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올릴때 각별히 주의? 이게 경찰이 할 말인가"

유지영 2024. 5.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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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고소인 루마씨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

[유지영 기자]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루마씨가 지난 23일 오후 오마이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 유지영
지난 2021년 7월, 영화 예매 정보를 얻기 위해 핸드폰에 텔레그램을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다음날 루마(필명)씨 텔레그램에는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여성의 나체 사진과 영상 수십장이 쏟아져 들어왔다. 

직후 찾아간 경찰서에서 "텔레그램은 잡기 쉽지 않다"라던 경찰의 말에도 루마씨는 기어코 고소장을 썼다. 결국 사건의 주범을 포함해 총 3명의 남성이 약 2년 10개월 만에 구속됐다. 이른바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은 오는 6월  재판정에 선다. 

지난 23일 오후 루마씨를 서울 서대문구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처음 경찰서에 찾아가 고소했을 때, 주변에서도 '고소해서 뭐 하냐, 어차피 못 잡는다'라고 했다. 난 흔들리지 않았다. 신고 접수를 해야 기록이 남고 집계가 돼 이런 범죄가 존재한다는 게 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통해서는 못 잡는다는 건 여전히 맞지만 텔레그램이라고 못 잡는 건 아니라는 게 이번 사례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나"라며 "경찰서마다 담당 수사관이 1명씩이라도 있어야 한다"라고 수사인력 확충을 주문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성범죄 피해를 적극 증언하고 대책 마련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루마씨와의 일문일답.  

"무혐의 처리하고 할일 했다던 경찰, 정말 잘못"  

- 주변의 비관적인 반응에 힘들진 않았나. 

"내게만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록 누군지 모르고, 잡히지 않을지라도, 신고를 하면 결국 추적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결국 내 직감이 맞았다. 실제로 이들은 여러 여성들에게 '이런 짓'을 하고 다녔고, 다른 피해자들도 신고를 했기에 가해자가 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 추동력이 생겼다. 피해자 여럿이 뭉치니 확실히 힘이 생겼다. 그래서 2021년 7월에는 혼자 신고하고 고소했지만, 1년 뒤에는 8명이서 관악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때 경찰이 정말 잘못했다."

- 경찰이 잘못했다고?

"2022년 7월 같이 모여 고소할 때 텔레그램 내 성명 불상자로 고소를 하면서, 용의자로 의심이 되는 인물을 추가했는데 경찰서에서는 누군지 특정이 돼야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피고소인으로 넣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피고소인이 범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피해자들에게 전가시켰고, 피해자들 부담이 커졌다. 그렇게 5개월을 끌다가 해당 인물에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는데, 그간 소통이 전무했다."

- 경찰에 직접 소통을 시도해봤나? 

"경찰에 전화를 3통 걸면 1통 정도 연결이 됐다. 고소인들이 말씀하시는 거 다 알고 있다고, 하고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지 않나.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경찰 태도에 믿고 기다렸으나 결국 불송치 결정이 나왔다. 피해자들이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건 피고소인이 아니라 텔레그램 사용자였으니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다른 용의자를 찾아줘야 했는데, 피고소인이 범인이 아니고 할 일을 다했다는 식으로 나왔다. 너무 심란해 3주 가량 잠을 자지 못했고,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남은 선택지는 이의신청 밖에 없었다."    
 
 2023년 1월 24일 관악경찰서에서 루마에게 보낸 '불송치' 결정 문자.
ⓒ 루마 제공
 
- 그때 추적단불꽃을 만났나. 

"맞다. 추적단불꽃의 (원)은지님이 고소를 하고 불송치가 난 5개월 사이에 수사 협조를 했다는 걸 알게 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5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 파악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났다. 내게는 은지님을 만난 날이 확실히 전환점이 됐다(관련기사: "서울대판 N번방 사건? 언론이 이렇게 부르면 안된다" https://omn.kr/28rjg)."

"20대 갈아넣어 공부했는데... 결국 여성으로만 환원돼 분노"

- 그 이후 어떤 일을 했나. 

"불송치 결정을 전하는 우편물 뒤에 여러 무료 법률 구조 기관 목록이 붙어있어 하나씩 전화 상담을 해봤고 그 과정에서 성폭력위기센터를 만나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좀처럼 성범죄로 봐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 사건을 성범죄로 다뤄주실 분을 찾고 싶었다. 변호사님은 이 사건의 본질을 성착취로 규정하셨고 최선을 다해 조력하겠다고 말씀주셨다." 

- 불송치 결정이 났을 때 어땠나. 

"무엇이든 끝까지 가보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를 5개월간 방치하다가 불송치하는 경찰의 무신경함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마음이 강했다. 나는 연구자로 일하고 있는데, 관련 사례를 조사하면서 트위터 등에서 '지인능욕' 등의 검색어를 넣었는데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심지어 주로 가해자랑 같은 교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생활한다. 그 과정에서 확실한 전환이 일어났다. 내 피해를 생각할 때도 물론 피가 거꾸로 솟지만 이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었다." 

- 이후에도 각각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두 차례 이의신청서를 기각했다.

"가해자를 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피해자들이 그냥 넘어간 사건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일을 잘 하는 친구들로 피해자의 위치지만 상대적으로 자원이 많으니 내가 가진 자원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오가면서도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너무 자괴감이 들었다. 이 사건이 이미 너무 중요한 일이 돼서 포기할 수 없는데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2023년 11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정신청이 인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 최근에 가수 고 구하라씨가 '버닝썬 사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실이 BBC 영상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사건을 해결해오는 과정에서 나 또한 여성 연대의 힘을 많이 느꼈다. 물론 남성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지만 실망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한 순간에도 내가 자기를 '잠재적 가해자'로 의심한다고 생각해 방어적으로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간절함이나 위기 의식이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나 또한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을 겪었고, 내가 아무리 20대를 '갈아넣어서' 공부를 해도 결국 남자에게는 여성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에 억눌러왔던 분노가 터졌다."

"변태적성욕 위해 딥페이크 범죄? 경찰이 할 말은 아니다"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루마씨.
ⓒ 유지영
 
-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변태적 성적 욕망 해소를 위해 여성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라고 했다. 

"변태? 물론 변태가 맞다. 그런데 '변태적 성욕 해소를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라는 말은 '뭐 저런 변태가 다 있나'라면서 끝내자는 말이잖나. 경찰이 할 말이 아니다. 이는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 사소하게 만들고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게 한다. 그리고 경찰이 "인터넷에 개인 사진 등 정보를 올릴 때는 각별히 유의하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란다"라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주의를 하나? 요새는 취업만 하려고 해도 링크드인에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개인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단체사진에서 얼굴을 오려다 쓰는데 그건 어떻게 방지하나? 가해자도 개인의 문제, 피해자도 개인의 문제면 국가는 무얼 하나."

- 'N번방' 이후 딥페이크 기술은 더 발전했지만 경찰 수사 방식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어도 경찰서마다 담당 수사관이 1명씩이라도 있어야 한다. 나를 포함해 많은 피해자들이 실시간으로 텔레그램 메시지가 오고 있을 때 경찰서를 찾는다. 핸드폰이 실시간으로 범행이 발생되는 현장인 셈인데, 경찰이 바로 개입하지 않고 사진을 캡처해 고소장에 첨부해서 제출해달라고 말하니 끝까지 피해를 다 입으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 없다.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통해서는 못 잡는다는 건 여전히 맞지만 텔레그램이라고 못 잡는 건 아니라는 게 이번 사례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나." 

-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피해 증언을 하고, 대책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실명을 걸고 관련 연구를 하고 싶다."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 타임라인]

2021년 7월 피해자 루마에게 익명의 텔레그램 이용자에 의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발생. 경찰에 신고. 
2022년 7월 루마, 다른 서울대 동문들에게도 복수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됨, 피해자 8명과 경찰에 신고. 
2023년 1월 경찰서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처리. 
2023년 2월 루마와 추적단불꽃 원은지 첫 대면 만남. 
2023년 3월 루마가 직접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기고글 올리기 시작. 
2023년 4월 변호사 구해 서울중앙지검에 이의신청서 제출했으나 기각. 
2023년 5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으나 7월에 기각. 
2023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 재정신청 인용.
2023년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재수사 지시로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사이버성폭력수사팀에서 수사 착수.
2024년 4월 48명 여성들 상대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 저지른 30대 남성 가해자 구속.
2024년 5월 가해자 2명 추가 구속. 
2024년 6월 구속된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대상으로 한 재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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