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영끌은 '노도강' 이젠 '마용성'…10억 빚내 집사는 2030
20대 신혼부부 A씨는 지난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를 14억5000만원에 매수했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3억원가량을 증여받고, 그동안 모은 2억여원에 주택담보대출(주담대) 10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정부가 비규제지역의 LTV(담보인정비율)를 70%까지 확대하면서 A씨는 주담대로 집값의 70%인 10억15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어서다. 대기업에 다니는 A씨 부부의 합산 연 소득은 1억2000만원(세전)이 넘는다. 10억원을 40년 만기, 금리 연 3.7%에 대출받았는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40% 이하였다. 원리금으로 매월 400만원가량을 부담하지만,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라 판단한 A씨는 과감하게 10억원 대출을 실행했다.
이 지역에서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최근 대출이 적은 60대 이상이 집을 팔고, 30~40대가 빚을 내 집을 사고 있다”며 “대출 한도가 늘면서 일부 고소득 맞벌이 부부는 집값의 절반 이상을 대출받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평균 아파트값이 15억원이 넘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동작·강동·양천·광진·영등포구 등 이른바 ‘상급지’에서 주로 나타난다.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수요다. 올해 주간조사 누적 기준으로 서울 자치구별 아파트값 상승률은 성동(6.62%)·서초(5.07%)·송파(5.06%)·마포(4.36%)·강남(3.68%)·광진구(3.63%) 등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서울에서 15억원 초과 아파트가 거래된 비중은 21.1%(20일 기준)를 기록했다. 반기 기준으로 이 비중이 20%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집값 상승이 컸던 2021년 하반기에 이 비중이 17.7%였다.
이재국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최근 부동산 상담을 신청하는 20~40대 전문직·금융권·대기업 종사자 등을 보면 부부 합산 연봉이 2억원을 훌쩍 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대출 원리금을 상환할 형편이 되는 이들이 마용성 등 서울 주요지역의 신축 아파트 매수에 나서면서 최근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뛰었다”고 설명했다.
‘영끌(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 ‘패닉바잉(공포에 의한 사재기)’ 바람이 불었던 2019~2021년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강서·은평·구로 등에서 아파트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 상승 폭이 컸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는 LTV를 주택가격 9억원 이하 40%, 9억~15억 이하 20% 추가, 15억 초과 0%로 대출 한도 규제해 왔다.
이번 정부들어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대부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주담대 한도를 결정하는 LTV가 70%(규제지역 50%, 생애 최초 80%)까지 확대됐고,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담대를 재개했다. ‘거래절벽’이 장기화하는 등 부동산 시장 전반이 침체한 영향이었다. 15억원짜리 집을 매수한다고 가정할 때 3~4년 전에는 LTV에 따른 주담대 한도가 최대 4억8000만원이었지만, 규제 완화로 10억5000만원이 됐다.
하지만 이런 대출규제 완화가 매수세가 회복된 최근에는 되려 가계대출 폭증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주담대 잔액은 6월 말(552조1526억원)보다 7조5975억원 불어났다. 이는 2016년 1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 폭이다. 은행권에선 이달 주담대 증가 폭이 더 확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대출 확대도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실이 한국주택금융공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행된 특례보금자리론 가운데 지난 한해에만 10만2671건(25조8126억)이 신규 주택구매 용도로 공급됐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며, 최대 5억원까지 연 4%대 고정금리로 최장 50년 만기 대출이 가능했다.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끝날 즈음 정부는 신생아특례대출을 내놓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신생아특례대출이 신규 주택 구매 목적으로 1조9830억원(6657건)이 집행됐다. 이들 자금의 평균 LTV는 65.4%로 집값의 60% 이상을 대출받은 것이다. 신생아특례대출은 신생아를 출산했다는 가정 하에 연 1~3%대의 낮은 금리로 9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최대 5억원(지방은 4억원)까지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뤄지고,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신뢰를 지속해서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값 하락세가 2년여 지속하자 정부가 안심하며 시장 상황을 방치한 결과, 집값 급등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현 정부 초기부터 ‘규제 완화’를 예고했지만,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정부의 신뢰를 잃는 결과가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고민이 크다. 대출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오는 9월부터 시행하는데, 이 대책이 부동산 시장에서 효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정부는 LTV 규제를 선택지에 올려놔야 한다. 실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LTV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LTV를 손댈 경우 정부 규제 완화 기조를 1년여 만에 뒤집는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대출규제를 하면 할수록 현금 부자만 유리해지는 구조”라며 “현재 상황에서는 다주택 투자수요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취득세 중과 등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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