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 후보 당선…‘明心’ 아니었다 [신율의 정치 읽기]
우원식 의원 당선이 충격적인 이유는, 예상 밖의 결과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재명 대표가 겉으로는 추미애 전 장관을 국회의장 후보로 미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시나리오다. 근거는 추미애 전 장관의 과거 정치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노무현 정권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찬성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음에도, 대선 즈음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비판했다.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에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동법’을 통과시키는 데 역할을 한 바 있다. 드루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추미애 전 장관의 의도치 않은 문제 제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 정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면 ‘소신 있는 정치인’ ‘자신의 소신을 위해 당파를 초월하는 정치인’ 그리고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정치 행보의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불안한 정치인’ 혹은 ‘자기 정치만 하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가 속으로 추미애 전 장관의 ‘불안함’을 걱정했다면, 표면적으로는 지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이재명 대표가 ‘진짜로’ 추미애 전 장관을 국회의장 후보로 적극 밀었다는 추론이다. 이재명 대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당원들이 추 전 장관이 국회의장이 돼야만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게 근거가 된다. 민주당 다수 구성원이 강성 지지층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추미애 전 장관을 좋든 싫든 국회의장 후보로 밀 수밖에 없었을 터. 이재명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을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맞다면, 추미애 전 장관 낙선은 이재명 대표의 당 장악력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일대 사건’이다.
세 번째, ‘명심’이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 인선을 좌우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이 대두됐기에, 이재명 대표가 막판에 추미애 전 장관 지지를 철회했을 가능성이다. 실제 우상호 의원은 “5선·6선쯤 되는 중진 의원들이 중간에 ‘드롭’하는 모양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고, 박수현 당선인은 “국회의장까지 당심, 명심이 개입해 정리된 건 역대 처음”이라며 민주당 내 상황을 비판했다. 민주당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도대체 왜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당대표가 개입하나.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당 꼬락서니가 걱정”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찬반 투
표에 의해 선출됐고, 이재명 대표 연임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장 후보마저 ‘명심’이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니, 이재명 대표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래서 막판에는 ‘개입’을 자제해 우원식 의원 당선이 가능했다는 시나리오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두 번째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찐명’이라 불리는 박찬대 원내대표가 정성호 의원과 조정식 의원의 중도 사퇴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추 전 장관 당선을 위해 ‘명심’이 교통정리를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분명한 사실은, 5선과 6선 두 의원이 ‘갑자기’ 연이어 중도 사퇴했다는 것. 이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그래서 ‘명심’이 실제 추 전 장관을 밀었다는 추측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정도 ‘무리’를 하고 나서 갑자기 추미애 당선인을 미는 행위를 중단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당내 인사들 비판을 두려워했다면, 애초부터 ‘무리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심이 먹히지 않았다고 추측하는 두 번째 근거는,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이 과연 무엇인가와 관련 있다. ‘명심’이 추미애 전 장관에게 향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언론에 보도된 상황에서 추 전 장관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경우 당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때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지사다. 정치에서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이 정도 타격을 받으면 정치적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당내에 ‘명심 개입’ 비판이 있더라도 ‘명심’을 거두는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종합해보면, 두 번째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는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표의 당내 입지는 어떻게 될까.
일단 이재명 대표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볼 것 같다. 무엇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할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초선 의원 상당수가 추 전 장관에게 투표했지만 재선 이상 의원은 우 의원에게 투표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친문 성향 의원들은 추 전 장관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적 언행에 거부감을 갖고 있어, 우원식 의원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이럴 경우, 이재명 대표는 총선 대승을 통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판단할 수 있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는 친문, 비명 세력이 만만치 않게 존재함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대표는 대표직을 연임함으로써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즉, 이번 국회의장 후보 선거 결과가 이재명 대표 연임 가능성을 오히려 높인 셈이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여권은 우원식 의원의 국회의장 후보 당선으로 좀 더 나은 상황과 마주한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우원식 의원 당선을 통해 확인된 민주당 내부의 ‘역동성’은, 국민의힘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국민의힘을 비롯한 여권 전체는 각자 이익을 계산하며 ‘투쟁하는 상황’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원식 의원 등장으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국민의힘은 국민의힘대로,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22대 국회는 21대 국회보다 더 난장판 국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새로운 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우원식 의원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숙제를 풀기 위해 우 의원은, ‘국민의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 ‘지지자’들만을 의미하는 ‘자의적 국민’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국민 전체를 의미하는 ‘진정한 국민’을 위해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역구 득표율로 보면, 이번 총선 결과는 50% 대 45% 구도였다. 국민의힘을 지지한 45%의 투표 유권자들에게도 ‘정치적 효능감’을 선사해야 한다. 소외되는 국민이 없을 때, 비로소 의회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1호 (2024.05.28~2024.06.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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