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틀어막은 대가"…반포 국평 60억 '미친 가격' 찍었다

김원 2024. 9.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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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에는 공공개방시설로 한강 뷰를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이를 포함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14개의 공공개방시설이 있다. 중앙포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면적 84㎡(34평형) 9층이 지난달 2일 60억원 거래된 것으로 신고됐다. 3.3㎡(평)당 1억7600만원으로 이른바 ‘국민 평형(전용 84㎡)’ 아파트 가운데 역대 최고가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 지난 7월 18일 55억원(23층)에 거래됐는데, 한 달여 만에 5억원이 올랐다.

바로 옆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도 지난달 7일 이 아파트 해당 면적의 역대 최고가인 51억원(11층)에 손바뀜했다. 2009년에 준공한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난 7월 4일 43억원(17층)에, ‘반포자이’ 전용 84㎡는 지난달 15일 40억2500만원(26층)에 거래됐는데, 이 역시 각 단지의 역대 최고가다.


‘60억원’ 천장 뚫은 반포 집값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고층 가구의 거실에서 바라본 한강 뷰 모습. 용산구 이촌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보인다. 사진 독자
이런 가격이 과연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미친 가격” “거품 낀 가격”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집값을 금융권에 예치해 얻을 수 있는 하루 이자소득이 국내 최고급 호텔 1일 숙박료보다 비싸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높은 가격이라는 얘기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실적으로 주택 자체의 가격이라기보다는 커뮤니티의 가치도 분명 포함돼 있다”며 “커뮤니티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거래 가능한 가격”이라고 덧붙였다

반포가 고가 주거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6년 한강 변에 지어진 ‘아크로리버파크’가 입주하면서부터다. 이 아파트 전용 84㎡는 2019년 10월 34억원(16층)에 거래되며 평당 1억원 시대를 열었다. 2021년 9월에는 42억원(15층)으로 처음 국민 평형 40억원을 넘었다. 지난 6월 50억원(16층)을 처음 기록한 것도 이 단지였다. 지난해 입주한 바로 옆 ‘래미안원베일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강 뷰의 가치 10억원”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에는 공공개방시설로 한강 뷰를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이를 포함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14개의 공공개방시설이 있다. 중앙포토

이를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같은 면적이라도 한강 조망의 여부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크게 나타나서다.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84㎡는 지난달 2일 60억원(9층)을 기록한 이후 16일 48억원(16층), 19일 50억원(4층)에 각각 거래됐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60억원에 거래된 집은 한강 조망이 가능한 로열 동 로열층”이라며 “한강이 보이지 않는 동이나 저층과 가격 차이가 10억원가량 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같은 면적이라도 한강 조망의 여부, 한강 조망이 되는 집도 한강이 어느 정도 보이느냐, 동·층·타입별 선호도 등 한 단지 내에서도 가격이 매우 세분화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한국부동산학회가 낸 ‘한강 조망권이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란 논문을 보면 한강 조망률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실거래 가격이 0.5%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서는 조사 가구 중 한강 조망률(한강 조망의 비율로 3차원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측정)이 가장 높은 가구가 전혀 없는 가구에 비해 실거래가격이 전용면적 1㎡당 503만2000원 높았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틀어막은 대가…국평 60억원으로 나타나


반포 집값의 급등 현상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문재인 정부에서 재건축·재개발을 지나치게 틀어막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을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했다.
신재민 기자


특히 박원순 전 시장은 2014년 전후 서울의 400개에 가까운 재건축·재개발 구역을 해제했다. 이 결과 서울 아파트 공급 부족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엔 재건축을 가로막는 ‘3대 대못’이라 불리는 안전진단,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이 대폭 강화됐다.

특히 규제의 타깃이 된 건 한강 변의 압구정·여의도·잠실·이촌 등 노후 단지 밀집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재건축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앞서 사업을 시작한 반포 지역에는 새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다. 서울의 주거 트렌드가 한강 변과 신축 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반포의 입지적 희소성이 더욱 부각됐고,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것이란 분석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새 아파트 절대 공급 부족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향후 5년 이내에 한강 변에 새 아파트가 등장하기 쉽지 않아 반포의 가치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압구정·대치·여의도·성수·잠실·목동·삼성 등 서울시의 광범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도 반포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인 결과가 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실거주 의무(2년)가 생기면서 고소득 자산가를 중심으로 한 투자 수요가 ‘풍선효과’에 따라 반포로 몰렸다는 지적이다. 박합수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대부분이 재건축 단지인데, 최근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른바 ‘몸테크(재건축 이후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노후 아파트에 사는 것)’ 수요가 줄고, 대신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규제의 영향은 또 있다. 이창무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면서 반포 재건축 조합들이 최고급 설계와 자재를 과도하게 적용해 상대적 가치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집 여러 채 소유하는 것보다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반포 쏠림 현상이 나타난 배경으로 지목된다.


‘키 맞추기’ 나올까…정부는 재건축 특례법 추진


신재민 기자
특정 지역의 가격 급등은 주변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가격의 ’키 맞추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포를 중심으로 한 가격 급등세의 단기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최근 급등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방안 고심 중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다만 서울시와 의회, 자문위원 등 사이에서도 신규 지정에 대한 의견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서울 도심 주택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재건축 기간을 아무리 단축해도 추진단계부터 10년가량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도심 주택공급 효과를 당장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한강 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사업 속도가 빨라지면 신축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에 반포 집중 현상이 일부 완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창무 교수는 “이후에 한강 변에 들어서는 아파트가 늘어나면 반포 신축 아파트에 대한 특권 의식 내지는 선호 현상 등이 상당히 와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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