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으니 구석구석이 더 잘 보였다…독일 사진가 칸디다 회퍼 개인전

권근영 2024. 5. 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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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Renascence(재생)’
칸디다 회퍼,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도서관Ⅲ 2021, 잉크젯 프린트, 180x160㎝ ⓒ Candida Höfer / VG Bild-Kunst, Bonn 2021, 사진 국제갤러리


"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게 내 의도다. 안 그러면 사람이 부각되니까. 그럼에도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 때로 사람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 싶으면 사람 없는 시간대를 골라 다시 찍는다." " 칸디다 회퍼(80)는 2021년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에 갔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관객의 눈길은 정교한 천장화부터 구불구불한 난간, 벽면을 꽉 채운 귀중본까지 골고루 흝는다.


텅 빈 도서관ㆍ미술관ㆍ공연장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8세기부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원의 하나로 꼽혔다. 10세기 대화재, 이후 종교개혁의 거센 돌풍에도 살아남아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칸디다 회퍼,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 Ⅱ 2022, 잉크젯 프린트, 180x250.8㎝ ⓒ Candida Höfer / VG Bild-Kunst, Bonn 2022, 사진 국제갤러리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의 텅 빈 무대와 객석은 2022년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작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보수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재개관 직전인 2021년에 촬영됐다.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코로나 19 기간 동안 촬영한 회퍼의 신작 14점이 전시 중이다.


부재의 존재증명


칸디다 회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ⅩⅦ 2021, 잉크젯 프린트, 180x250㎝ ⓒ Candida Höfer / VG Bild-Kunst, Bonn 2021, 사진 국제갤러리

코로나든 아니든 50년 가까이 빈 건물에서 셔터를 누른 칸디다 회퍼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눈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감염병 이전의 그 관객이 아니다. 2010년 세상을 뜬 사라마구의 책이 코로나 19 기간 내내 새삼스럽게 인용된 것처럼.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도시에서 박물관이 얼마나 무용하고 무력한지 썼다.

" 박물관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프다. 그 모든 사람들, 나는 정말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들, 그 모든 조각들, 그들 앞에는 단 한 사람의 관람객도 없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회퍼의 사진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 주인공이다. “나는 건축 사진가가 아니라 공간의 초상을 찍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정중앙에서 좌우대칭으로 담아낸 건물 내부는 어느 한 곳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없어 구석구석 눈길을 끈다. 실제 그곳에서 맨눈으로 봤다면 간과됐을 디테일을 모조리 담아 보는 이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 그의 사진은 때론 ‘신의 시선’이라고까지 불린다. 사진은 시간의 한 점을 담는 예술이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시간을 길게 늘인 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회퍼의 사진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째 인위적 조명을 쓰지 않는다. 자연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건물 내부에 관심이 많다. 둘째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촬영할 때 느릿한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담아낸다. 셋째, 인물이 없다. 자기 작업에 사람을 동원하는 것도, 촬영하러 간 공간에서 바삐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도 불편해한다. 그러나 오래된 문화 공간을 찍는 그의 사진에서는 사람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 그곳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칸디다 회퍼 개인전 ‘Renascence(재생)’가 열리는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K2 전시장. 연합뉴스


1944년 방송기자인 아버지와 무용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회퍼는 30대 초반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베허와힐라베허에게 사진을 배웠다. 사진이 막 예술학교의 정식 학과가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베허 부부는 1960년대 독일의 공장 건물들을 촬영해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하며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흐름을 형성했다. 회퍼는 함께 배운 토마스 슈트루스(70), 토마스 루프(66), 안드레아스 구르스키(69) 등과 베허 학파 1세대를 이뤘다.

전시장의 칸디다 회퍼. 손목에 검정 밴드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의 스와치 시계가 눈에 띈다. 권근영 기자


"인내와 끈기를 중시한다"는 회퍼는 유행이 여러 번 바뀌었을 5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하며 고색창연한 건물을 담아왔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유럽, 익숙지 않은 공간은 좀처럼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이국적인 것을 착취하는 것 같다"는 이유다. 제목엔 장소와 촬영 연도만 간결하게 담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말도 경제적으로 했다. "카메라를 놓고, 렌즈를 통해 대상을 보고, 찍는다. 그러면 필요한 것이 다 담긴다.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를 어디에 놓느냐다. 현실과 미학의 밸런스? 그런 거 없다. 그저 자리를 잡고 찍는다." 손목에 검정 밴드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의 스와치 시계가 덤덤하게 채워져 있었다. "실용적이니까. 1년에 한 번 배터리만 갈아주면 되잖나."

칸디다 회퍼 개인전 ‘Renascence(재생)’ 전시 전경, 사진 국제갤러리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인간 활동의 기록이자 조용한 경이로서 시대를 초월한다"고 평가했다. 베를린 예술아카데미는 2024년 케테 콜비츠 상 수상자로 회퍼를 선정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아트 위크 때 시상식과 수상 기념전을 갖는다.
◇전시정보= 칸디다 회퍼 ‘Renascence(재생)’,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K2, 7월 28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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