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학생의 폴더인사가 주는 교훈

이혁진 2024. 5. 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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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 아침 등교 풍경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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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며칠 전 아침 자원봉사 가는 길목의 중학교 교문 풍경이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주임교사로 보이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꾸벅하거나 하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학교는 등교시간에 인사하는 법을 익히도록 교육하는 것 같았다.
     
길 건너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 특히 시선을 끄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선생님에게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하며 들어갔다. 그 학생의 폴더 같은 인사는 마치 인사의 시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처럼 웃어른에게 이쁘게 하는 인사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
    
 붉은장미의 꽃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 이혁진
 
그 학생의 인사법은 나의 중학 시절의 추억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 때도 등교시간에 훈육교사와 선배들이 교문을 지키고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을 검사했다. 당시 우리 머리는 '빡빡머리'였다. 삭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귀여워해주신 선생님의 따뜻한 손이 느껴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선생님은 두발 상태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사를 잘한다는 이유로 칭찬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시 다른 아이들보다 유별나게 인사를 잘했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단지 어른을 뵈면 무조건 인사를 드려야 하는 의무감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동네에 사는 어른을 보면 알든 모르든 인사하는 게 당연했다. 인사하는 버릇이 불량하면 그 소문은 돌고 돌아 반드시 부모들에게 전해져 꾸중을 듣거나 혼나기 일쑤였다.
     
사실 내 '인사법'은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게 직접 인사법을 가르쳐준 적은 없다. 아버지 따라 모임에 가면 아버지는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하곤 했다. 또한 자신보다 연세 높은 사람들을 찾아 인사를 하셨다.
     
기억에 아버지는 다른 분과 달리 인사에 많은 시간을 공을 들였다. 이것은 어린 내 눈에 지루하고 따분했지만 자라면서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따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독특한 인사법은 먼저 다가가는 것이며, 반가움과 감사함을 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변 분들에게 내세울 것 없는 아들이 인사 하나는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나 또한 솔직히 내 자식이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낄 것 같다.
      
70 나이가 돼도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사람을 보면 끌리고 한번 더 주목하게 된다. 내가 이날 중학교 학생의 절도 있는 인사를 보고 감동받은 이유다. 인사 예절은 평생 배워도 부족하다는 의미다.

최근 봉사모임에서 알게 된 어떤 이는 만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데 그게 몸에 배었다. 친밀감의 표시겠지만 인사받는 입장에선 별로 유쾌하지 않다. 정중한 인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인사만 잘해도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다
    
첫인상은 1초도 안 걸린다고 한다. 특히 인사가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간단한 목례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다. 따뜻한 미소를 동반한 그런 인사법은 부럽기조차 하다.
     
자신만의 매력적인 인사법을 갖췄다면 그는 누구한테든 대접받을 수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그 사람의 인사가 품위를 잃으면 존경받지 못한다.
     
자랄 때는 인사성이 '밝다'는 말의 뜻을 몰랐다. 그런데 이 말을 어른들은 수시로 언급했다. 가만 생각하니 모든 일에 알게 모르게 바른 인사법을 따졌다는 것이다.
     
인사 잘하는 사람은 집안 내력과 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어르신 집안을 유심히 보면 혈통과 성격처럼 그들의 인사법과 자세도 유전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인사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다. 상대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와 인사를 나누지 말 걸 하는 후회도 한다.
      
나는 상대의 인사법을 보고 그 사람의 겸손함과 호감도를 판단하는 편이다.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상대의 인품과 태도를 거의 함축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사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인정해 주는 기술이다. 인사도 실력처럼 쌓아야 한다. 아버지가 인사는 상대보다 먼저 하고 찾아가서 하라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인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교사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를 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그는 "은퇴 이후 8년 동안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에게 인사를 잘한 덕도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년일수록 인사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지 모른다. 인사를 받을 때보다 할 때 존재감을 더 인정받을 수 있고 인간관계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중학교 교사의 생각도 아마 나와 비슷할 것 같다. 인사 잘 하는 그 학생이 착한 심성과 예절로 올곧게 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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