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페미 영화예요?" 남자만 나오는 '매드맥스' 신작의 실체

이진민 2024. 5. 25. 19: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 '퓨리오사' 일대기 담은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진민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메인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매드맥스>가 왜 페미임? 마초 영화 그 자체인데."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팬들끼리 '페미니즘'으로 싸우는 시리즈, 다름 아닌 <매드맥스> 얘기다. 맹렬한 사막에서 트럭 한 대가 질주하고, 피 튀기는 액션과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 어느 누리꾼의 평처럼 '페미' 논란이 무색할 만큼 <매드맥스>는 남성들이 바글거리는 시리즈다. 그럼에도 수많은 관객들이 '페미니즘' 영화라고 해석한다.

아리송한 논란에 신작이 마침표를 찍었다. 기존 시리즈의 번외작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전설적인 사령관 '퓨리오사'의 일대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여성 캐릭터지만, 그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 캐릭터다.

영화가 쌓아 올리는 남성성과 남성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아차'하는 순간, 어딘가로 빠진다. 무너진 세계관을 재건하고 평화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그들을 깨워야 한다. 노예이자 장난감이며, 아이를 낳는 '자궁'이자 키우는 '젖'인 존재들. 마침내 남성은 살아남고자, 여성을 해방한다.

이상한 놈, 나쁜 놈, 애매하게 좋은 놈
 
 곰 인형을 매단 '디멘투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을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놈놈놈'이다. 퓨리오사가 처음 만난 '놈'은 '디멘투스'다. 그는 의도치 않게 어린 퓨리오사를 납치하고, 눈앞에서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잔인한 인물이지만, 어딘가는 기이하게 해맑다. 퓨리오사의 아버지 역할을 자청하며 그를 '리틀 D'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인질을 처형할 때 그의 눈을 대신 가린다. 다른 일당을 소탕할 때도 진중함은커녕 장난스러운 말투로 유머를 던졌다가, 산산이 찢어 죽인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곰 인형과 함께한다. 죽은 자식의 물건을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러다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에 실컷 웃고 마는 '디멘투스'. 처음 장면에는 허리에 묶여있던 인형이 점점 내려와 마지막에는 성기 근처에 매달려있다. 마치 권력을 차지하고 한없이 늙어가도, 결코 성장할 수 없는 '이상한 놈' 디멘투스의 삶을 비유한 듯한 연출이다.

소녀가 된 퓨리오사가 만난 '놈'은 임모탄 조. 그는 깨끗한 식수와 자원이 풍부한 도시를 지배하는 독재자이다. 어린 퓨리오사를 아내로 삼겠다며 그를 어딘가에 가둔다. 그곳엔 임모탄의 아이를 낳기 위해 여성들이 갇혀있다. 오직 출산만이 그들의 존재 가치이기에 수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제대로 된 자식을 낳지 못하면 쫓겨난다. 임모탄은 자식을 낳아줄 '자궁'인 여성들과 수유할 '젖'인 여성들을 분리하여 통제하며, 그들에게 기생해 남성성을 대물림하는 인물이다.

동시에 임모탄은 디멘투스와 부족한 자원을 두고 싸우며 수십 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 그동안 평범한 시민들은 굶어가고, 그에게 충성을 맹신한 '워보이'들은 부질없는 목숨만 날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땅과 사람들을 식민지화했으면서 자신을 '구원자'로 칭하는 오만함. 임모탄 같은 '나쁜 놈'을 처단하기 위해 퓨리오사는 동료를 찾아 헤맨다.

그때 만난 건 '잭'이다. 그는 임모탄이 이끄는 군대에서 물자를 운송하는 베테랑 운전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퓨리오사를 돕는 인물이자 동료애와 사랑을 오가는 사이다. 분명 퓨리오사의 조력자이기에 '좋은 놈'인 건 맞지만, 애매한 구석이 있다. 퓨리오사가 잭에게 기대면서 일이 틀어지게 되고, 궁극적으로 홀로서기의 발판이 된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이상한 놈' 디멘투스에게 복수하고, '나쁜 놈' 임모탄을 처치하기 위해 '애매하게 좋은 놈' 잭과 마주하게 된다.

야만의 연쇄고리 끊은 퓨리오사
 
 퓨리오사의 모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남성성으로 뒤덮인 세계가 얼마나 위험하고, 포악한지 묘사한다. 디멘투스와 임모탄은 부족한 자원을 두고 공생이 아닌 전쟁을 택한다. 서로 협정을 약속해도, 불신 탓에 싸움의 규모만 커져갈 뿐이다. 남성 캐릭터들이 모든 걸 정복하겠다는 욕구를 분출하며 싸우는 동안, 세상은 점점 피폐해지고 절망적으로 변해간다. 그들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조차 시위하고 분노하며 사회의 엔트로피는 폭주한다.

야만의 연쇄고리를 끊는 건 퓨리오사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디멘투스'에게 복수하던 찰나,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을 움직이는 건 허망함이 기다리는 분노가 아닌 사람들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결국 퓨리오사는 임모탄이 지배한 도시로 돌아가 갇혀있던 '자궁' 같은 여성들과 함께 도망친다. 그렇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막을 내리고, 2015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시작된다.

여성들을 해방한 퓨리오사, 정작 그를 해방한 건 남성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장하지 못한 남성들이 퓨리오사를 자극했다. 무자비한 학살자이면서 유아적인 디멘투스, 여성과 자원을 착취해 남성성을 입증하는 임모탄, 도움은 줘도 삶을 책임질 순 없었던 잭. 갇혀있던 퓨리오사는 남성성의 한계를 직면할 때마다 자신에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구원자로서의 정체성을 수용하게 된다. 

영화 초반, 어린 퓨리오사는 남성 캐릭터들의 소유물이었다. 디멘투스의 딸이자 또 다른 곰 인형이었고, 임모탄의 자궁이자 장난감이었다. 그랬던 그가 남성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단 하나의 여성으로 돌아왔다.

복수극과 성장물, 그 어딘가에 놓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2018년, 미국 체조 대표팀의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가 130명 이상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피해자 카일 스티븐슨은 법정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처참한 세계를 박살 내고, 구원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이래도 <매드맥스>가 마초 영화인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