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워지는 지구, 기후 소송은 브레이크가 될 수 있나 [최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최현철 2024. 6. 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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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 참관해보니


최현철 논설위원
날씨가 심상치 않다.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4월부터 기온이 섭씨 45도를 웃돌아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인도는 5월에 이미 50도를 넘었다. 기온이 높아지면 대기에 수증기가 많아지는데, 공기가 품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폭우로 쏟아진다. 지난 4월 두바이에선 12시간 만에 1년 치 강수량인 100㎜의 폭우가 쏟아져 사막이 물바다가 됐다. 브라질과 동아프리카에선 폭우로 수백 명이 숨졌다. 기후학자 앤드루 데슬러 텍사스 A&M대 교수는 “지금 기후는 20세기의 패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경고한다.

「 전 세계 기후소송 2340여건…헌재 4건 병합해 공개변론
2차변론서 청구인 증언…초등생 제아 ‘내 꿈이 사라진다’
청구인측 “우리 감축목표 너무 낮고, 다음 정부에 떠넘겨”
승소 사례 잇따르지만 WMO “5년새 1.5도 넘을 확률 86%”

5월 4일(현지시간)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의 포르투 알레그리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겨 있다. 브라질 남부지역에 일주일 이상 내린 폭우로 5일 현재 최소 78명이 숨지고 105명이 실종됐다. 이재민은 12만명에 육박한다. AFP=연합뉴스

세계 각국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교토의정서에 이어 파리협정을 체결해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막겠다는 목표에 합의했다. 각국은 자발적으로 이를 이행하기 위한 감축계획(NDC)을 내고 점검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각국 정부를 상대로 더 엄격한 감축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라는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 런던정경대 산하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이런 소송이 현재까지 2340여건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4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재는 이 사건들을 병합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 공개변론을 열었다. 아시아에서 처음이라는 기후소송을 따라가 봤다.

쪽쪽이 유아, 농부 꿈 초등생…특별한 원고들

헌법재판소는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열었다. 5월 21일 진행된 2차 변론에 앞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청구인중 한 명인 한제아(12, 왼쪽)이 마이크를 들고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기후소송은 2020년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심판 대상 법 조항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도록 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구 녹색성장기본법 42조)과 관련 시행령(40% 감축으로 상향) 및 이행계획이다. 이 목표가 너무 낮아서 기온상승 제한폭 1.5도를 지킬 수 없고, 미래세대의 평등권이 침해된다는 취지다. 이후 2021년 시민 130명, 2022년 어린이 62명, 2023년 시민단체 등이 차례로 헌법소원을 냈다. 그동안 첫 소송을 낸 청소년은 대학생이 됐고, 아기 소송에서 원고로 이름을 올린 태아는 건강하게 태어나, 이번 변론에서도 쪽쪽이를 물고 엄마 품에 안긴 채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5월 23일 열린 2차 변론에서 헌재는 청구인들 중 3명에게 특별 진술 기회를 줬다. 청소년 소송 원고 김서경(23) 씨는 “그동안 탄소중립위원회에도 참여했지만, 청소년은 액세서리일 뿐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아 결국 탈퇴했다”며 마지막 노력으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시민소송을 낸 녹색연합 황인철 기후에너지팀장은 “헌법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권리장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마지막으로 증언대에 선 초등학생 한제아(12)양은 “멸종 위기종에 대해 공부하고 봄·가을이 짧아지는 것을 보며 나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느꼈다”며 “기후변화를 우리한테 해결하라는 것은 어른들이 무책임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농부가 꿈이라는 제아양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미루면 더 많은 것이 사라질 것이고 내 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조곤조곤 말했다.

소송의 쟁점

국내 첫 기후소송이 공개변론이 열린 4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연합뉴스

1, 2차 변론은 모두 4시간 넘게 진행됐다. 청구인 측 대리인들은 치열했고, 정부 측 변론을 맡은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들은 차분하면서도 끈기있게 방어막을 펼쳤다. 9명의 헌법재판관이 양측에 던진 질문은 송곳 같았다. 변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쟁점을 소개한다.

◆우리 약속은 충분한가=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처음 설정된 것은 교토의정서 시절인 2010년이었다. 당시 예상한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의 30%를 줄여 배출량을 5억4300만t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교토의정서 체제가 파탄 나고 2015년 새로운 국제적 약속인 파리협정이 체결됐다. 우리 정부도 이때 새 목표를 내놨다. 감축목표(전망치 대비 37% 감축한 5억3600만t)는 이전과 비슷하고 목표 시점만 2030년으로 10년 늦춘 것이었다. 이후 기후 사정이 훨씬 심각하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커지며 2021년 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막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전 세계가 합의했다. 우리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 실현,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의 40% 감축이라는 수정 목표를 발표했다.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0년 처음 설정된 이후 두 차례 수정됐다. 최종적으로 2030년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한 4억3660만t으로 확정했다. 그림에서 괄호 안은 각 목표량이 발표된 연도. 자료=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감축목표가 너무 낮다고 주장하는 쪽에선 2010년 감축 목표를 내놓은 뒤로도 꾸준히 배출량이 늘어온 점을 지적한다. 한국 배출량은 2018년이 돼서야 7억2500만t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최대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40% 감축 목표가 높아 보여도 절대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주장이다. 청구인 측 김영희 변호사는 “국제사회에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처음 목표를 세운 2010년도 기준으로 감축량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준연도를 바꾸면 우리 배출 목표는 절대량은 같아도 감축 비율이 27%로 떨어진다.
반면 정부 측에선 목표 수정이 우리 잘못이라기보다는 새 협정에 따라 기준 시점을 변경한 것이라는 방어논리를 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난 8년간 약속을 못 지켰다는 공세를 피해가기엔 논리가 궁색해 보였다.

◆감축의 경로=지난해 정부가 제시한 연도별 감축목표(NDC)를 보면 2027년까지 감축량은 1800만t에 불과하고 2028년 이후 급격히 늘어 2030년엔 9290만t을 줄이는 것으로 예정됐다. 목표치의 75%를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구조다. 청구인 측은 “50점 받은 학생은 조금만 공부해도 점수가 크게 오르지만 90점 받은 학생은 1, 2점 올리는 것도 힘들다”며 “한계감축 비용이 적은 초기에 대규모로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연도별 탄소감축계획. 2023년 배출량과 중간 목표치인 2030년의 배출량을 잇는 직선과 비교하면 각 연도별 실제 배출량이 더 많은 위로 볼록한 형태다. 이는 초기 감축량은 적은 반면 후반에 배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대폭 감축하는 계획의 결과다.

이에 대해 정부법무공단 김재학 변호사는 “정책을 세우고 곧바로 집행하더라도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기술이 발전하면 지금 불가능한 감축도 가능해질 수 있는 만큼 후반에 감축량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금 감축량을 대폭 늘리면 산업 부문 타격이 불가피하고 이는 현재 세대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고 덧붙였다.

◆탄소 예산의 기준=탄소는 배출되면 사라지지 않고 대기 중에 누적돼 지표 온도를 올린다. 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지구가 감내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을 ‘탄소 예산’이라 하는데, 과학자들의 계산으로는 앞으로 5000억t 정도 남았다. 이를 인구비례에 따라 국가별로 나누면 우리에 할당되는 양은 33억5000만t 정도다. 탄소 예산을 초기에 다 써버리면 나중엔 목표 배출량보다 훨씬 더 많이 줄여야 하고, 이는 고통을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것이라는 게 청구인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 측 대리인들은 전 지구적 탄소 예산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이를 인구에 따라 국가별로 할당한다는 합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파리협정의 기본 정신은 강제 할당이 아닌 자발적 목표설정과 이행 노력인 만큼 그에 맞춘 국내법을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예상보다 더 나쁜 지구 상황
기후소송에서 가장 주목받는 판결은 2021년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자국의 탄소 감축 계획이 구체성이 떨어지고 목표치도 낮다며 관련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사건이다. 이후 독일 정부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기존보다 10%포인트 높이고, 2040년 목표치를 새로 설정했다. 한국의 기후소송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이번 공개변론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됐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몬태나주 법원도 청소년들이 낸 기후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국내 공개변론이 시작되기 직전 유럽인권재판소는 2000여명의 스위스 여성 노인들이 자국 정부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처럼 법정에서는 탄소를 더 줄여야 한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벌써 위험신호를 보낸다. 세계기상기구(WMO)는 5일 보고서를 통해 2028년까지 기온 상승 폭이 임계치인 1.5도를 한 번이라도 넘을 확률이 86%, 5년 평균이 임계치를 넘을 가능성은 48%라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이 임계치를 넘으면 그린란드와 남극 빙산 붕괴, 산호초 사멸, 영구동토층 일부 해동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이는 다시 해수 온도와 염도 변화로 인한 해류 변화, 얼음 소실로 인한 열반사 감소, 메탄 발생으로 인한 급격한 온도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구 스스로 기온 상승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다시 회복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소송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기후소송 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각국의 소송 과정에서 바다에 물 한 방울 붓는 것이란 비판도 많았지만 다 극복했다"며 "지금 노력하면 그나마 기후변화의 발목을 붙들 기회라도 있지만 멈추면 재앙은 더 빠르고 분명하게 다가올 것”이고 말했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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