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안 보여야 디테일 보인다”…50년간 빈 건물 찍는 사진작가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게 내 의도다. 안 그러면 사람이 부각되니까. 그럼에도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 때로 사람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 싶으면 사람 없는 시간대를 골라 다시 찍는다.”
2021년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2022년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 50년 가까이 빈 건물에서 셔터를 누른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80)다. 그의 사진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 주인공이다. “나는 건축 사진가가 아니라 공간의 초상을 찍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정중앙에서 좌우대칭으로 담아낸 건물 내부는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없어 구석구석 눈길을 끈다.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K2에서 열리는 전시 ‘Renascence’(재생)에서 만난 그의 작품 14점도 그렇다.
회퍼의 사진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째, 인위적 조명을 쓰지 않는다. 자연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건물 내부에 관심이 많다. 둘째,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촬영할 때 느릿한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담아낸다. 셋째, 인물이 없다. 자기 작업에 사람을 동원하는 것도, 촬영하러 간 공간에서 바삐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도 불편해한다. 오래된 문화 공간을 찍은 그의 사진에서는 사람의 부재가 오히려 오랜 세월 그곳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회퍼는 30대 초반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에게 사진을 배웠다. 사진이 막 예술학교의 정식 학과가 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베허 부부는 1960년대 독일의 공장 건물을 촬영해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하며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흐름을 형성했다. 회퍼는 토마스 슈트루스(70), 토마스 루프(66)) 등과 베허 학파 1세대를 이뤘다.
“인내와 끈기를 중시한다”는 회퍼는 5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하며 고색창연한 건물을 담아왔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유럽. 익숙지 않은 공간은 좀처럼 담지 않는다. “이국적인 것을 착취하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제목엔 장소와 촬영 연도만 간결하게 담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말도 경제적으로 했다. “카메라를 놓고, 렌즈를 통해 대상을 보고, 찍는다. 그러면 필요한 것이 다 담긴다.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를 어디에 놓느냐다. 현실과 미학의 밸런스? 그런 거 없다. 그저 자리를 잡고 찍는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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