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비만·불면증에 병든 초능력자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을 갖췄지만, 우울증에 걸렸다.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비만으로 몸이 무겁다. 상대의 눈을 보면 속마음을 읽는 재주가 있으나, 대인기피증이라 사람이 싫다. 100% 정확한 예지몽을 꿀 수 있으나, 불면증에 시달린다.
JTBC 주말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등장하는 초능력 가족이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예지몽으로 투자 정보를 얻어 부를 축적해 왔지만, 현대인의 흔한 고질병에 걸린 초능력자들은 자괴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본인들도 그 진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능력을 탐하는 건 사기꾼 가족.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
제목 그대로 마블과 같은 영웅 서사가 아니다. 극 중 복씨 가족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초능력을 개인의 부와 즐거움을 위해 활용해 왔다. 예지몽으로 돈을 모은 엄마 복만흠(고두심)을 중심으로 한 모계 가족이다. 만흠의 예지몽은 딸 복동희(수현)가 살이 찌고, 아들 복귀주(장기용)가 우울증으로 술독에 빠진 뒤 흐릿해진다. 앞날이 깜깜한 집안 걱정으로 잠 못 이루지 못해 예민해진 만흠이 기댈 곳은 마사지뿐. 귀주와의 사기 결혼을 노리는 도다해(천우희)는 마사지숍에서 만흠이 마시는 차에 몰래 수면제를 타서 재우며 초능력 가족의 울타리에 발을 들인다.

현대인의 질병으로 초능력을 잃은 복씨네와 능력껏 실속을 챙기는 사기꾼 가족의 대비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독특한 재미 포인트다. 색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 드라마는 JTBC ‘SKY 캐슬’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과 tvN ‘연애 말고 결혼’의 주화미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경성 크리처’의 강은경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정재형 음악감독은 판타지 로맨스의 묘하고 설레는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조현탁 감독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굉장히 현실적인 히어로물이다. 초능력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짠하다”면서 “판타지는 현실처럼, 현실은 판타지처럼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서로를 구원하는 초능력자와 사기꾼
드라마는 초능력자가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구하는 보통의 흐름을 따르지 않아 신선하고 기묘하다. 초능력자와 사기꾼이 서로를 통해 위로받는 ‘쌍방 구원’ 서사다. 귀주와 다해가 서로의 구원자인 것처럼, 비만인 복동희 또한 헬스 트레이너 그레이스에 자극을 받아 살을 빼는 장면도 나온다. 그레이스는 복동희를 이용하다가도, 그의 당당함과 높은 자존감을 부러워한다.

최근 방송한 7, 8화에선 귀주가 다해와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해에 호감이 생긴 귀주는 과거 다해가 외로웠던 시간들에 불쑥 찾아가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현재의 다해 곁에서 찜질방 일손도 도왔다. 특히 다해가 학창시절 화재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귀주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겼다. 이전까지 귀주는 선배 소방관이 화재로 사망한 시간에 집착해 과거에만 살다가 아내까지 사고로 잃고 절망에 빠져있었다. 다해는 선배 소방관이 출동했던 화재사고에서 살아남은 아이다. 귀주의 딸인 복이나(박소이) 또한 복씨 가족들보다도 다해를 깊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귀주를 사랑하게 된 다해는 다가오는 귀주를 밀어내려 애썼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일홍 일당에 묶여, 사기를 업으로 삼는 자신의 불행한 삶에 귀주까지 끌어들일 순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귀주가 “나 붙잡아요”라며 등을 떠밀면서, 현재의 귀주와 계속 시간을 보내게 되고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귀주가 불행한 과거로부터 자신과 다해를 구하며 현재의 행복을 찾아간다면, 매사 자기 감정을 숨기며 살아온 다해는 귀주를 통해 현재의 감정을 표출하는 돌파구를 얻은 것이다.
귀주와 다해의 로맨스가 짙어지면서 시청률은 상승세를 탔다. 8화(26일 방송)는 자체 최고 시청률인 전국 4.2% 수도권 5.0%(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에선 TV 부문 비영어권 최고 6위에 랭크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타임리프 판타지라는 기막힌 장치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된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초능력 가족이 얻은 현대인 질병들 모두 현재를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데에서 생긴 무력감”이라고 말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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