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양의 용기가 다른 여성을 구했다

이진민 2024. 7. 16. 20: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년간 폭행-불법 촬영물 유포 협박 받아... '교제 폭력'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실 드러내

[이진민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만 유튜버' 쯔양이 소속사 대표였던 전 연인에게 4년간 폭행과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등을 당했다고 밝혔다. 과거 영상 속 쯔양의 팔 곳곳엔 맞은 흔적이 있었고, 해외 팬들은 일찍이 폭력 피해 사실을 알아챈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두고 '여전히 교제 폭력에 둔감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자성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쯔양이 직접 과거를 털어놓게 된 배경에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일부 유튜버들의 협박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더욱 충격을 줬다.

교제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 방송인은 쯔양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남편의 협박에 성인 방송 출연을 강요당했던 한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왜 그들은 가해 남성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헤어지자고 하니 지옥 같은 일들 벌어져"
 
 유명 유튜버 '쯔양'이 11일 새벽 생방송을 통해 전 연인으로부터 오랜 기간 교제 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 tzuyang6145
 
지난 11일 쯔양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는 "휴학하던 당시 만났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며 "처음에는 나에게 잘해 주다가 점점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헤어지자고 하니 지옥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고백했다.

쯔양은 "나 몰래 찍은 (내) 동영상이 있더라"라며 "헤어지면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영상에 따르면, 쯔양은 '먹방'(먹는 방송) 유튜브를 시작한 초기에 매일 폭행을 당하며 방송을 진행했고 수익금 또한 가해 남성 A씨에게 갈취당했다. 채널 규모가 커지자 A씨는 소속사를 차린 후 불공정 계약을 맺어 최소 40억 원가량 방송 수익을 챙겨갔다.

쯔양의 법률 대리인인 김태연 변호사(태연법률사무소)는 "쯔양 피해가 너무 컸고 (입증) 자료도 많았으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당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였다"며 "처음에는 고소를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피해 사실을 감수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2년 10월 쯔양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처벌법 위반, 공갈 등의 혐의로 고소했으나,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쯔양이 겪었던 피해는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공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영상에는 유튜버 '주작감별사'와 '구제역'이 지난해 나눈 대화가 담겼다. 그들은 녹취에서 "쯔양이 버는 돈이 있으니까 괜찮게 (돈을) 챙겨줄 거 같다", "이 X이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 거 같냐" 등의 대화를 나눴다. 또 유튜버 '구제역'이 '쯔양이 과거 술집에서 일했다'는 유튜브 영상을 방영하겠다고 협박해 5500만 원 상당을 받아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쯔양 측은 당초 피해 사실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같은 녹취가 공개되면서 오해나 억측을 방지하고자 교제 폭력 피해를 진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녹취 속 유튜버들은 협박 사실을 부인하는 가운데, 현재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누리꾼들은 "지금까지 강제로 먹방 촬영한 쯔양이 안타깝다", "쯔양이 겪은 피해를 사이버 레커들은 '콘텐츠' 정도로 생각한다" 등 공분을 터뜨렸고 쯔양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며 연대를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피해 여성 향해 "범죄 프로 그만 봐"
 
 낭만적인 데이트가 교제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영화 <캣퍼슨>
ⓒ 판씨네
 
쯔양처럼 교제 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숨기거나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교제 폭력과 일반적인 폭력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애착 관계 속에서 일상화된 폭력을 겪으며 폭력에 무뎌지거나 정당화한다. 또한 폭력을 가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행동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특히 "좋으니까 만나는 거 아니냐", "오죽하면 때리겠냐" 등 교제 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못하게 한다.

지난 달 개봉한 영화 <캣퍼슨>엔 이같은 교제 폭력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 '마고'는 영화관에서 만난 '로버트'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 만남을 이어가며 고양이를 키운다는 로버트의 말에 함께 집으로 향하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자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고의 상상을 통해 교제 관계에서 여성이 겪는 불안함을 보여준다. 갑자기 둘이 창고에 갇히게 되자 로버트는 "사실 내가 잠근 것"이라며 돌변하고, 그를 강간하려 든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운전하던 로버트는 차를 으스스한 곳으로 몰고 가더니 갑자기 마고의 목을 조른다.

사실 이 모든 건 마고가 상상한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로버트는 실제로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관계에 갈등하던 마고가 친구의 도움으로 로버트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는 문자로 "술집에서 너를 봤다", "왜 나를 안 만나주냐", "과거에는 어떤 남자를 만났냐"며 추궁하더니 끝내 마고를 향해 "걸레"라고 모욕한다. 퇴근하는 마고에게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마고는 도움을 요청하고자 경찰서에 가지만, "(로버트가) 법을 어긴 건 아니다. TV 범죄 프로를 그만 보라"며 되레 혼이 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 등을 보면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그냥 연인끼리 싸운 것 아니냐", "그 정도는 법적 처벌이 되지 않는다"며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특히 교제 폭력은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피의자를 처벌하지 못한다.

이를 두고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은 지난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회유·협박해 범죄 행위를 무마시키거나 고소를 철회하게 할 수 있다"며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제 폭력의 심각성 알려준 사건"
 
 영화 <캣퍼슨> 스틸 이미지.
ⓒ 판씨네마㈜
 
교제 폭력의 범죄 피해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교제 폭력 신고는 7만 7150건으로 201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311명이었다.

쯔양의 피해 사실 고백 이후 교제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분위기다. 누리꾼들은 "교제 폭력의 심각성을 알려준 사건"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서 교제 폭력 피해자를 알아차리는 방법이나 피해 신고 매뉴얼 등을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제 폭력에 대한 별도의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는 반응이다.

방송 말미에 쯔양은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수치스러워서 (A씨에게) 저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쯔양은 카메라 앞에 섰다. 더 이상 그가 '피해자'로서 2차 가해를 겪지 않고, '용기 있는 여성'으로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면. 어딘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피해 여성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줄 수 있지 않을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