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교체' 국정 쇄신 상징인데…사표낸 한 총리 유임설, 왜
역대 대통령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의 위기가 올 때마다 국정의 2인자인 국무총리 교체 카드를 빼 들었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부겸 전 총리를, 문건 유출 파동에 지지율이 출렁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월 이완구 전 총리를 인선했던 게 대표적이다. 모두가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총리 교체는 여전히 국정 쇄신과 변화를 상징하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불린다.
야권에 192석을 내준 4·10총선 참패 다음 날 한덕수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던 것도, 대통령실이 같은 날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쇄신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 넘게 지난 지금도 한 총리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확히는 후임자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물러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 여권 일각에선 지난 21일 취임 2주년을 맞은 한 총리를 두고 유임설도 들린다. 유임설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가 21대 국회보다 더한 압도적 여소야대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윤 대통령은 허니문 기간이라 불리는 취임 직후에도 한 총리의 국회 인준을 겨우 받아냈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192석 야당이 힘을 보여주려 22대 국회 첫 총리 후보자는 무조건 낙마시킬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고 했다. 어차피 교체가 불가능하다면 ‘인선→청문회→낙마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이 험난한 국회 인준을 넘어서려면 협치형 총리를 내세워야 한다는 점도 딜레마다. 그러기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게 유임설의 두 번째 이유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대통령실 내 비선 논란을 유발한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후보 검토설’과 영수회담의 비공개 특사 역할을 맡았다고 주장한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 이달초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총리 추천을 요청했다”는 보도 등으로 보수 진영에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엔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어설픈 협치형 총리를 내세웠다가는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정치인 출신인 정진석 전 국민의힘 의원을 앉히며 관료 출신 총리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유임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한 총리는 지난해 잼버리 사태 당시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처신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여권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회를 마주한 대통령 입장에선 정치적 야망이 있는 인사를 총리에 앉히는 건 부담”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총리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총선 참패 뒤 한 총리를 비롯해 안보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 전원이 사표를 냈으나, 현재까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만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수도권 당협위원장은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서 무슨 쇄신이 되겠느냐”고 했다.
2030 세계 박람회 공동유치위원장을 지낸 한 총리가 엑스포 실패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도 교체 이유로 거론된다. 윤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직구 금지 정책 역시 총리실이 주도했다. 다만 복수의 총리실 관계자는 “한 총리는 후임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 뿐 직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최근 윤 대통령을 보면 탄핵의 우려 때문인지 수비적이고 방어적인 국정 운영에 치우쳐 있다”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40대 총리 등 신선한 인사 교체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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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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