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터뷰 |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상책(上策), 담대한 도전 멈추지 않겠다”

2024. 5. 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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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백년지대계’ 마련한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

나노신소재공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 삼성OLED센터장 지내
국내 최초 우주항공대학 설립, “대한민국 미래 위해 육성할 것”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5월 7일 인터뷰에서 “경상국립대형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결하는 상책(上策)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대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꿈입니다.”

권순기 총장이 2011년 경상대(현 경상국립대) 총장 선거에 출마해 이런 포부를 밝혔을 때만 해도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적잖았다. 경상국립대가 위치한 사천·진주 등 경상남도 서부 쪽은 상대적 낙후지역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교육부의 지역 대학 육성 프로젝트인 글로컬대학30 사업에 경상남도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선정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냈다. 경상국립대가 그간 혁신에 소홀했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쾌거다. 과연 권 총장은 어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경상국립대를 설계해온 것일까. 5월 7일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에서 권 총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4년 동안 선진 교육 시스템 도입 힘써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이 지난해 12월 ‘경상국립대 글로컬대학 비전선포식’에서 사업의 비전과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경상국립대
6월이면 취임 4년이 됩니다. 소회를 밝혀 주신다면?

“저는 ‘작은 도시인 진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미국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코넬대학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다져놓았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근에는 마치 임기 첫해인 듯 꽉 짜인 일정을 보내면서도, 다음 총장에게 대학의 현안과 주요 사업을 인계하기 위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억에 남는 혁신이 있다면.

“경상대와 경남과기대를 통합하고 시대와 지역이 요구하는 우주항공대학, IT공과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수산생명의학과를 설립한 것, 교육부의 글로컬대학30 사업과 학내의 작은 연구재단인 램프(LAMP) 사업 선정, 부산 동명대로부터 부지를 기증받아 대학동물병원 설립을 시작해 부산으로 대학 영역을 확장한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해 사업 1차 시기에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됐습니다.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경남 서부 지역에 한 번쯤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창업중심대학 사업, 그린 스타트업 허브 조성사업으로 물꼬가 트이더니 글로컬대학, 램프 사업 선정,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 통과 등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권순기 총장은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전 구성원의 의지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심정으로 담당 부서, 집필진 등을 독려했으며, 미국·프랑스 등 교육 선도국의 선진 시스템을 가져오기 위해 수차례 해외 출장(해외 대학·기관과 협력,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다녀왔다.

구성원들의 사기가 많이 올라갔겠습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해도 잘 안 될 거다’라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만, 작년 중반부터 ‘우리 대학에 뭔가 할 수 있다는 기운이 몰려온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글로컬대학과 더불어 연구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는데 필수적인 ‘램프 사업’에 선정되는 겹경사도 있었습니다. 2024학년도 신입생 등록 결과 미충원 인원이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지표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램프 사업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이공학 학술연구 기반 구축사업’이다. 기존 과제 중심 연구 지원에서 벗어나 대학이 연구소를 관리·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연구 인력이 공동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거점 대학 중에는 경상국립대를 포함해 4개 대학만 선정이 됐으며, 5년 동안 총사업비 200억 원 이상을 받는다.

우주항공·방산 특성화를 내세워 글로컬대학이 됐습니다.

“우리 대학은 항공 분야만큼은 1990년대 중반부터 관련 학과를 만들어 집중 육성해왔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항공 분야 기업체의 60%, 국내 유일 항공국가산단이 경남에 몰려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나사(NASA)인 우주항공청도 곧 문을 엽니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하면 우주항공방산 특성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우주항공대학 설립은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우주항공대학은 국내 최초,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없는 우주항공 분야 단과대학입니다. 우주항공 분야 인력양성, 산업체 기반 연구개발 등 외부 변화에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육부 ‘램프(LAMP) 사업’ 선정 겹경사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이 지난 3월 ‘경상국립대 글로컬사업단 현판식’에 참석해 사업단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경상국립대
항공·드론 분야 혁신융합대학 사업에 선정되는 등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입니다.

“우리 대학은 2017년 국내 최초로 항공분야 선도연구센터(ERC)로 선정돼 7년간 사업을 수행했고, 2024년 5월 후속사업(글로벌 선도연구센터)에도 선정됐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라는 점을 정부가 인정한 거죠. 또 국립환경과학원에서 기후변화 가스를 초소형 인공위성으로 모니터링하는 사업이 있는데, 사업 전체를 조정하는 책임자가 우리 대학입니다. 우리 대학은 앞으로도 항공 모빌리티와 초소형 인공위성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권 총장은 나노신소재공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59년 경남 산청 출생인 그는 서울대 사범대와 카이스트(KAIST) 화학과 석·박사를 졸업한 뒤 1987년에 경상대 공과대학 나노신소재공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학내에서 항공공학특성화사업단 실무추진위원장, 기획연구부처장, 누리사업 추진위원장, 공과대학장, 삼성OLED센터장 등을 지냈으며 지식경제부 디스플레이산업 전략기획위원회 OLED분과 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WPM(세계최고소재)사업 총괄심사위원회 위원장, 대교협의대학 평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학내에 삼성OLED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삼성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높은 기술을 연구·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삼성과 산학 공동연구를 수행한 대학원생들은 그만큼 트레이닝이 돼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때문에 취업 시장에서 굉장히 인기가 높습니다. 이 모델은 경남우주항공방산과학기술원(GADIST·가디스트) 모델로 계승·발전했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디스트는 무엇인가요?

“경남우주항공방산과학기술원(GADIST, Gyeongnam Aerospace & Defense Institute Science & Technology)은 연구소와 대학원을 결합한 개념으로 우주항공·방산 쪽 요소기술(要素技術)을 연구개발하고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우리 대학 교수들과 산업체, 관련 연구원을 매칭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기업이 원하는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로 자연스레 트레이닝 됩니다.”

삼성OLED센터가 가디스트로 이어졌듯, 가디스트로 계획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경상국립대형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북대 전자공학과, 전남대 화학공학과 등 특성화 대학을 육성해 지역 거점대와 지역을 발전시킨 방법이 지역 소멸을 극복하는 데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상국립대를 우주항공·방산 분야로 발전시켜 스필오버(Spillover·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혜택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현상)되는 성공모델을 만들자는 야심찬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는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결하는 상책(上策)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실무 능력 갖춘 인재로 트레이닝” 주력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은 5월 7일 인터뷰에서 “남명 정신과 K-기업가정신에 기반한 담대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대학교와의 연계도 계획하고 계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서울대와 공동학위제, 복수학위제, 학·석사 연계과정 등의 적용 범위, 시기 등에 대해 국립대 간의 협력 차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글로벌 K-기업가정신 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권 총장은 “모든 학생에게 선택 필수로 K-기업가정신을 가르치고 개척정신을 실천하도록 할 것”이라며 “나아가 K-기업가정신을 세계에 확산하고 국제공동교육 및 연구를 선도할 것”이라고 했다. 경상국립대는 글로컬대학 사업 주요과제로 ‘남명 정신과 K-기업가정신에 기반한 담대한 창업생태계 조성’을 제시한 바 있다. K-기업가정신센터는 이병철(삼성), 구인회(LG), 허만정(GS) 등 국내 굴지 기업을 일으킨 창업주를 배출한 경남 진주의 옛 지수초등학교에 있다.

남명 정신과 K-기업가정신은 어떤 접점이 있나요?

“1980년대 대한민국 100대 회사의 CEO 가운데 30%가 지수초등학교에서 배출됐다는 사실은 한강의 기적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대학 교수를 포함해 국내외 저명한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 16세기 활동한 저명한 유학자이자 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 사상과 연결된다는 다양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총장님이 강조하시는 K-기업가정신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5C’가 필요합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능력(Communication), 협업능력(Collaboration), 도전정신(Challenge), 공감능력(Compathy)이 그것입니다. 누군가는 기업을 창업하거나 기업을 경영할 것도 아닌데 왜 K-기업가정신을 배워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K-기업가정신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대학에서 다른 대학으로, 대학에서 초중고교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한국정신문화를 수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남명 정신과 K-기업가정신에 기반한 담대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겠습니다.”

- 글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 사진 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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