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병원’ 석달째…‘전문의 중심 체계’ 되려면

신대현 2024. 5. 2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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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2025학년도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모집 정원이 확정되면서 의대 증원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정부와 병원은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의료계에선 진료전달체계와 급여 수가 등이 현실화되기 전까진 정부의 구상이 실행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내년도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전공의들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올해 치러질 내년도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포함) 모집 정원은 전년도보다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결정됐다.

의대 증원 계획 백지화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공의들이 사직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환자 곁으로 돌아온 전공의는 극소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1일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658명으로 파악된다. 이는 전체 전공의 1만3000여명 중 5%에 불과하다. 규정상 전공의는 수련 기간 중 3개월 이상 공백이 있으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씩 늦춰지게 된다.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봐야 하는 3~4년차 레지던트는 2910명이다. 

정부는 “돌아올 경우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며 연일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연말까지 복귀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이탈 상태가 영원히 간다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지만, 한 사이클 쉬어간다고 해서 의료체계에 크게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3개월간의 복귀 시한을 지나친 마당에 지금 돌아오나 연말에 돌아오나 별 차이가 없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기약 없이 기다릴 수 없다고 보고 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전공의 위임 업무를 축소하는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전문의가 많을수록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더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전공의 대신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대형병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연말까지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이어갈 방침이다.

3월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로 의료공백을 메우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의를 대거 채용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만들겠단 구상은 단기간에 실현될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인천 A병원장은 2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 수백 명이 당장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문의 몇 명 뽑는다고 전문의 중심병원이 되겠나”라며 “의대생 집단 유급까지 빚어지면 전공의조차 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뭘 믿고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기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최소 8년은 걸린다”고 주장했다.

전문의 중심병원이 되려면 전문의 확충과 더불어 경증환자는 개원의에게 진료 받고, 암이나 중증수술이 아니라면 2차병원에서 수술 받는 진료전달체계가 확립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은혜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대학병원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은 30% 안팎인데 이들 없이 전문의만으로 병원을 운영하려면 진료를 줄이고 중증환자와 급성기환자 위주로 진료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환자의뢰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형식적인 의뢰서만 갖고 환자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급여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저수가에 진료량이 줄면 병원은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공의가 돌아갈 곳이 사라지고 의대생이 실습할 곳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해 진료량이 줄더라도 병원이 직원들의 월급을 그대로 줄 수 있도록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환자에게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공의 수련교육의 질이 담보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전공의들이 전문의가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B병원의 원장은 “전공의들이 다양한 진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병원이나 학회의 수련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한다”면서 “상급종합병원뿐만 아니라 2차병원, 개원병원까지 아울러 전공의가 다양한 의료기관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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