권 지속 여부에 따라 그의 레거시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금인 트럼프에게 정상 간의 협상을 통한 패키지 딜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트럼프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만나기 전에 단단히 준비하고 와서 간결하게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내야 한다.” 한미 관계를 워싱턴DC 현장에서 오랜 세월 관찰해 온 플로렌스 리 글로벌전략경영원 대표의 조언이다. 한국의 숙제는 적기에 정상회담의 성사·합의가 가능한 패키지 준비이다.

중국 배제 논리, 한국에는 기회 될 수도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AI가 미국을 비롯해 세계 IT업계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마음속 최종 상대는 중국이다. 산업과 안보에 모두 사용되는 디지털 기술은 트럼프 대 시진핑의 미·중 신냉전의 승부처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격차를 더욱 확대하려 한다. 인공지능(AI)은 태풍의 눈이다. 트럼프는 취임 다음 날 빅 테크 중심의 대대적 AI 인프라 투자 구상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중국의 딥시크(DeepSeek)가 등장하며 한참을 앞섰다고 생각한 미국을 혼돈에 빠뜨렸다. 강속구 하나로 질주하던 미국 앞에 마법의 변화구를 터득한 중국이 나타나면서, 미국은 역전당하지 않으려면 강속구 외에 다른 구종도 구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 완화와 투자 유도로 다양한 구종을 장착하려 한다. 대중국 수출 통제의 빈틈은 더욱 조여들 것이다. 바로 여기에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외칠 수 있고 한국도 “승리했다”고 당당해질 수 있는 묘수가 찾아진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앞세우는 트럼프지만, ‘미국 혼자만인 미국 우선주의’로는 디지털 기술산업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완성하지 못할 운명이다.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을 위해서 오히려 더욱 절실할 것이다. 가치 동맹의 깃발을 내걸지 않고서도 한국이 가치 동맹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다.

주요 7개국(G7) 선진국보다 우월한 한국의 첨단 제조업 역량과 한국이 미국의 최대 투자국이라는 것을 결합하면 트럼프의 미국이 필요로 하는 패키지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미국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에 투자한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공장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미 해군력 강화 기여로 윈-윈 모색 가능
신냉전에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해군력 강화에 한국이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미국 의회는 미국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금까지 꽁꽁 막아 왔던 미국 조선산업을 한국 등 군사 동맹국에 열겠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미·중 신냉전에서 미국의 취약한 부분에 한국의 첨단 제조업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면 윈-윈 합의로 이어질 것이다. “관세 폭탄이 싫으면 미국에 투자하라”는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중국의 추격으로 위기에 내몰렸던 한국은 첨단 산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승리’를 챙기게 된다.

한국을 선진 경제로 이끌었던 규범 기반의 자유무역 체제가 붕괴하고, 최대의 무역상대국이던 중국의 반칙과 변칙을 불사하는 급속도 추격에 경쟁력을 상실해 가던 한국 제조업의 위기 속에 트럼프발 전방위적 관세 폭탄의 위협은 역설적으로 한국에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당장 불어닥치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 위축되지 않고 트럼프 2기 이후까지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린 다음 트럼프 관세 폭탄과 함께 살아가는 협상 전략을 도모한다면, 추락하는 한국 경제에는 반전의 기회일 수 있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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