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도청 마지막 항쟁자 김동수 열사 44주년 추모제

신용훈 2024. 5.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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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전남 도청 2층 민원실에서 산화

[신용훈 기자]

▲ 김동수 열사 추모제 김동수기념사업회는 5월 26일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김동수 열사의 44주기를 추모하는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동참자들이 추모문화제에서 묵념을 통해 열사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신용훈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지광 김동수 열사(당시 조선대 전자공학과 3년) 44주기를 추모하는 추모문화제가 개최됐다. 당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아래 대불련) 전남지부장이었던 김동수 열사를 추모하는 대불련 동문 선후배들도 자리를 함께해 열사의 뜻을 기렸다.

추모문화제는 지난 26일 김동수 열사의 생가가 자리한 장성군 서삼면 임곡마을회관 앞에서 진행됐다. 지광 김동수기념사업회(회장 이남)가 개최한 추모문화제에는 김동수 열사 어머니 김병순 여사 등 유가족과 증심사 주지 중현 스님을 비롯해 이남 김동수기념사업회장, 최승태 대불련총동문회장, 김준길 대불련 광주전남동문회장, 주현우 대불련 회장, 김춘성 조선대 총장, 안형준 조선대 총학생회장, 김한성 장성군수, 고재진 장성군 의장과 대불련 동문 선후배 등 200여 명이 동참했다.
  
▲ 주현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장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제62대 주현우 회장이 김동수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신용훈
 
주현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장과 안형준 조선대 총학생회장이 김동수 열사의 삶을 다시금 회고했다. 이들은 "김동수 열사는 1958년 7월 2일 이곳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나 1973년 조선대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광주로 옮겨 광주 향림사와 관음사 고등부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고, 1978년 조선대에 입학해 운명과도 같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 조선대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80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에 취임하여 광주·전남지역 10여 개 대학의 불교학생회를 이끌며 그 시절 불교 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5.18 최후의 날, 전남도청을 지키다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2층 민원실에서 항쟁기간 가장 오랫동안 도청에 머물며 항쟁했던 시민군으로 도청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김동수 열사의 삶은 스물두 살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끝났지만, 그의 푸른 기상과 정의로운 역사는 80년 오월에서 오늘로, 그리고 영원히 푸르게 이어질 것"이라며 김동수 열사의 삶을 기렸다.

김동수 열사 어머니 김병순 여사는 "멀리서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말로 인사말을 갈음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 길 굿 추모문화제에서는 교육문화연구회 솟터의 ‘씻김굿’ ‘길굿’ 공연으로 김동수 열사의 넋을 위로했다.
ⓒ 신용훈
 
이규홍 장성군 5.18기념사업회 공동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도청을 사수하며 시민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염불을 해주시고 도청을 사수하다 돌아가신 김동수 열사를 위해 모였다"며 "열사의 의지를 이은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오월의 정신을 이어 발전한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요즘 우리는 열사의 정신을 이어 오월의 정신을 계승해야 된다"며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새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열사를 추모했다.
김춘성 조선대 총장도 추모사를 통해 "김동수 열사의 정신이 조선대학교의 정신으로 이어져 조선대학교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역사가 지워지지 않고 열사의 정신이 이어지기 위해 총장으로서,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더욱 노력해 현장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진모영(영화감독) 김동수기념관 추진위원장 영화감독 진모영 김동수기념관 추진위원장은 “기념관의 크기보다는 그 안에 무엇을 채우고 어떻게 열사를 기억할지 생각해 봤고 기념관을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했다.
ⓒ 신용훈
 
이날 김동수 열사 기념사업회는 김동수기념관 건립 사업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진모영 김동수기념관 추진위원장은 김동수 기념관 사업 경과보고를 통해 "김동수 열사 생가의 작은 창고를 보며 많은 분들이 김동수 열사를 기릴 수 있는 기념관을 생각했다"며 "기념관의 크기보다는 그 안에 무엇을 채우고 어떻게 열사를 기억할지 생각해 봤고 기념관을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했다.
추모문화제에서는 조현옥 시인이 추모 시 <멈추어 버린 시계>를 낭독해 지금이라도 골목길을 걸어올 것만 같은 김동수 열사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어 교육문화연구회 솟터의 '씻김굿' '길굿' 공연으로 김동수 열사의 넋을 위로했다. 
▲ 김동수 기념관 추모제에서는 김동수 열사 생가의 창고를 기념관으로 건립하기로 했다. 기념관관 입장을 앞두고 모여있는 동참자들.
ⓒ 신용훈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불련 전남지부장이었던 김동수 열사는 당국의 수배령을 피해 광주에서 목포로 피신하던 중 계엄군의 학살 만행 소식을 접하고 5월 21일 광주로 돌아와 전남도청 항쟁본부에서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시신을 보관하는 소임을 맡았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김동수 열사는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했다. 유품은 대불련 배지와 손에 쥐고 있던 단주 하나가 전부였다.
대불련 동문들은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고 말하던 김동수 법우는 굳건한 의지와 신념으로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불교의 생명평화사상을 온몸으로 실천해간 진정한 불자요, 이 시대의 보살이었다"며 열사의 기념관 건립에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 기념사진 김동수 열사 생가 창고(기념관)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신용훈

덧붙이는 글 | 법보신문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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