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정착해 <용문소로일기>를 쓰기까지

이보슬 2024. 12. 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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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울자들] 그림과 글을 다루는 예술가 키므네 이야기

[이보슬 기자]

'서울공화국'은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인구를 풍자한 말이다. 나는 약 5년간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살았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동경하며 강릉에 집도 구했었지만, 결국 서울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회귀했다.

딜레마를 겪으며 '탈서울' 한 전국의 청년들을 찾아가 인터뷰와 사진 촬영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과 왜 서울을 떠났는지, 지방에 살면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수익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삶의 가치를 어느 쪽에 두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탈서울 청년들을 기록하는 것은 '인구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세요!'와 같은 거창한 의도를 갖진 않았다. 그저 가중되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반대로 서울을 떠나 사는 그들의 삶을 더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지난 11월 12일 인터뷰한 키므네는 그림과 글을 다루는 예술가로,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주해 남편과 두 아이, 바로 옆 건물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
 예술가 키므네와 그녀가 가족들과 함께 지은 집
ⓒ 이보슬
양평에서의 삶

- 서울에서 살다가 어쩌다 양평에 집을 짓고 살게 됐나요?

"30대 초반까지는 서울에 살았어요. 결혼하고 남편과 시어머니와 잠실에서 살다가 시골 생활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전세로 살 집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십 채의 집을 봤어요. 그러다 용인에서 모두가 마음에 들어하는 전원주택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약 2년 반 정도 살았죠.

용인의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집의 구조는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화장실이 네 개였는데, 그렇게 많은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경험을 통해 저희가 원하는 집의 기준이 생겼고, 양평에 집을 지어 살게 됐어요.

만약 집을 짓고 싶은 분이 있다면 꼭 다른 집에서 살아보며 경험을 쌓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턱대고 집을 짓기보다는 먼저 살아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었으면 좋겠어요."

- 2023년도에 교육 때문에 서울에 전입한 인구가 역대 최고라고 해요. 양평에 살면 교육 측면에서 걱정되는 것은 없나요?

"남편과 교육관이 잘 맞는 편이에요. 남편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종종 흔들릴 때도 있지만 남편이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해서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줘요. 아이들이 경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저를 닮아 미술을 좋아하고, 둘째는 과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첫째 아이 이름이 봄, 둘째 아이 이름이 나무에요. 첫째가 봄이니까 사람들이 둘째는 '여름'이나 '가을' 같은 이름을 기대하더라고요. 저는 둘째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기도 했고(웃음), 봄철에 새싹이 돋고 생명이 살아나는 느낌이 좋아서 이렇게 지었어요."

봄이는 꽃을 그릴 때 항상 뿌리를 그려요. 뿌리가 잘리면 죽은 꽃이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자기 싸인도 뿌리가 있는 장미를 그려 넣어요. 그 모습이 참 멋지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은 양평에서의 삶을 기억하며 자라게 될 거예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와는 많이 다르겠죠.

- 양평 살며 좋은 점은 뭔가요?

"집 문만 열고 나가면 자연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게 좋아요.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어요. 단순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계절과 계절 사이를 자세히 느낄 수 있어요.

고향인 서울은 한 달에 한두 번 놀러 가곤 해요.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놀러 오지만, 저는 반대로 서울에 놀러 갔다 오는 거죠. 지하철역에서 내릴 때 양평의 진한 풀내음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요. 아이들이 넓은 하늘과 산, 나무, 곤충, 동물, 꽃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것도 좋고요.

자연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곳에서는 자연을 구색 맞추기로 들여다 놓아도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데, 사람보다 자연이 더 많은 곳에서는 자연에 사람이 동화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다'는 게 어떤 건지 느끼게 되죠."

내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편리함, 학군, 교통, 집값이 가장 중요할 수 있죠. 저는 자연 속에서 살면서 얻는 경험이 더 중요한 사람 같아요. 그런 건 눈에 보이는 가치로 환산이 되진 않지만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키므네의 방에서
ⓒ 이보슬
예술가 키므네에 대하여

- <용문소로일기> 책을 쓰기 전에 웹툰부터 그렸죠? 그림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중학교 무렵부터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 당시 만화가가 되면 "굶어 죽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갈등하다가 결국 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잡고, 디자인을 전공하며 회사에 취업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일상툰을 올리기 시작했고, 필리핀에 두 달 정도 다녀온 후에 그 경험을 담아 여행 웹툰을 그렸어요.

결혼 후에는 결혼 권장 웹툰을 그려보자고 결심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깨알공장공장장'이라는 네이버웹툰이었죠. 1알, 2알... 한 화씩 깨알을 생산하며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총 50화 넘게 연재했던 것 같아요. 그 웹툰이 네이버 정식 연재는 아니었지만 베스트도전작으로 선정되면서 많은 분들이 봐주었어요. 그 덕분에 홍보용 웹툰 의뢰도 들어오고, 다양한 일을 할 기회도 생겼죠.

한 번은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이 제 만화를 알고 있는 거예요. '나를 아신다고?' 하는 신기한 경험이었죠. 나중에 보니 깨알공장공장장 조회수 총합이 50만이 넘었더라고요. 꽤 많은 분이 제 만화를 즐겨주셨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용문소로일기, 키므네(지은이)
ⓒ 인디펍
- 두 아이의 엄마잖아요. 양육자와 작가로서의 병행이 힘들진 않았나요?

"2022년에 무기력과 번아웃이 심하게 왔어요. 육아랑 프리랜서 일이랑 같이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육아도, 만화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고, 아이들을 재우고 그림을 그리려 해도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되어 정작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밤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인터넷 쇼핑으로 아이들 옷 같은 것을 사는데 시간을 쓰며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었죠. '이렇게 만화 그리면 몇 편이나 그릴 수 있을까, 세상에는 너무 멋진 작가들이 많은데...' 늘 뭔가에 쫓기듯 여유가 없었고,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았어요.

번아웃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2022년도에 나눈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됐어요. 어느 날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둘째와 산책을 나갔을 때 이웃 아주머니를 만났거든요. 대화를 나누다가 둘째도 곧 어린이집에 갈 거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묻더라고요. "그럼 봄이 엄마는 집에서 뭐 해?" 그래서 "저는 일하죠"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고, "만화도 그리고..."라고 대답했는데, 그때 대답이 뭔가 비루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때 깨달은 거죠. 코로나 이후로 내가 이런 웹툰이나 그림으로 돈을 번 적이 없구나, 하고. 나는 하루 종일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시간과 마음을 써왔는데,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부업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알아봤어요. 관련해서 들은 클래스 101 수업도 처음으로 완강했어요. 해외 구매대행, 블로그 운영 등도 조사했지만, 결국 '구글 애드센스'라는 수익 모델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구글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광고를 삽입하고, 사람들이 글을 클릭하면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예요.

온전히 부업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났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영화 리뷰를 티스토리에 작성하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쁜 삶을 살았어요. 마침내 애드센스 승인을 받았을 때, '끝까지 해냈구나'라는 성취감을 느꼈고, 특히 제 글에 두 명의 독자가 "좋아요"를 눌러준 것에 감동했어요. 웹툰보다 훨씬 적은 반응인데, 이 작은 피드백에도 너무 기쁜 거예요."

웹툰을 그릴 때는 좋아요가 많으면 많은대로 걱정, 적으면 적은대로 걱정이었거든요. 글을 쓰며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감상을 남겨줄 때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비록 애드센스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해 보기로 한 거죠.
 키므네의 집 서재
ⓒ 이보슬
- 책을 쓰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이 있었나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강좌에 참여했는데, 글을 계속 지우고 다시 쓰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강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급하게 글을 써서 마쳤는데, 이 경험을 통해 성향인 완벽주의가 얼마나 큰 장벽인지 깨닫게 되었죠. 완벽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글이든 만화든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예술적인 것을 빨리 배출해내지 못하는 창조성 변비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 '아티스트 데이트'를 추천하더라고요. 내 안에 있는 예술가와 데이트를 해보는 거예요.

데이트를 해보려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어요. 그러다 김신지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됐어요. 책을 읽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글도 좋았지만, 내가 가진 생각들을 이렇게 쓰고, 책으로 만든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이후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운명처럼 한 자리가 남아있어서 참석할 수 있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글을 쓰시나요?"라는 질문에 작가님은 "제 맞은편에 저와 닮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라고 말했어요. 마침 제 앞에 저랑 좀 닮은 분이 앉아 있는 거예요. 단발머리의 여자분이었는데, 북토크 시작 전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이도 같고, 글도 쓰고 있더라고요. 그 만남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도 세상에 존재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책을 쓰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죠.

2023년 봄, 책 출간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방 벽에 '나의 책으로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다'라는 목표를 붙여 두었어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정말 책을 출간하고, 북토크까지 열게 됐어요. 5년 안에 쓰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이룬 거죠."

단 시간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 첫 째는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 준 '모임' 때문이고, 두 번째는 마감일을 약속해둔 '기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물성'이에요. 머릿속으로 100번 만들어봐도 실제로 내 손에 쥐어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경험이 중요해요.

웹툰을 그릴 때는 인터넷 속에서 휘발되어 가고 피드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참에 고장 난 프린트기를 바꿔서 제 그림을 한 장 뽑아봤어요. 제 책상 앞에 다른 사람 그림을 떼고 제 그림을 붙여놓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 칠판에 쓰여있는 목표는 이루셨고, 이제 새로운 목표를 쓸 때가 된 거 같은데, 무엇을 써놨나요?

"최종 목표는 제 작업으로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제 책을 한 권 쓰고 나서,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됐어요. 특히 그림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고,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직접 그려 넣는 작업이 저에겐 더 큰 의미로 다가왔죠.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남기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미술의 세계는 너무 넓고 깊더라고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가 이번에 신진예술인 인증을 받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되찾을 수 있었어요.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영감을 얻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저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누구의 엄마로 비치니까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자아를 찾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미술, 문학, 음악, 연극 등 각자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경쟁보다는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고 피드백을 주는 분위기거든요.

모두가 불안감 속에서도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더라고요. 이런 과정도, 사람도 전부 예술처럼 느껴졌어요. 전에는 "나는 예술가야"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덕분에 예술가라는 정체성에 확신을 갖게 됐어요."
 예술가 키므네
ⓒ 이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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