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대박 노리면 한국 부호들 ‘사라진 억만장자’ 될 수 있다

강남규 2024. 5. 2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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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 펀드매니저 빅터 하가니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한국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위기를 맞았다. 방아쇠는 러시아 부도사태(모라토리엄)였다. LTCM 위기는 글로벌 시장엔 견디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당시 연방준비은행(Fed)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지휘 아래 대형 시중은행이 구조에 나섰다. 금융위기 역사가 에드워드 챈슬러가 말한 “고수익을 자랑하던 LTCM 사가(saga, 전설)의 결말”이다.

LTCM 사가는 흥미진진한 소재로 가득하다. 첨단 기법과 월가의 실세 자금, 특혜성 구제금융 등은 훌륭한 금융 논픽션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천재들의 실패』다. 지은이 로저 로웬스타인은 “언론은 LTCM 내에서 빅터 하가니의 역할을 간과한다”며 “(노벨상 수상자 등 화려한 멤버들보다) 하가니가 핵심 플레이어였다”고 했다. 이런 하가니를 중앙일보가 국내 언론으로선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 현란한 모델로 고위험 돈놀이
1998년 러 부도로 벼랑에 몰려
10년 트라우마 시달리다 재기
이젠 지루할 정도로 단순 투자

하가니는 LTCM 사태를 다룬 논픽션 때문인지 ‘천재적 악마’ 이미지로 채색돼 있다. 그 바람에 화상 인터뷰 앱 연결 과정에서 버퍼링이 일어나는 동안 왠지 그의 말투는 냉랭하고 인상은 깐깐할 것이란 선입견이 들었다. 하지만 “헬로!”를 외치는 그의 첫 음성은 밝았다. 화면 속 얼굴은 이웃집 아저씨 느낌이었다. 그의 영어에서 걸프 지역 악센트가 느껴졌다. 인터뷰 명분은 그의 생애 첫 책인 『사라진 억만장자들 (Missing Billionaires)』 소개였다. 하지만 LTCM 사태 이야기가 더 길었다.

사태 직후 1년 더 뒷수습 매달려

빅터 하가니 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창업 파트너는 30대에 현란한 수학을 바탕으로 한 고위험 머니게임을 벌여 ‘천재적 악마’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 엘름웰스]

Q : LTCM 위기 직후 삶은 어땠는가.
A : “LTCM 위기 당시 내 나이 30대였는데, 아이가 셋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도 고통이었다. 위기가 1998년 발생했는데, 나는 1999년까지 LTCM에서 일해야 했다. 14개 은행이 LTCM 자산 등을 넘겨받고 있었다. 이들 은행을 대신해 나는 청산 절차가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Q : 파트너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비판이 있던데.
A : “늘 투자자의 편에서 일 처리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때 LTCM 사태가 더 나빠질 수 있었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하가니가 말한 “청산 절차가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도록”이란 표현은 금융시장과 이론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LTCM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챈슬러는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헤지펀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제금융은 제공되지 않았다”며 “반면에 LTCM 사태가 시작되자 Fed에 등이 떠밀린 시중은행들이 LTCM 자산을 사주는 방식으로 구제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린스펀과 LTCM 파트너 데이비드 멀린스와의 관계가 주목받았다. “월가 안팎에서 Fed 부의장 출신인 멀린스를 구하기 위해 그린스펀이 월가 은행을 움직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챈슬러는 전했다. LTCM에 주입된 미 은행들의 구제금융은 40억 달러(약 5조4400억원) 정도였다.

“LTCM과 180도 다른 투자”

김주원 기자

Q : LTCM 비극 이후 트라우마(외상 후 증후군) 같은 것은 겪지 않았는가.
A : “자동차 사고를 겪은 뒤 거의 모든 사람은 운전하길 두려워한다. 운전하고 싶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LTCM 사태를 겪은 뒤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자산운용사 엘름웰스를 창업했다.”

Q : 공백이 짧지 않았다. 그만큼 상처가 깊어서인가.
A : “엘름의 투자 철학과 전략이 LTCM에서 우리가 했던 것과 180도 다르다. 엘름은 헤지펀드가 아니다. 주로 인덱스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다. 마켓 비팅(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 거두기)도 하지 않는다. 투자자에게 (LTCM만큼) 많은 수수료도 요구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 투자금을 불리지도 않는다. 위기 순간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사태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다. 레버러징을 하면 주가 등이 떨어질 때 보유 자산을 처분해야 한다. 이는 자산 가격을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LTCM이 위기에 빠진 이유다.”
위험하고 현란한 게임을 펼쳐본 하가니가 이제는 가장 기본적이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투자 전략과 기술을 외치고 있다. 현란한 컴퓨터 게임에 시들해진 게이머가 아주 단순한 테트리스 매력을 이야기하는 모양새다. 이어지는 그의 투자 조언도 비슷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고비용”

Q : 한국이 산업화를 시작한 지 60여 년이 됐다. 기업 규모가 거대해지고 수많은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이들이 19세기 미국 철도왕인 밴더빌트 가문 후손처럼 사라진 억만장자가 되지 않고 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A : “가장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물려받은 가업에 집중하기보다) 분산투자하고 기대수익을 낮게 유지하라!’는 메시지다. 어떤 억만장자가 3년마다 재산을 세 배로 불리는 게 목표라면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인 전략이 아니다.”

Q : 요즘 한국 부호들이 부자 3대 못 간다는 숙명을 피하기 위해 가문 자산운용사인 ‘패밀리 오피스(FO)’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패밀리 오피스가 억만장자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을까.
A :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꽤 든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의 패밀리 오피스 가운데 상당수가 제대로 된 분산투자를 하지 않는다. 투자자 스스로 하는 게 제일 좋다.”
◆빅터 하가니=1962년 미국 뉴욕에서 이란 출신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채권전문 투자은행 샐러먼브러더스를 거쳐 LTCM 창업에 참여했다. 빌린 돈까지 합해 러시아·미국·이탈리아 국채 등에 베팅하는 트레이딩을 주도했다. 그 바람에 월가 안팎에서 ‘천재적 악마’로 불린다.

더중앙플러스 글로벌머니

전체 인터뷰는 더중앙플러스 글로벌머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www.joongang.co.kr/article/25251059#home)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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