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만 내면 내집 마련" 이런 민간임대아파트 사기 속출

함종선 2024. 12. 3.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 분당구 오리역 인근에 지난달 문을 연 10년 민간임대아파트 모델하우스. 이 모델하우스는 시행사가 화재보험 가입한 지 하루만인 지난달 27일 전소됐다. 함종선 기자

“지자체에 확인해보니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들은 얘기와 너무 달라 최근 가입한 민간임대아파트 회원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자 측은 계약금 대부분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하고 대형 부동산신탁회사에서 내가 낸 돈을 맡아 관리하기 때문에 돈 떼일 리 없다는 말에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명백한 사기 아닌가요.”

3000만원만 있으면 용인시 10년 민간임대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말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김모씨의 얘기다. 용인시 공동주택팀 관계자는 “요즘 민간임대 관련 문의를 하는 시민이 하루 평균 30명 정도로 크게 늘었다”며 “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 용인 지역에서 홍보 중인 민간임대주택 현장 8곳 중 시로부터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고 앞으로도 승인받기 어렵다는 내용을 지역 언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아파트 분양시장에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사기 주의보’가 내려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기획부동산과 같이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려는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제2의 전세 사기’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인천광역시, 경기 광주시, 충북 청주시 등의 지자체도 10년 민간임대아파트와 관련해 피해를 주의하라는 자료를 계속 내고 있고 대구경찰청은 민간임대아파트를 짓는다며 조합을 만들어 조합원 225명으로부터 출자금 143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시행사 대표 등 3명을 최근 구속 송치했다.

경기 광주역 드림시티 모델하우스. 평당 800만원대 전셋값으로 입주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함종선기자

요즘 유행하는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은 주로 조합원이나 회원 모집을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한 뒤, 이 돈으로 토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합원이나 회원이 되면 전셋값을 내고 10년간 산 뒤 최초 입주 시 확정한 분양가로 우선 분양을 받을 수 있다고 10년 민간 임대아파트 업자들은 홍보한다. 또 HUG 임대보증, 부동산신탁회사 자금관리 등을 내세우며 이 사업이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게 ‘기획된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말 모델하우스를 열고 회원을 모집하는 ‘경기광주역 드림시티’의 경우 예비입주자들이 계약금을 떼일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시행사 대표는 “예비 입주자들이 낸 가입비(계약금)는 무궁화신탁을 통해 관리되며 최우선으로 토지매입에 사용된다“고 말했다.


계약금 6000만원 가운데 업무대행비 명목으로 3190만원 소멸

하지만 깨알같이 적혀있는 계약서 중 12조 3항을 보면 예비입주자가 낸 회원가입금 중 업무대행비(계약자당 3190만원)는 소멸하며 시행사가 사업비로 사용하거나 사용할 예정금액을 차감하고 잔액이 남아있는 경우에 한해 환급한다고 돼 있다.

드림시티 계약서 일부. 가입금 관리계좌의 예금주가 무궁화신탁이고, 업무대행비가 3190만원으로 돼 있다. 독자 제공
계약서에는 회원 탈퇴시 업무대행비 등이 소멸된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독자 제공

드림시티 계약자들은 우선 자기 돈으로 3000만원을 내고 계약한 뒤 개인 신용대출 3000만원(시행사가 이자를 내는 조건으로 시행사가 대출 알선)을 받아 추가 납부하는 등 총 6000만원을 내는 구조다.

그런데 계약서에 따르면 6000만원 가운데 3190만원은 무조건 없어지고 나머지 돈도 사업비를 제외하고 환급해준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토지매입’에 사용된다는 시행사 대표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부동산신탁회사는 자금관리 업무를 맡아 사업자의 자금유용을 방지하고 개발 프로젝트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금융회사다. 그런데 드림시티 계약서를 보면 이런 부동산신탁회사 본연의 기능과는 전혀 달리 무궁화신탁이 사업자의 자금 유용을 ‘방조’하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무궁화신탁 관계자는 “이 시행사와 맺은 계약은 단순한 ‘자금 대리 사무 계약’이기 때문에 시행사가 계약서상에 어떤 내용을 넣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궁화신탁의 엉터리 사업 수지 분석

무궁화신탁의 드림시티 사업 수지 분석 자료에 따르면 평당 사업원가가 1110만원(건축비 510만원, 땅값이 600만원)으로 돼 있다. 그런데 요즘 아파트의 평당 건축비는 최하로 잡아도 800만원 이상(지하주차장 등 서비스 면적 공사비 포함)이다.

모 대형 건설사의 주택사업본부장은 “광주역 아파트 프로젝트의 경우 평당 아파트 조성원가가 1700만원 가량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런 사업을 사업자가 회원으로부터 조성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평당 1250만원의 전셋값(시행사 발표자료)만을 받고 10년간 유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대표는 “무궁화신탁의 사업 수지 분석 자체가 건설업계 현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며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부과 명령을 받는 등 경영위기에 몰린 무궁화신탁이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 크게 무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궁화신탁은 드림시티 시행사와 자금 대리 사무계약(수수료 19억원)을 지난 10월 21일 맺었지만 아직 계약금(총 수수료의 10%)도 못 받았다고 밝혔다.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자들이 '안전장치'로 HUG와 신탁회사를 내세우는 내용. 독자제공

드림시티 시행사가 강조하는 안전장치는 신탁회사 말고도 또 있다. 시행사 대표는 “착공이 이뤄지면 가입비는 전세보증금으로 전환돼 HUG로부터 전액을 보증받기 때문에 가입비가 위험하다는 식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HUG 관계자는 “HUG의 ‘임대보증금 보증’이라는 상품은 사업승인이 나고 인허가관청의 입주자모집 관련 승인이 난 이후에나 취급할 수 있는 상품”이라며 “사업승인조차 나기 어려운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지에서 HUG를 안전장치로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고 있고 조만간 강력하게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의 이상근 교수는 “내 집 마련의 꿈이 간절한 서민이 피해를 보지 않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