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로또분양', 대가족 선발대회? 무주택 5인 가족도 당첨 장담 못해

김원 2024. 9. 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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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르엘 투시도. 롯데건설


최근 청약을 진행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르엘’의 1순위 평균 당첨 가점이 75.6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수는 5인 가구가 15년 이상 청약 통장에 가입해, 이 기간 주택을 한 번도 소유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는 만점(74점)보다 높다. 모든 주택형에서 최소 당첨 가점은 74점이었다. 5인 가구 만점자도 청약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30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등에 따르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이른바 ‘로또청약’이 최근 잇따라 등장하면서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청담르엘의 3.3㎡(평)당 분양가는 7209만원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단지 가운데 역대 최고가다.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는 22억~25억원 수준으로 인근의 ‘청담 자이’ 전용 82㎡가 지난 6월 32억9000만원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10억원 안팎의 시세차익이 기대된다. 실거주 의무도 없어 분양 전부터 ‘로또청약’으로 관심을 모았다. 실제 지난 20일 1순위 청약에선 85가구 모집에 5만6717명이 접수해 평균 667.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분양한 다른 단지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달까지 강남권에서 분양한 메이플자이(강남구·2월 분양)·래미안원펜타스(서초구·7월)·래미안레벤투스(강남구·8월)·디에이치방배(서초구·8월) 등 4개 단지의 평균 당첨 가점은 73.1점으로 집계됐다. 최저 가점 평균은 71.9점으로 15년 무주택 4인 가구 만점자(69점)조차 당첨이 사실상 어려웠다.

한국부동산원이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일반공급 가점제 당첨자(7월 말 기준) 655명 중 5인 이상의 대가족이어야 나올 수 있는 '70점 이상' 가점은 220명(33.6%)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강남 3구‘ 당첨자를 보면 70점 이상 가점 비중이 83%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1~2인 가구의 비중이 매년 폭증한다던데, 5인 이상 대가족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강남 청약은 대가족 선발대회냐“는 식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울러 “가족들이 실제로 함께 거주하는지 조사해봐야 한다”는 의심의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심지어 7인 가구 이상이 받을 수 있는 청약 만점인 84점 당첨도 수백 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민간 아파트 청약 당첨자 중 부양가족이 5명 이상(7인 가구 이상)인 경우가 총 3536건에 달했다. 서울은 같은 기간 380건에 육박했다.

이에 예비청약자들 사이에선 부모나 배우자 부모, 성인 자녀 등을 위장 전입시켜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편법 동원이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약 가점 항목인 무주택 기간(32점 만점)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은 불법이나 편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다.

신재민 기자


실제 국토부가 복기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4년간 적발된 부정청약 건수는 총 1116건이었다. 매년 부정청약 건수가 250여 건에 이르는 셈이다. 이 중 위장 전입으로 적발된 사례가 778건(69.7%)으로 가장 많았다. 복기왕 의원은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나 이통통신 조사 등을 통해 위장 전입으로 세대원을 늘려 가점을 높이는 방식 등에 대한 조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등 인구 구조가 변화하고 있지만, 청약 제도는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1순위 청약 추첨제 비중을 늘리긴 했지만, 여전히 가점제 비중이 높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당분간 서울 아파트 공급 절벽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청약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며 “부양가족 수(만점 35점)보다 무주택 기간(32점) 등에 대한 가점 비중을 높이는 등 현실에 맞는 청약제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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