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집이 되는 마법... 최상일씨는 오늘도 쓴다

충북인뉴스 최현주 2024. 5. 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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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써서 남주는 사람, 제천의 집 없는 청년농부 돕기 나선 이유

[충북인뉴스 최현주]

 인터뷰에 응한 최상일씨가 활짝 웃고 있다.
ⓒ 충북인뉴스
농촌에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집을 주기 위해 시를 쓰고, 필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소린가, 이해 못할 수 있지만 이미 그가 쓴 시와 글은 소소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작지만 큰 이 수익금은 청년들이 살 주택의 리모델링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바로 최상일씨 이야기다. 충북에서 태어나 충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충북에서 살았던 최상일씨. 그는 지역에서 '뭔가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15년 전부터 좋은 글귀, 좋은 시, 감동을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글을 매주 지인들과 공유한다. 간단한 감상문과 느낀 점도 첨부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문자로,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는 카톡으로 글을 보낸다. 현재 그의 글을 공유하는 이들은 300여 명에 이른다.

또 그만의 독특한 글씨체로 좋은 글을 필사해 책으로 엮어 지인들과 공유한다. 그렇게 엮은 책이 무려 130여 권. 어디에서 인쇄비를 지원받는 것도,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말보다는 글이 편한 것도 있고요. 서로 연락하지 않아도 그냥 교감이 되잖아요."

생각보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다. 3년 전부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써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물론 작가로 등단을 한 것도, 제대로 된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 쓰고, 혼자 인쇄하고, 혼자 책을 전달한다.

그렇게 그의 글과 책을 받은 이들은 1000원도 좋고, 5000원도 좋고, 1만 원도 좋고, 성의껏 마음을 전한다.

그의 독특한 '쓰기 작업'은 타인을 돕는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글을 통해 얻은 수익금 500만 원을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 기부했고, 그 전에는 녹색평론 잡지사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천에 살기를 원하지만 마땅한 집이 없어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그는 또 쓴다.

"농촌에 새로운 공동체 모델 생겼으면"
ⓒ 충북인뉴스
대학 시절부터 농촌과 생태에 관심이 많았던 최상일씨는 현재 제천 청년들이 살 주택 리모델링 비용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농식품부 사업으로 진행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자식 같은 청년들이 막상 살 집이 없어 농촌을 떠나게 되었다니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귀농·귀촌을 활성화시키고, 특히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더 이상 농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 있기도 하다.

"제가 10년 전부터 수많은 농촌을 다녔지만 그때와 달라진 게 없어요. 유일하게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들이 늙었다는 것, 그거 하나예요. 70~80대 어르신들이 우리 죽으면 마을 없어진다고 말해요."

최상일씨는 농촌에 다양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이 생겨나길 바란다.

"제천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모범 지역이에요. 매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3분의 2가 프로그램이 끝나도 제천을 떠나지 않고 제천에 정착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을 해도 문제는 집이 없다는 거예요."

국가는 농촌이 살아나려면 청년이 정착해야 한다며 지원 내용을 홍보하고 청년들의 농촌살이를 장려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에겐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집이 없다.

"국가에서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 당연하고, 또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언제까지 국가 탓만 할 수도 없고 뭐라도 해야죠."

"농촌은 도시보다 더 계급적"
 
 최상일씨가 구입한 집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 집에는 청년농 2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 충북인뉴스
현재 제천 덕산에 청년 두 명이 6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살 집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수리비다.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데 최상일씨는 현재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얼굴엔 수줍음이 있지만 그의 목소리와 표정엔 간절함이 묻어 있다.

그가 청년들을 위해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농촌 청년들의 모습 또한 도시 청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은 도시만큼이나 양극화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땅과 집을 물려받은 청년들은 문제없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청년들에게 농촌살이는 그야말로 '극한 체험'이 될 수 있다.

"농촌도 도시 못지않게 계급적이에요. 땅 있는 사람, 집 있는 사람은 기득권이 많지만 새롭게 들어가서 정착하려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어요. 청년농도 마찬가지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청년들은 땅도 있지, 기계도 있지, 농업인 등록도 돼 있지, 융자도 잘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청년은 불가능하죠. 도시의 비정규직과 정규직보다 훨씬 더 차이가 큽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이 청년들의 집으로 재탄생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최상일씨는 유독 수줍음이 많지만 청년과 농촌을 위해서 도와달라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청년들이 기특해요.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6월 말이면 공사가 끝나는데... 사실 지금 급한 상황입니다.(웃음) 원래 저 인터뷰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데 워낙에 급하니까요.(웃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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