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재입찰 나선 ‘가덕도 신공항’…속도전만이 능사 아냐
‘10조 5000억원.’
정부가 지난 5월 가덕도 신공항의 기초 뼈대를 만드는 부지조성공사를 발주하면서 책정한 사업비다. 이 공사는 가덕도 신공항 전체 시설 중 여객터미널과 접근 도로·철도 등 건축공사를 제외한 부지 조성(667만㎡)과 활주로 1개(길이 3500m), 유도로 12개, 계류장(72대 주기), 방파제와 항행안전시설 등을 구축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 시행된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 역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여러 이유로 건설 경기가 불황인 상황에서 이렇게 큰 사업이라면 시공을 맡을 건설사, 설계를 담당할 엔지니어링사 모두 군침을 흘릴 만하다. 게다가 정부가 직접 사업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니 돈을 떼일 염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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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조 공사, 응찰자 없어 재공고
너무 촉박한 공사 기간 걸림돌
대통령은 “29년 말 개항” 약속
현실 직시하고 일정 조정해야
」
하지만 1차 입찰은 참여자가 없어 유찰됐고, 지난 7일 재입찰 공고가 났다. 정부는 오는 24일까지 다시 사전심사 신청서를 접수한다는 일정이지만, 제대로 입찰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선 국내 상위권 엔지니어링사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대형 건설사도 한두 곳 정도만 입찰 준비 중이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들 건설사도 사업성보다는 정부의 압박을 뿌리치지 못해 참여한다는 게 건설업계 관측이다.
초대형 사업에 리스크도 그만큼 커
이처럼 가덕도 신공항 공사가 외면받는 이유는 뭘까. 엔지니어링업계로만 보면 국토교통부가 책정한 설계비(817억원)에 대한 불만이 크다. 업계가 주장하는 적정 설계비는 최소 1800억원 이상이다. 한 엔지니어링사 고위 관계자는 “깊은 바다를 메워서 그 위에 큰 공항을 짓는, 국내에선 시도한 적 없는 난공사이기 때문에 적절한 설계를 하려면 합당한 설계비가 책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컨소시엄 구성 요건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한 취지로 상위 10대 건설사(시공능력평가액 기준)는 한 컨소시엄에 2개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모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무려 10조원이 넘는 사업인데 대형 건설사를 2개로 제한한다면 리스크도 그만큼 커진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더 거대한 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너무나 촉박한 공사 기간이다. 국토부가 낸 입찰공고에 따르면 설계는 기본설계(150일)와 실시설계(150일)를 합해 10개월 이내에 끝마쳐야 한다. 그 뒤 부지조성공사는 60개월(5년) 이내에 완료해야만 한다.
해당 업계는 바다와 육지에 걸쳐 건설되는 가덕도 신공항의 입지적 특성을 고려하면 부등침하(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현상)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데다, 상대적으로 깊은 바다를 매립하면서 공항을 만드는 공사인 탓에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알 수 없어 2029년 말 개항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자칫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각종 변수와 사고 등으로 공사가 늦어지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고 한다. 김병종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는 “엔지니어링사나, 건설사나 매립공사에 대한 기술적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워낙 금액이 큰 공사라서 문제가 생길 경우 회사가 망가질 수 있다는 걱정도 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엑스포 무산에도 공사 일정은 그대로
국토부도 사업 기간이 짧고, 변수가 많은 도전적인 공사라는 점은 인정한다. 당초 2022년 4월에 공개된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사타) 결과에선 부등침하 등을 고려해 공항 전체를 해상에 건설키로 하고, 공사 기간도 9년 8개월로 잡았다. 개항은 2035년 6월이었다.
그러나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위해 개항을 당겨야 한다는 부산 지역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계획이 급변했다. 이듬해 4월 발표된 기본계획에서 육·해상에 걸친 공항으로 바뀌었고, 개항 시기도 무려 5년 반이나 당겨진 2029년 말로 변경된 것이다.
이후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면서 관련 일정이 정상적으로 조정될 거란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가덕도 신공항 공사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가덕도 신공항을 반드시 계획대로 제대로 개항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부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2029년 말 개항을 재차 약속했다.
이 때문에 국토부로서는 개항 시기는 조정할 수 없는 ‘불가침의 성역’이 돼버린 모양새다. 설계·공사 기간 모두 2029년 말 개항을 기준으로 거꾸로 계산해서 나온 수치라고 한다. 부산 지역에선 개항 시기가 늦춰지면 자칫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부산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덕도 신공항이 온전한 글로벌 공항으로 개항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이 추진해 가겠다”고 언급한 점까지 고려하면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현직 대통령에다 거대 야당 대표까지 모두 추진을 약속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최우선 과제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한 공항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윤문길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급했던 엑스포 유치가 불발된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공사일정 조정뿐이 아니라 자금조달 계획, 공항운영 정책 등을 다시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령 지금처럼 밀어붙여서 시공사와 설계사가 어렵사리 정해지더라도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나온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사 난이도 등을 고려해보면 강행할 경우 부실공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과 정치권은 이제라도 가덕도 신공항의 현실을 직시하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고집스러운 속도전만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공항 설계와 건설은 전문가의 영역에 맡겨야만 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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