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세력' 기름더미에 누가 불쏘시개 던졌는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자말>
[정연우]
내란세력 옹호 주장 늘어난 이유
어리둥절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직후엔 강성보수들조차 드러내놓고 내란행위를 두둔하기는 주저했다. 국회 앞은 매서운 추위에도 탄핵소추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언론도 평화적이면서 유쾌한 집회 모습을 경탄스러운 눈으로 전했다. 탄핵 의결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비판과 압력의 수위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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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의 배후로 의심돼 내란 선동 혐의로 고발당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 목사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 ⓒ 유성호 |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광훈 등 극우세력과 한 덩어리가 된 것 같은 모양새다. 온갖 억지 주장을 쏟아내며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양 득의양양해한다. 공론은 혼탁해지고 극렬한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민주주의 토대인 공론장은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풍성하고 튼실해진다. 공론장에서 활발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사회적 의견을 모아가고 그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가 운용된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만드는 핵심 원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주장이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견으로 위장된 거짓은 공론의 장에 들어올 수 없고 배척되어야 할 대상이다. 온갖 요설과 궤변, 억지들은 공론형성 과정을 방해한다. 극우세력들은 부정선거, 체포영장 불법, 탄핵의결 무효, 윤석열 방어권 보장, 국민 저항권, 탄핵모의설 등 갖가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요설을 넘어 헌법재판소 공정성을 부정하는 주장마저 언론을 타고 넘실댄다. 심지어 폭력과 불법을 은근히 부추기는 보도마저 눈에 띈다.
언론은 단순한 확성기 아냐, 공론장 '문지기' 되어야
언론은 쏟아지는 각계 주장 중에 공적 의견으로서 시민들의 공론과정에 참여할 만한 것인지를 가려내어 전달해야 한다. 공론 마당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인 셈이다. 사실과 허위가 뒤섞여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교묘하게 전문성으로 치장하여 판단이 헷갈릴 수도 있다.
해질 무렵 멀리서 달려오는 모습만으로는 양 떼를 지켜주는 개인지, 양을 해치는 늑대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자만 봐도 명백하게 양을 공격하거나 물어뜯는 무리가 있다면 분명하다. 언론의 존재 의의는 그 정체를 알려 공론장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거짓과 궤변이 공론장을 침탈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벽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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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알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생회관앞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서울대인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서울대생이 아닌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수백 명이 참석해, 쿠데타 옹호세력 규탄 항의시위를 벌이는 서울대공동행동 주최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
| ⓒ 권우성 |
이로써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인식하면 자신감을 얻게 되고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목소리를 높이면서 빠르게 확산한다. 참과 거짓의 문제가 찬성과 반대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논쟁적 사안으로 둔갑해 공론장에 침입한다. 법원이 법치주의의 보루라면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보루이다. 공론장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언론의 기본 책무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언론인들은 이번 내란 보도를 돌아보며 언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가진단을 해봐야 한다.
내란 수습과 헌정질서 회복은 진영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지키고 만들어온 공화정의 기본 질서이다. 법치주의와 헌법기관에 대한 인정과 승복 없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의심의 씨앗은 한번 뿌려지면 그 생명력은 다양한 형태로 변이, 전이되어 질기게 살아남는다. 그 뿌리를 뽑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든다.
40년도 더 지났건만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은 여전히 틈만 나면 불거지곤 한다. 디지털 시대 딥페이크 기술 발전 등으로 이러한 의심의 씨앗은 훨씬 그럴 듯하게 조작되어 우리 의식을 어지럽힐 것이다. 토론과 논쟁의 영역으로서 공론장을 지키지 못한다면 선동적 유튜버와 극단적 세력이 활개 치고 언론은 위축되며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정연우씨는 민언련 이사·세명대 명예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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