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자유’ [김선걸 칼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을 ‘국가’라고 칭하자 중국 네티즌들이 발끈했다고 한다.
그가 지난주 대만을 방문했을 때 언론의 질문에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라고 답한 데 대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라고 부르는 자체를 금기시한다. 중국 네티즌들은 “엔비디아 제품을 제재하라”거나 “엔비디아 직원이 중국 땅을 못 밟게 하라”는 등 와글와글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정부는 며칠 동안 꿀 먹은 벙어리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외교 관계를 단절하거나 경제 제재에 나서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중국 정부가 젠슨 황 눈치를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엔비디아의 반도체는 지금 품귀다. 미국 정부는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수입을 못하면 중국이 AI에 뒤처진다. 엔비디아는 현재 중국의 슈퍼 갑이다.
젠슨 황이 이 말을 한 타이밍은 절묘했다. 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 취임 직후, 중국은 대만을 4개 방향에서 에워싸고 전투기와 전함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더구나 4일은 마침 ‘천안문 사태’ 35주년 기념일이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 정부가 군을 동원해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하며 수천 명의 사망자(정부는 200~300명 주장)를 낸 사건이다.
대만계인 젠슨 황이 이런 민감함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모국 대만을 과감하게 ‘국가’라 칭한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중국에 대한 에두른 견제로 읽힌다.
사실 젠슨 황은 존재 자체가 자유주의 체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의 부모 세대는 중국 내전과 공산주의 압제를 피해 대만으로 건너왔다. 부친은 화학 엔지니어, 모친은 교사였다.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 가 젠슨 황 형제를 키웠다. 만약 그들이 중국에 남았다면?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전체주의 교육을 받고 어쩌면 지금 분노를 퍼붓는 중국 네티즌 중 한 명이 됐을 수도 있다.
지금 세계 강국들은 ‘반도체 전쟁(Chip War)’ 중이다. 비유하자면 엔비디아는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진 유일한 기업이다. 중국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는 너무 낯설다.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심각한 피해를 당했고, 롯데는 무려 3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중국서 쫓겨났다.
이런 중국이 일개 기업인에 대해 저자세를 보이는 모습이 생경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의 발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유는 힘에서 나오고, 시장 경제에서 그 힘은 기업이 키운다. 기업의 역할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기업이 즐비한 한국의 위상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크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의 기업은 단순히 경제를 넘어 평화와 안보의 근간이다.
이즈음 한국에선 삼성전자 노조가 최초로 총파업을 선언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이다. 월급이 많아 파업의 권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반도체 전쟁’ 관련 기업은 한국, 미국, 일본 등 각국 정부가 수십조원씩 보조금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주며 운명을 건 경쟁을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 수십조원이 투입된 기업의 억대 연봉 노조라는 뜻이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각축 와중에 혈세로 지원된 돈을 더 달라는 파업이 명분이 있는 것인가.
7일 미 증시에서 엔비디아 시총은 3조달러로 애플을 넘어섰다. 젠슨 황의 가죽 잠바와 삼성 노조의 머리띠가 오버랩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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