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까지는 '돈 걱정' 없이 생활할 수는 없을까?

김홍규 2024. 5. 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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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무상교육, 언제까지 미룰 건가

[김홍규 기자]

학교에서 담임이나 장학금 담당을 할 때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학생의 경제적 어려움을 증명해야 돈을 주겠다는 요구를 만나는 상황이다. 담임교사나 학교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 구체적 증거나 구구절절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한다.

장학금은 주는 단체나 개인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학교생활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단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학생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려운 가정형편임에도' 열심히 공부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도 최선을 다해 설명해야 한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장학금도 예외가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심사 대상자를 향해 가난의 증거를 모으고 설득하는 동안, 여린 학생들은 상처를 입는다.

대한민국 GDP 규모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10위에서 13위 사이를 오갔다. 이른바 경제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회원국이 38개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부자 나라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돈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걸까?
 
'당사자가 생계/복지에 대해 더 책임을 져야 한다'(40.1%)
'정부가 더 책임져야 한다'(27.0%)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22년 12월 발표한 <2022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보고서> 내용 일부다(보고서, 293쪽,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2024년 5월 25일 검색).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라고 학자들은 여야 모두 목소리를 높인 지 오래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생계'와 '복지'를 책임질 수 있을까?
 
▲ <2022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보고서> 일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22년 12월 발표한 <2022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보고서> 내용 일부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 김홍규
 
같은 보고서의 다른 설문조사 결과다.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경쟁과 '능력 만능주의'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경쟁에서 앞서고, 어떤 이들이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깊게 살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결과들을 보면, 왜 학교에 오는 장학금 신청 조건에 성적이 다수 포함되어 있거나 엄격한 '가난 증명'이 담겨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복지 축소와 각자도생은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는 너무 심하다. 주변 사람들의 삶을 둘러보고 연대하기보다 약자를 누르고 자신의 자본을 강화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부자 부모' 덕에 잘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탈세에 가까운 '절세'를 공공연히 말한다. 지위와 돈을 앞세워 자랑하는 이들이 전파를 낭비한다. 자신의 집이나 사무실이 없어 임대료를 내는 사람들 앞에서 건물주임을 내세운다. 자신이 만드는 불평등을 '능력'으로 착각한 결과다.

보수 사회학자들이 '평등주의자'가 넘쳐난다고 비난하는 대한민국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 2017-2022' 조사 결과도 한국인들이 얼마나 불평등에 익숙한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최신 자료는 2018년 조사 결과다.
 
'소득이 더 공평해야 한다' 1
'노력하는 만큼 소득에 차이가 나야 한다' 10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 2017-2022' 106번 문항,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DocumentationWV7.jsp)
 
'세계 가치관 조사' 106번 문항은 소득분배에 관한 인식을 묻는다. 10점 척도다. 강하게 공평한 소득분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1에, 강하게 소득 차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10에 답하는 질문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평등한 분배를, 높을수록 불평등한 분배를 선호하는 결과다.

69개 국가가 응답했다. 한국은 6.66을 기록했다. 나머지 국가 평균은 6.25이다. 유의미한 통계적 차이를 보였다. 미국 4.93, 일본 5.36, 중국 5.53, 독일 5.67, 프랑스, 5.06이었다(<World Values Survey Wave 7: 2017-2022>, 온라인 자료 분석, WVS 홈페이지, 5월 25일 검색).

OECD 회원국 가운데 참여한 곳은 33개이다. 33개 나라 평균은 5.53이었다. 우리나라보다 숫자가 높은 나라는 딱 한 곳 폴란드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체 평균은 6.04였고, 91개 국가 가운데 한국은 69번째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은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육 제도를 포함한 국가 정책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결국, 자신의 삶을 각자 스스로 책임지게 만든 사회는 은퇴 이후에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없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2년 36.2%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아 OECD 평균(15.5%)의 두 배 이상이다. OECD 국가 중 65세 이상 고용률이 30% 이상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32.3%)가 유일하다. 평균수명이 긴 일본도 65세 이상 고용률은 25.2%로 우리나라보다 낮고, 15세 이상 고용률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캐나다와 스웨덴, 아일랜드 등은 20% 미만이다."(통계청 통계개발원, 2024년 2월, <국민 삶의 질 2023>, 53쪽, 통계청 홈페이지)
 
통계청이 올해 2월 발표한 2023년 '국민 삶의 질'을 나타내는 한 가지 지표다. <OECD 노동 통계>를 분석한 자료다.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이 36.2%로 OECD 1위를 기록했다. 30%를 넘긴 나라도 둘 뿐이다. 벨기에는 3.2였다. 한국은 '부자 나라'에 걸맞지 않은 복지 정책으로 인해 평생 긴 노동 시간을 견뎌야 하는 국가이다. 젊어서도 고생, 늙어서도 고생인 나라다.

제발 고등학생들까지만이라도 '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하자. 우리의 경제 규모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까지 '무상급식'에서 멈춰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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