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주 중 딱 석 달만 일회용 생리대 쓴 이유
5월 28일은 '세계 월경의 날'로 월경에 대한 사회적인 침묵과 터부를 깨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여성환경연대는 세계 월경의 날을 맞이해, 여성들의 월경 경험을 가시화하고 사회 의제로 공론화하기 위해 매년 '월경 말하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제8회 월경 말하기 주제는 '하나 뿐인 지구에서 버려지는 1회용 월경용품과 작별하기'입니다. 기후위기 속에서 나와 지구를 위해 다회용 월경용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기록하였습니다. <편집자말>
[서정희]
면 월경대는 빨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다시 일회용 생리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몸이 일회용 생리대를 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계 일주를 결심했을 때도 거처가 계속 변경되는 장기간 여행이니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가벼운 배낭을 만들기 위해 빨랫비누, 손을 보호하기 위한 고무장갑, 면 월경대 이렇게 최소한의 월경용품을 챙겨가기로 했다.
11달간의 세계 일주 중 면 월경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면 월경대 사용은 너무 당연했고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경의 날을 맞이해, 그럼에도 기억나는 순간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초경을 했다. 첫째 딸이 월경을 하는 게 신기했는지, 엄마는 월경 파티를 준비해 줬다. 나의 월경은 집에서 이렇게 공식화 되었다. 초등학교 때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 화장실 청소를 당번으로 돌아가면서 했는데 쓰레기를 큰 통에 모아서 교내 소각장으로 옮겨야 했다. 그때 맡은 일회용 생리대의 역한 냄새가 참 싫었다. 소각장 쓰레기를 버리면 종종 일회용 생리대가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생리대를 감싼 봉투가 뜯어지고 검붉게 피 묻은 생리대가 불에 타면서 정말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이 시절 나에게 월경은 냄새나는 피,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저 귀찮은 손님이었다.
나는 월경 기간이 10~13일 정도로 긴 편이었고 일회용 생리대로 인한 피부 질환이 지긋지긋했다. 2007년 즈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보를 찾던 중 '면 월경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 월경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피부 질환이 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면 월경대를 극찬했고 꼭 써보라고 권장했다. 바쁜 주변 지인들은 '언제 빨고 말리냐'며 '나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도 문제없다, 너가 예민한 거 아니냐'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예민한 몸을 가져서 면 월경대를 써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면 월경대를 빨면서 피를 마주하는 게 낯설었지만, 점차 피와 친해졌고 내가 십대 시절에 알고 있던 월경혈 냄새와는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몸에서 나온 피는 더럽지 않았고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때 맡았던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찬물에 들어가면 빨갛게 물이 흩어졌다.
세계 일주하면서 면 월경대 사용하기
가난한 여행자였기에 한 방에 6~10인이 잠을 자야 했고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해야 해서 월경 기간에는 꽤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이스탄불을 여행할 때 계속해서 비가 왔고 하필 월경을 했다. 비가 계속 오고 습도는 높고 기계의 힘을 빌린 탈수가 아니라 손으로 짜기 때문에 면 월경대를 말리기 어려웠다. 2일이 지났을 때는 걸레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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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의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말리고 있는 면 생리대, 고무 장갑 그리고 양말 |
ⓒ 서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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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텐트촌 |
ⓒ 서정희 |
먹을 것도 부족한데 깨끗한 물은 더더욱 부족했다. 봉사 활동자들이 생활하는 베이스캠프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칙이 물 사용이었다. 마시는 물은 공용 생수 물을 반드시 마셔야 했고 화장실에서는 소변 후 물을 내릴 수 없었고 손 씻은 물을 모아 대변 시에만 모은 물로 물을 내릴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매일 육체노동을 해 땀에 흠뻑 젖은 봉사자들은 1박스의 정해진 용량으로만 씻어야 했다. 물을 최대한 아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는 생존 싸움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도저히 면 월경대를 빨 수 없어서 일회용 생리대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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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감기, 세수, 온몸 씻기를 이 물로 모두 해결해야 한다. 나중에는 물이 남아서 속옷까지 빨 수 있었다. |
ⓒ 서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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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대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져내진 집이 위태 위태하게 서있다. |
ⓒ 서정희 |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은 사라졌을까
2017년 일회용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한국 사회가 한참 시끄러워졌을 때 나는 후련함을 느꼈다. 내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경험한 피부 질환이 내 몸의 문제가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 속 화학 물질이 만들어 낸 부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내 몸이 일찍 신호를 보내 준 것이 고마웠다.
즉 일회용생리대 사용과 그에 따른 불편 증상(생리통, 생리혈색 변화, 외음부 트러블 등)간의 관련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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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생리대를 원한다!" 정부청사앞에 쓰러진 여성들 2017년 9월 5일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과 역학조사를 촉구하며, 검은 옷을 입고 바닥에 누워 비폭력 저항을 표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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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일회용 생리대 구매 경험 실태 조사 결과 |
ⓒ 여성환경연대 |
일회용 생리대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난 이후였다. 1회용 플라스틱 중 일부는 재활용이 될 여지라도 있지만 일회용 생리대는 재활용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이다. 평생 월경하는 동안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면 1만 1000개~1만 4000개를 사용하게 되고 이로 인한 폐기물은 200kg이다. 최근에는 1회용 탐폰 사용자들도 늘고 있는데 이러한 1회용 월경용품들의 성분표를 확인하면 폴리에틸렌을 비롯한 플라스틱 성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립 시 분해되는데 500년 이상 걸린다. 즉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1회용 월경용품으로 생산되고 폐기되는 셈이다.
나는 단순히 건강한 월경을 위해 다회용 면 월경대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이 결정이 곧 지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월경과 지구가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게 된다. 1회용 월경용품으로 월경 경험을 시작했기 때문에 1회용이 얼마나 편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와 지구의 건강을 위해 불편함을 선택했다. 하나 뿐인 지구가 망가지면 그 선택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아이티에서 매일 매일 보았다. 5살 아이까지 작은 통을 들고 먼 길을 걸어 우물가에 가 작은 통을 줄지어 세우고 깨끗한 물을 떠가기 위해 기다렸다. 물부족은 먼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물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섬과 지역의 수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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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환경연대가 제작한 ‘나와 지구를 위한 월경’ 1차시 교육 PPT 표지 |
ⓒ 여성환경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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