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 작가, 버스 기사님까지 마음을" 이 영화에 담긴 진심

이선필 2024. 5. 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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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목화 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배우 박원상

[이선필, 권우성 기자]

꽃이 한 번 피웠다 진 후 맺히는 열매, 그 열매에서 나오는 솜털로 인해 두 번 피우는 꽃이라 불리는 목화솜이란 단어에 특별한 염원을 담았다. 제목대로 영화 <목화솜 피는 날>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지나며 유가족, 그 이웃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 비극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지난 5월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된 <목화솜 피는 날>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중영화로써 세월호를 다룬 극영화로 <생일> <너와 나>가 있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인양된 세월호 선체 내부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감독은 물론 배우들의 마음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터. 24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신경수 감독과 배우 박원상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신경수 감독과 배우 박원상.
ⓒ 권우성
 
영화에 담긴 진심들

"마치 군번처럼 학번처럼 각인돼 버린 그 날. 이후로 제대로 된 애도도 참여도 못한 채 지내다가 인연처럼 이 작품이 왔을 때 밀어낼 이유가 없었다."

배우 박원상의 표현처럼 <목화 솜 피는 날>은 인연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최근엔 <소방서 옆 경찰서> 등으로 잘 알려진 신경수 감독은 2014년 4월 16일 당시 드라마 <쓰리 데이즈> 작업에 한창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그 무게감을 절실히 느끼던 차에 현재 제작사로부터 10주기 극영화 연출 제안을 받았고, 세월호 선내를 촬영할 수 있다는 조건에 신 감독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제작진이 앞서서 슬픔을 점유하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목화솜 피는 날>은 참사로 딸을 잃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칠게 투쟁하던 아빠 병호(박원상)와 참사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엄마 수현(우미화),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망각과 기억, 방관자적 시선을 두루 다루고 있다. 그만큼 10주기의 현실감을 반영하겠다는 의중일 것이다.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잊으려고 하는 마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대면해야 했다. 참사 이후 고 김관홍 잠수사 이야길 다룬 김탁환 작가의 소설을 보고 언젠가 드라마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유가족 외부의 사람으로 민간 잠수사분들이 어려운 일을 해주셨는데 우리 사회가 그 희생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의지는 여전히 변함 없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간절했다.

그만큼 계속해서 참사를 이야기하는 예술 작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90분이라는 시간에 다 담는 게 어렵지만, 지난 10년의 총합을 다뤄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유가족분들뿐 아니라 연대한 시민들, 진도 주민들까지 담아내고 싶었다." (신경수)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배우 박원상.
ⓒ 권우성
 
박원상이 맡은 병호라는 인물이 그 대명사 격이다. 슬픔에 잠식되고 투쟁에 함몰되며 결국 연대하는 동료들과 주변 유가족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끈질기게 기억하려다 결국 본인의 기억 일부마저 잃는다. 배우로서 연기와 함께 실제 현실이 존재하기에 그 파급효과까지 감안했어야 했다.

"사실 (파급 효과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촬영 때는 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병호가 잠시지만 기억 일부를 잃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싸우려 드는 것도 일종의 방어 기제지 않나. 한계를 맞이한 것이지. 참사의 기억은 병호든 수현이든 큰 딸이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인생 끝까지 갈 텐데, 조금은 이 영화로 같이 울어주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지난 10년 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박원상)

두 사람은 영화에 모인 소중한 마음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영화는 유가족으로 구성된 극단 '노란리본' 배우들이 참여했다. 동네 주민으로 혹은 활동가 캐릭터로 분한 이들의 존재만으로 제작진에겐 특별했을 터. 두 사람은 목포 촬영에 깜짝 합류한 배우 이준혁, 라디오 방송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배우 황영희 등을 언급했다.

"어머님들이야 제가 (연기적으로) 이끌 게 거의 없었다. 다 겪고 체험하고 계신 분들이기에 이미 몰입을 하고 계셨지. 기존 배우들도 이미 같은 마음인 분들로 모셨고. 이준혁 배우는 저랑 <육룡이 나르샤>를 같이 하기도 했고, 목표 촬영 응원 온다고 하더라. 근데 그건 본인도 출연하고 싶다는 뜻이거든(웃음). 워낙 잘하셔서 신스틸러라는 별명이 있는데 스틸하지만 말아다라고 해놓고 당일 역할을 드렸다. 드라마 <모범택시> 작가님은 회식 때 쓰라며 돈을 보내주셨고, 엑스트라 연기자 반장님, 스태프 버스 기사님도 십시일반 보태서 회식을 열어주셨다." (신경수)

"전체 촬영이 8회차로 빡빡한 가운데 목포에 갔더니 이준혁 배우가 앞에 서 있더라. 출연진 아닌데? 싶다가 그 마음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황영희 배우는 목포에서 식사하는 데 쓰라며 술값을 보냈다. 그렇게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였다. 그리고 (노란리본) 어머님들의 마음이야 제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존재만으로 너무 좋았다. 전주영화제 때 제가 최덕문 배우와 비교해서 농담 반으로 어머님들이 전문 배우보다 훌륭한 연기를 했다 말했는데,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단 한 마디 대사에도 울림이 있었다." (박원상)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성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신경수 감독과 배우 박원상.
ⓒ 권우성
 
이런 헌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영화가 지난 22일 개봉했다. 배급 여건상 규모가 큰 대중영화에 비해 극장 수도 그렇고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경수 감독은 "장모님의 여고 동창회까지 동원할 정도로 점조직 홍보를 하고 있다"며 녹록지 않은 홍보 과정을 전했다. 신 감독은 "영화 말미, 에필로그에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장면이 있다. 그것까지 꼭 보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으면 한다. 그래야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신 감독이 말한 대로 영화 말미엔 병호가 세월호 선내에서 학생들에게 공간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실제 동수 아버지(유가족 정성욱씨)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반영한 박원상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단체가 방문할 때마다 자세하게 안내하던 동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분의 옷을 빌려 입고 연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의상팀이 준비해 준 옷을 반납하고, 아버님의 옷을 빌렸다. 사실 대본에 없던 장면이었는데 감독님이 만들어주셨다. 원랜 아버님이 직접 하시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제안드리기도 했다. 제게 정말 그렇게 선체에 대해 설명해주셨거든. 어쩌면 그 장면은 병호가 아닌 동수 아버님은 제가 연기한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세월호 참사를 두고 스스로 검열하는 분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게끔 하는 이 사회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분명 다루지 못할 이야기가 아님에도 갈라치기 하고 외면하도록 한다. 그럴수록 힘을 모아 바꿔나가야지. 올해 있었던 4.16 기억식 때도 좀 서운함이 있었다. 작가들 감독들, 여러 예술가들이 각자 방식으로 애도할 거라 내심 기대했거든. 너무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학교 밖에선 보수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감독님이 이 영화가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계속해서 참사를 이야기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박원상)

"어제(23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과 연대 상영회를 했는데 한 어머님께서 병호의 대사를 듣고 위안이 됐다고 하셨다. 눈물 나면 나는 대로 살라는 말이었는데, 당신께선 꾹꾹 참아왔다고. 이젠 눈물 나는 대로 사시겠다고 하시더라. 며칠 전엔 단역분들을 위해 단체 상영회를 했다. 사극을 많이 하신 이모님들이 울다가 속눈썹이 다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현장 반장님은 이런 작품이 무섭다고 하시더라. 재밌는 드라마만 하라고 하셨는데 아마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전 제가 마주하는 상황대로 순리대로 하려고 한다." (신경수)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신경수 감독.
ⓒ 권우성
 
기억과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의지가 아닐까. <목화솜 피는 날> 이후로 신경수 감독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역사적 사건을 놓지 않고 다양한 도전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상 또한 배우의 본분을 해나감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편을) 가르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솔직해야 한다. 채 상병의 죽음도, 이태원 참사도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과거를 조금만 돌이켜보면 잊을만하면 비극이 반복되잖나. 이게 인간의 한계인가 생각도 든다.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겠지만 적어도 그 앞에서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보고 싶은 것만 보진 말아야 한다. 그래야 꼼꼼히 기록되고 시행착오가 줄겠지. 비극이 반복되는 건 다들 보고 싶은 대로만 봐서 아닐까." (박원상)

"실수를 반복해선 안되지만, 사람이란 게 결국 그럴 수밖에 없으니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하냐의 문제일 것 같다. 광주 민주화 항쟁도 오랜 시간 사태로 표현되다가 많은분들 덕에 항쟁으로 불리잖나. 근데 여전히 빨갱이라는 말이 나온다. 더 많이 광주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든 문학이든 민주화 항쟁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교육도 그렇고. 저도 언젠가 광주 이야기를 드라마로 하고픈 마음이 있다.

세월호 참사 또한 왜곡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피해자에게 못되게 구는 분들이 많다.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40년이 지나서도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로든 다른 예술로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신경수)
 
 세월호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의 신경수 감독과 배우 박원상.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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