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 열풍과 거리의 ‘뇌 썩음(brain rot)’ [김선걸 칼럼]
‘뇌 썩음(brain rot).’
지난해 말 영국 옥스퍼드대가 뽑은 2024년의 단어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사소하거나 가치 없는 온라인 콘텐츠 등을 과하게 소비해 인간의 정신적 또는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라고 뜻을 설명했다. 유튜브 쇼츠나 SNS의 영상 등이 원인이다.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다른 정보를 접하고 열중하다가 ‘왜 스마트폰을 열었지?’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끊임없이 쇄도하는 알림, 동영상, 안내글에 눈길이 뺏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려면 ‘중요한 일 먼저(First things first)’가 돼야 한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순간적인 자극들이 몰려와 알고리즘에 떠밀려 산다.
이러다 보니 세대를 불문하고 ‘맥락(context)을 읽는 힘’의 결핍이 심각하다. 책이나 신문, 잡지를 보면 텍스트를 순서대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앞뒤의 맥락을 생각한다. 글의 결을 따라가고 작가의 의도를 느낀다. 전체를 꿰뚫는 사고력이 그래서 생긴다.
결국 ‘통찰(insight)’은 맥락을 읽을 때 생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역량은 점점 퇴화하고 있다. 순간적이고, 자극적이고, 흥분시키는 정보에 익숙해져 앞뒤의 맥락이 무시된다. 아예 그런 관심 자체가 부족해졌다.
요즘 사람들은 특정 사안에 놀라울 정도로 해박하지만 앞뒤 맥락을 이해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편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지는 게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텍스트힙(Text Hip·읽는 것이 멋지다)’ 열풍이 불고 있다. 사고력과 판단력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인간은 생각할 능력을 가진 지구상 유일한 생명체다. 생각하는 힘으로 진화해온 ‘호모 사피엔스’가 ‘뇌 썩음’으로 인한 지적(知的) 퇴화에 반발하는 것이 ‘텍스트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종족 보존의 본능’ 아닐까.
우리 사회 한복판에도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디지털 개미지옥’이 사로잡고 있다. 극심한 좌우 분열로 탄핵 정국에서 내전을 연상케 하는 극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양쪽 극단에는 자극적인 선전 선동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유튜버들이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시민들의 시간을 장악하고 세상을 단편적이고 감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텍스트힙 열풍은 이럴 때 나왔다. 2030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라는 것도 흥미롭다. 미래가 밝아지는 느낌이다.
사실 ‘텍스트’를 제공하는 기성 언론에선 유튜버들이 지어내는 음모론은 꺼내기 힘들다. 독자들과 신뢰를 중시하며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신중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종종 늦기도 하고, 순간적인 자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재미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개심을 유발하는 사회적 흉기가 되거나 극단주의를 부추기진 않는다.
First things first에서 First thing 즉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이다.
‘텍스트힙’ 열풍은 단순히 읽기의 이슈는 아니다.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다.
혹시 주변에 자주 흥분하고 여의도나 광화문에 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사람이 있나. 혹은 분노에 휩싸여 적개심을 표하는 이웃이 있는가.
유튜브나 SNS만 보지 말고 책이나 신문, 잡지를 읽어보라고 권하라. 소설이나 에세이도 좋다. 순간적으로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다 앞뒤 맥락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그래야 음모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안위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도 그 ‘맥락’에서 생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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