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만 보면 조롱, 마약에 중독된 록 스타의 최후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록(Rock)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의 장르일 것이다. 블루스와 컨트리로부터 파생된 음악의 한 갈래인 록을 두고서 저항의 상징이라 거창하게 표현하는 이들도 적잖다. 스피커와 전자악기가 등장해 기타와 베이스에서 나오는 음을 증폭해 공연하는 록음악은 기존 권위 있는 콘서트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비싼 푯값을 치를 수 있을 만큼 품위 있고 넉넉한 이들의 전유물로부터 벗어난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너른 터전 혹은 음향설비가 우수하지 않은 지하 술집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공연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은 그대로 록음악의 무기가 되었다. 전자 장비는 클래식 악기에 비해 가격이 쌌고, 공연장은 음향이 울려 퍼질 최적의 설계가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사회의 주류라 부를 수 없는 계층, 또 주머니 얄팍한 젊은이들이 공연장에 모여들어 나름대로 음악을 즐겼으니 그건 그대로 록음악의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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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어즈> 포스터 |
| ⓒ 라이크콘텐츠 |
'도어즈 The Doors'는 1960년대 후반을 풍미한 전설적인 밴드다. 1967년 데뷔해 짐 모리슨이 사망한 1971년까지 짧지만 강렬한 전성기를 보냈다. 영국에서 온 저 유명한 밴드 비틀즈가 조금씩 쇠하고 쟁쟁한 다른 밴드들도 얼마쯤 식상해지던 시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낯설고 강렬하며 자극적인 이들이 팬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느냐면 196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있었던 '토론토 로큰롤 리바이벌' 같은 망해가던 공연도 그 출연 소식에 인파가 잔뜩 몰렸을 정도. 그리하여 196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밴드로 도어즈를 꼽는 이도 적잖다.
감독 올리버 스톤은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정치며 외교, 국제 문제와 긴밀히 엮여 있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상업영화 흐름의 반대편에 자리한 몇몇 감독을 논할 때 마틴 스콜세이지, 짐 자무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린치 등과 함께 꾸준히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저만의 주관과 스타일을 갖고 작품세계를 지속 확장해 온 작가주의 감독이란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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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어즈> 스틸컷 |
| ⓒ 라이크콘텐츠 |
올리버 스톤의 작품군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베트남 3부작'이다. 그중에서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은 첫 편 <플래툰>이고, 완성도가 높은 건 톰 크루즈의 열연이 돋보이는 < 7월 4일생 >이랄까. 여기에 더해 <하늘과 땅>까지 베트남 3부작이라 통칭하는데,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폭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한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스톤이 베트남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건 유명한 이야기다. 1964년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본격 발발하자 스톤은 재학 중이던 예일대학교를 휴학하고 인도차이나반도로 건너가 영어 강사를 하다가 상선 선원 생활을 하며 지낸다. 한동안 뱃사람으로 살던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돌연 미국 육군에 자원입대,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된다.
두 차례 부상을 당하고,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마약에 깊이 빠져드는 등 20대 스톤의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전역 후 영화학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뉴욕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제가 직접 겪었던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영화로 제작하는데, <플래툰>이 바로 그 작품이 된다. 이 영화는 스톤을 일약 세계적 명성을 가진 감독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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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어즈> 스틸컷 |
| ⓒ 라이크콘텐츠 |
4K 리마스터링 재개봉한 <도어즈>는 이 밴드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짐 모리슨(발 킬머 분)의 이야기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청년 짐은 UCLA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동기인 레이 만자렉(카일 맥라클란 분)과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동료를 모아 반전과 저항을 기치로 한 밴드를 만든 이들은 저들의 성향이 한껏 묻어난 곡을 만들기 세상에 내놓는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전국적 명성을 갖게 된 이들은 연달아 대규모 콘서트를 열고 시대를 대표하는 록스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당초 이들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저항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못한다. 짐 모리슨은 마약을 탐닉하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며 일탈을 반복한다. 마치 그것이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저항이기라도 한 양, 저를 완전히 소진해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방자하게 날뛴다. 당대 록밴드가 체제에 대한 저항을 절대 선인 양 여기며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짐 모리슨은 여러모로 그 정도가 심했다. 경찰과 제복 입은 이들을 참지 못하고 조롱하다 수차례 검거까지 되었는데, 술이며 마약에 취해 음탕하고 방종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1960년대 말쯤이면 짐 모리슨이 어디서 술에 취하여 행패를 부리다가 붙잡혔다는 뉴스가 그리 놀랍지도 않게 소비됐다. 그의 이 같은 태도로 공연 관계자며 밴드 동료들이 입은 피해야 말해 무엇하랴.
스톤은 <도어즈> 가운데 짐의 무절제하고 방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이를 두고서 짐을 좋아하는 이들은 스톤의 작품이 왜곡이 많다고 비판하기도 하였으나 드러머로 짐과 수차례 불화했던 것으로 알려진 존 덴스모어는 짐의 행각이 잘 담겼다고 호평을 내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는 이처럼 술과 약에 절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스타의 모습을 진득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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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어즈> 스틸컷 |
| ⓒ 라이크콘텐츠 |
스톤은 몰락하는 스타의 모습을 통하여 당대 미국사회의 사회문화적 실패를 가감 없이 까발린다. 흔히 사람들은 록밴드를 그 자체로 저항의 상징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로부터 철학도 행동도 결여된 방종, 체제며 질서에 대한 무조건적 반항 또한 저항의 일환이라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영화는 정열과 자유를 표방한다며 섹스와 마약에 젖어 드는 짐의 모습을 참담하게 포착한다. 세상을 비난할 줄만 알지 스스로를 세우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줄은 몰랐던 이, 그리하여 존재하지 않는 '문'을 통하여 도피하려고만 들었던 이의 비참한 최후가 이 영화의 끝을 장식한다.
<도어즈>의 팬들에겐 안타깝게도 영화는 짐 모리슨을 추앙하는 작품이 되지 못한다. 그의 음악을 인상적으로 활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파멸을 더욱 무참하게 그리는 탓이다. 그로부터 의도하는 건 시대의 실패다. 저항이 체제의 변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꼬꾸라진 이유를 그는 체제 그 자체에서 찾지 않는다. 누구보다 국가의 위선과 체제의 폭압을 비판할 줄 아는 감독 스톤은 당대 젊은이와 비주류에 대해서도 덮어놓고 토닥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에선 당대의 젊은이들도, 체제에 저항하는 척했던 이들도 모자라는 이들이었다. 낮의 파티장에서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죽은 듯 잠이 들던 짐의 모습이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는 병치는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절묘하게 드러낸다. 제대로 상대를 겨냥하지 못한 채 저항이란 이름으로 풀어내는 방종은 결코 시대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걸, 맞닥뜨려 싸우는 대신 회피하고 조롱하기를 택하는 건 필히 망하는 법이란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작품을 보고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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