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왕따? 이 학교에는 그런 거 없어요

손병관 2024. 5. 2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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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부적응' 학생 치유와 교육 함께 하는 서울어린이병원 '레인보우예술학교'

[손병관 기자]

 서울시어린이병원 내에 위치한 레인보우예술학교 학생들이 17일 오후 수학시간에 구구단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손병관
 
서울 서초구 서울시어린이병원 내에 위치한 레인보우예술학교(아래 레인보우 학교)의 학생 수는 10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학교 부적응' 및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 학교에 들어오려는 학부모들의 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승용차로 편도 1시간 이상 걸리는 통학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바래다주는 학부모들도 있다.

평소 반응이 느리고 감정표현이 서툴다고 또래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딸, 또래에게 왕따를 당하고 눈치가 없어 선생님에게 자주 꾸지람을 들은 뒤 등교를 거부하는 정서장애를 가진 아들, 그림 그리기에 집착하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 발달장애아 등 자녀를 이곳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일부 학부모는 학교에서 시달리는 아이를 지방의 대안학교로 보내려다가 서울에 레인보우 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에 마음을 바꿨다. 

레인보우 학교는 지리적 근접성 이외에도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력 인정학교' 인가를 받았다는 장점이 있다. 입학 희망자는 원래 학교로부터 위탁 교육을 받는 형식으로 이곳에서 1년을 보낸다. 시 교육청 인가는 이들이 이곳에서 보낸 1년을 학력으로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500명 정도의 학부모 대상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동에게 예술 교육과 치료를 겸한 학교가 필요하냐"는 설문조사를 시행하니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그런 학교가 생기면 자녀를 보내고 싶다"는 의향을 피력했다고 한다. 

레인보우 학교 김명신 교감은 "발달장애가 심한 아동은 특수학교에 가고, 이 학교는 특수교육과의 경계선에서 일반학생에 섞여 지내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안심하고 맡기고, 학생들도 자존감 찾을 수 있도록
 
 23일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센터 야외무대에서 열린 '레인보우 예술학교' 개원 기념 발달장애 학생들의 재능 데뷔 캐스팅 프로젝트(Casting Project)에서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레인보우예술센터 이소현
 
1, 2교시는 기간제 교원들로부터 일반교과 수업을 받고 이후 시간에는 음악, 미술, 연극, 체육, 춤 등 예술 교육을 중심의 교과과정이 짜여져있다. 학생이 특이행동 등 이상징후를 보일 때 보살펴줄 수 있는 어린이병원 의료진 3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는 것도 학부모들이 자녀를 안심하게 보낼 수 있게 한다.

일부 초등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열풍처럼 번진 '선행학습 붐'은 레인보우 학교의 학부모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김명신 교감은 "입학 전 사전 인터뷰를 해보니 학부모들이 하나같이 '공부가 그리 중요하냐? 우리 아이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들 말하는데 그 말이 더 짠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일반교과 담당 김문영 교사도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축복받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학교 부적응'을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교육부의 2023년 학업 중단 현황에 따르면, '학교 부적응'으로 학교를 떠나는 초·중·고등학생의 수가 연간 5만여 명에 달한다.

레인보우 학교의 입학 대상자는 초등학교 4학년. 대부분의 '학교 부적응 아동'이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또래 놀이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초등학교 3, 4학년이라는 설문조사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그나마 한 반 10명으로 첫 삽을 떴지만, "내 아이는 받아줄 수 없냐", "5학년, 6학년은 안 되냐"는 문의가 여전하다.

1년이 지난 후 이들이 일반학교로 복교할 정도로 회복될지도 미지수다. 학사일정대로라면 올해 입학생 10명은 내년 2월까지 레인보우 학교를 졸업하고 이들의 위탁을 의뢰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원래 학교에 다닐 때 갖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레인보우 학교로 온 마당에 이들을 원래 학교로 보내는 것이 온당하냐는 물음은 그대로 남는다. 

레인보우 학교에 따르면, 학폭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뒤 자식이 등교를 거부해 1년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바람에 부모까지 속이 상해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례도 있다. 레인보우 학교는 수용 인원을 더 늘려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성년에 이를 때까지의 학업을 보장하는 완전한 '학력인정' 대안학교로 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김명신 교감은 "발달장애가 심하지도, 그렇다고 일반학생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은 경계선상에 있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다"며 "학부모가 안심하고 맡기고, 학생들도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레인보우 학교를 제 궤도에 올려달라"고 지원을 호소했다.
 
 23일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센터 야외무대에서 열린 '레인보우 예술학교' 개원 기념 발달장애 학생들의 재능 데뷔 캐스팅 프로젝트(Casting Project)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 레인보우예술센터 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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