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밀양 사람들

김은진 2024. 5. 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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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6회 밀양아리랑축제에서 만난 시민들과 학생들

[김은진 기자]

나는 서울 신림동에서 태어났다. 예전에 신림사거리에 신림극장이 있었는데 그 뒤쪽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서울이지만 대답은 항상 어눌하게 나오곤 한다. 이유는 고향이라면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거나 종종 찾아갈 곳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사통팔달 서울도, 무인도를 떠올리며 어색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지역축제장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무인도를 헤매지 않게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다. 지역민들이 고장의 자랑거리를 선전하고 자신이 지은 농산물을 홍보할 때면 멋진 공연을 보았을 때만큼 감동적이다. 한낮의 밭고랑 사이를 뛰어다녔을 시간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정성과 애정, 아름답지만 때론 혹독한 자연 속에서 무르익었을 마음을 떠올려 보곤 한다.
 
▲ 밀양역앞 홍보부스 제 66회 밀양아리랑 대축제 안내 홍보부스가 설치되어있다. 셔틀버스 안내및 홍보책자와 생수도 나눠주셨다.
ⓒ 김은진
  
23일은 제66회 밀양아리랑 축제 개막식이 있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밀양아리랑은 노랫말도 재미있고 가락도 흥겹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밀양역에 도착하니 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노란 텐트를 치고 안내 책자와 식수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홍보부스에 한두 명이 있는데 이곳에는 십여 명이 계셨다. 셔틀버스를 안내해 주셨는데 축제장까지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다닌다고 했다.

영남루와 밀양아리랑 축제장
  
▲ 밀양강변 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는 조선 3대 누각이다. 한낮에 더위를 피해 몰려든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 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 김은진
 
축제장은 영남루 맞은편에 있는 밀양강 둔치에 있었다. 정오를 지난 시간이었지만 아직 더워서 우선 영남루로 향했다.

누각에 오르니 큼지막한 붓글씨가 걸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어린 아이들의 솜씨라고 하는데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묵직한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팔각 누각의 처마는 파란 하늘을 향해 날렵하게 휘어져 올라 있었다. 색이 바랜 기둥과 낡은 마루가 시간의 온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영남루에 앉아 고요히 흘러가는 밀양강을 보며 원혼이 되어서 억울한 죽음을 밝힌 아랑의 전설을 떠올려 보았다.

행사장에서 내려갔다.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쿨존과 생수, 모자, 부채 등을 나누어 주시며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돕는 분들이 계셨다.

강변에서 할 수 있는 수상 체험으로는 어린이 페달보트, 수상자전거, 삼륜 바이크 등이 있었다. 부스에서 하는 체험행사 대부분 무료였고 경품을 주는 곳도 있었다.

농업인 체험관에서 밀양의 특산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 작물인 딸기와 수박이 줄기와 뿌리째 밭에서 옮겨 온 것처럼 진열되어 있어 생동감을 더했다.

아리랑 전시관에는 아리랑의 역사와 대중가요로 인기몰이했던 시절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오래된 축음기, 음반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밀양아리랑 축제의 모습이 닥종이로 재현되어 있었다.

이름 없는 독립군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 우리가 의열단 3.13 밀양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체험, 밀양경찰서폭탄사건,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 항일 저항정신의 뿌리가 깊은 고장 밀양.
ⓒ 김은진
 
전시관 밖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만세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의열단' 체험 부스에서 나는 소리였다. 1919년 3월 13일 밀양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일본 순사, 흰 두루마기 남성,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 여성 이렇게 세 가지 의상이 있었고 아이들 옷도 있었다.

나도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자 마치 일제강점기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떨렸다. 이곳에서는 기념배지도 만들 수 있었는데 열심히 배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밀양초 3학년 신지원 학생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부모님과 친구랑 같이 왔어요. 저도 만세를 불러 보았어요. 독립운동가들이 애써주셔서 감사하고 행사기간 동안 반 친구들과도 함께 매일 이곳에 오고 싶어요."

이 행사를 담당자분은 밀양향토청년회였는데 책자도 나누어 주셨다. 펼쳐보니 밀양 독립운동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분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다. 사진이 없는 분은 이름만 적혀 있기도 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어서 놀랐다. 교과서나 위인전에서는 뵐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을 후손들이 백 년이 넘도록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다는데 감동을 받았다.

나라 전체가 신음하고 고통받았던 일제강점기 시절이 점차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밀양 청년분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계신다니 반가웠다. 밀양향토청년회장의 말을 들어보았다.

"거제 청년회와도 정기적으로 만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의상도 기계도 모두 저희가 주축이 돼서 마련했어요. 시민들이 좋아하시니 저도 보람됩니다."

자신의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들

밀양시민 박지원(30대, 여)님은 3살, 4살 아이를 데리고 강가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여유롭게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행복한 깨소금 냄새가 솔솔 풍겼다.

"해마다 아리랑 축제에 참여하고 있어요. 아이들 하원하고 가족이 모두 함께 도시락 준비해서 왔어요."

밀성여중 2학년 조은나래, 이나연, 박서연 학생은 축제 무대에 서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온 다른 학생들도 많았다.
 
▲ 밀양아리랑축제장을 찾은 중학생들  “학교 끝나고 바로 왔어요. 밀양 학생들은 행사 있으면 적극적으로 모두 참여합니다. 밀양은 풍경도 좋고 인심도 좋고 사계절 아름다운 꽃들로 덮여있어요. 벚꽃, 진달래, 무궁화, 수국, 가을엔 단풍...”라고 말하는 학생들에게서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 김은진
   
서로 장난을 치며 지나가는 남학생들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학교 끝나고 바로 왔어요. 밀양 학생들은 행사 있으면 적극적으로 모두 참여합니다. 밀양은 풍경도 좋고 인심도 좋고 사계절 아름다운 꽃들로 덮여있어요. 벚꽃, 진달래, 무궁화, 수국, 가을엔 단풍..."

세종중 2학년 노태오, 최동윤, 김민준 학생들이 씩씩하게 고향인 밀양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장을 이토록 아끼고 적극적으로 축제에 참여하는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궁금했는데 행사 진행을 도우며 천막을 보수하고 계시는 최요하(50대)님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밀양은 봉사단체들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어요. 예전부터 독립운동가들이 많고 다른 고장보다 좋은 일은 솔선수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밀양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섬유염색 일을 했어요. 지금은 종이 인쇄업을 하고 있는데 고향에서 사니 수입을 떠나서 즐겁습니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고장, 밀양. 아픈 역사를 어루만지고 어려운 일은 나서서 도와주려는 마음이 밀양역에서부터 행사장까지 봉사하시는 분들로 채워진 이유였던 것 같다. 흥겨운 아리랑 축제는 26일까지.

덧붙이는 글 | 아랑의 전설 :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랐다. 유모란 사람은 음흉하고 성격이 고약하여 미모의 아랑을 시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아의 심부름꾼이 유모에게 뇌물을 주고 꾀어내어 아랑을 영남루로 오게 했다. 흑심을 품은 그는 아랑을 겁탈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고 영남루 아래 대숲에 묻어버렸다. 그 후 부임하는 부사마다 자다가 까닭 없이 죽임을 당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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