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경율 앙투아네트 발언에…尹·한동훈 전화로 언쟁 벌였다 [‘읽씹 논란’ 막전막후]

김기정, 윤지원 2024. 7.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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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한동훈 후보가 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서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 ‘윤ㆍ한 갈등’을 재소환하고 있다. 김 여사가 지난 1월 15일부터 25일까지 다섯 차례 문자를 보냈고, 이에 한 후보가 답하지 않은 바로 그 시점에 ‘윤ㆍ한 갈등’이 표출됐기 때문이다. 김 여사가 처음 보낸 메시지엔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의 갈등이 그 전부터 잠복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9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갈등의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19일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 후보의 발언이었다. 장관 사퇴를 앞두고 있던 그는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법 앞에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날(12월 20일) 일부 언론은 한 후보가 ‘총선 후 특검’이란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고 대서특필했다. 이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려던 윤석열 대통령은 주변에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양측의 첫 균열이 촉발된 것이다. 다만 이후 한 후보는 ‘김 여사 특검법의 조건부 수용을 시사한 것이냐’는 물음에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말을 아꼈다.

김경진 기자

특히 지난해 12월 26일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한 후보는 임기 첫날 “오늘부터는 여당을 이끄는 비대위원장이기 때문에 당과 충분히 논의된 내용에 대해 책임 있게 발언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27일), “특검 거부권 행사는 너무나 당연하다”(1월 5일)며 김 여사 특검법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일부 비대위원의 돌출 발언이 변수였다. 1월 8일 당시 김경율 비대위원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모두 알고 있다.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말을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닷새 뒤 1월 13일엔 박은식 비대위원도 “김 여사 리스크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같은 비대위원 발언에 윤 대통령은 불쾌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인사들이 이런 기류를 전하자, 한 후보는 ‘내부적으로 잘 대화하겠다. 다만 징계는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양측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김 여사는 1월 15일 한 후보에게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린다”며 “한 번만 ‘브이(대통령)’와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떨지”라는 문자를 발신했다.

이틀 뒤(1월 17일) 나온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 여사를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며 사과를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한 후보는 같은 날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전격 발표했다. 그러자 여권 안팎에선 “김경율의 발언이 한동훈의 생각이 아니냐”는 관측이 급속도로 퍼졌다.

지난 1월 29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김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이후 윤 대통령과 한 후보는 전화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19일 이후 4주가량 임시 봉합했던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1월 18일) 한 후보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하다. 사과로 해결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하고 싶다”는 19일 김 여사의 발신 문자는 이런 상황에서 보내진 것이다. 김 여사는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모든 걸 위원장님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

이 문자를 두고 친윤계와 친한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친윤 측은 “명백하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입장인 반면, 한 후보 측은 “전후 사정을 보면 사과 취지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한 후보 측이 주목하는 건 19일 문자 중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포인트 빠졌다”는 대목이다. 당시 김 여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일부 대통령실 참모들이 문자와 비슷한 논거로 김 여사 사과에 반대했고, 이런 기류를 한 후보 측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월 21일 당시 이관섭 비서실장은 윤재옥 원내대표가 배석한 3자 회동에서 한 후보에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고, 한 후보는 거절했다. 윤ㆍ한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시점이다. 갈등 폭발에 따른 여권 공멸 우려가 커지자 윤 대통령과 한 후보는 이틀 뒤(1월 23일) 충남 서천 화재현장서 재회했다. 김 여사는 이날 “(한 후보는)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다”며 “김경율 회계사의 극단적 워딩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님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씀에 이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앞선 네 차례 문자에도 답이 없자 김 여사는 1월 25일 마지막 문자를 발신한다.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큰맘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는 내용이었다. 김 여사는 이어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조만간 두 분이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는 나흘 뒤인 같은 달 29일 대통령실에서 2시간 37분간 오찬 회동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개월이 넘게 지난 시점에도 김 여사가 보낸 문자는 국민의힘 7ㆍ23 전당대회를 강타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 반년 동안 꼬일 대로 꼬인 감정을 풀지 못하고 내부 신경전만 벌인 게 아닌가”라며 “전당대회가 끝난 뒤라도 이 문제의 매듭은 어떤 형태로든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정·윤지원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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