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런'부터 '수육런'까지 이색 러닝…MZ들 사로잡은 이유 [비크닉]

서혜빈 2024. 5.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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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트렌드

「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반복되면 의미가 생깁니다. 일시적 유행에서 지속하는 트렌드가 되는 과정이죠.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서 유의미한 ‘통찰(인사이트)’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장인 황선야(30)씨는 최근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런데 기록이 빨라서가 아니라, 복장 덕분이었다.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독립운동가 유관순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달린 것이다. 그가 참가한 대회는 굿러너컴퍼니가 운영하는 ‘굿러너 릴레이마라톤’으로, 42.195㎞인 풀코스를 남녀 7명이 각각 6km씩 나눠 완주하는 방식. 여기에 우승 기준 역시 ‘남다른 복장’이었다. 황씨는 “뛰면서도 재미있는 콘텐트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독특한 복장이 우승 기준인 마라톤 대회에서 1위를 한 황선야씨 소속 러닝크루 단체 사진. 사진 황선야씨 제공

최근 기록이나 순위 경쟁보다 뛰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한 ‘펀 런(Fun Run)’이 주목받고 있다.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빵으로 채운 칼로리를 소모하자는 ‘빵빵런’부터 컬러 파우더를 맞으며 뛰는 ‘컬러런’, 곳곳에서 출몰하는 좀비를 피해 미션을 완주하는 ‘좀비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수육런’은 대표적인 이색 달리기다. 본 행사명은 ‘금천구청장배 달리기 대회’지만, 참가비 1만원에 5∙10km를 뛰면 수육과 막걸리를 주는 것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수육런’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대회를 기획한 이광남 금천구육상연맹 회장은 “올해 20회를 맞이하는데 소셜미디어상에 후기가 많이 공유되면서 4~5년 전쯤부터는 90년대생 참가자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23일 신청이 시작되자 구청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수육런’이라는 별명이 붙은 ‘금천구청장배 달리기 대회’ 홍보 포스터. 사진 금천구육상연맹

이런 ‘펀 런’의 배경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러닝 열풍이 있다. 러닝크루에 가입해 뛰는 사람이 늘고 SNS에 인증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생긴 변화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런스타그램’이라는 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120만 개에 육박한다.

소비 트렌드 역시 러닝 열풍을 그대로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 인기를 끌었던 골프∙테니스 등 고비용 운동 대신 운동화 한 켤레만으로 즐길 수 있는 러닝∙등산 등 맨몸 운동이 다시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1~10월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골프(-4%)∙테니스(-15%) 용품 및 의류 구매액은 줄었는데, 러닝(13%)∙등산(11%) 종목 관련 용품 구매액은 늘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23%)와 30대(7%)의 스포츠용품 구매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우아한형제들이 기획한 장보기오픈런 홍보 포스터. 사진 우아한형제들

달리기에 관심 갖는 젊은 층이 늘자, 기업·브랜드에서는 이를 고객 마케팅 행사로 진화시키는 중이다. 우아한형제들은 다음 달 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장보기 오픈런’을 마련, 장바구니에 상품을 가득 담아 5㎞를 완주하면 상품을 전부 가져갈 수 있다. 배달의민족 내 ‘B마트’ 홍보가 목적으로, “젊은 세대를 겨냥해 장보기와 러닝을 유쾌하게 결합한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열린 시그니처 63런에 참가한 사람들. 사진 한화생명

땅이 아니라 하늘을 오르는 달리기 대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물산은 지난달 20일 국내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123층 꼭대기까지 오르는 ‘롯데월드타워 수직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참가자 수만 2200명. 한화생명도 다음 달 1일에 여의도 63빌딩 내 1251개 계단을 오르는 ‘시그니처 63런’을 마련한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 교수는 “재미를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는 운동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려는 성향을 보인다”면서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가진 웹툰 작가 기안84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마라톤에 도전하면서 따라 해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분석했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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