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 | “평택에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추모비 세울 것”

2024. 5.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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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선 평택시장과 김경수 카이스트 부총장이 말하는 ‘안보 주도 성장’

■“미군기지 이전 관련 특별법 없었다면 삼성 반도체 평택 공장 없었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하는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 일자리도 만들어

■“미국의 반도체 리쇼어링 정책은 한국이 중간 제품 시장 확보할 기회”

■“주한미군은 소중한 관광객이자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외교 사절”

5월 9일 평택시청에서 만난 김경수(왼쪽) 카이스트 대외부총장과 정장선 평택시장은 “남은 4~5년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골든타임”이라며 “대한민국이 첨단기술로 치고 나갈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서 대만까지, 싱가포르에서 필리핀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를 지도 위에 놓고 보면 마치 아시아 전역에 배치된 미군 기지의 위치를 보는 것만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저서 [칩워 -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에서 지구촌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제공하는 반도체 혁신망을 근간으로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게 크리스 밀러 교수의 관점이다.

평택시는 [칩워]의 저자가 언급한 케이스에 딱 들어맞는 도시다. 평택시 팽성읍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가, 고덕동에는 D램의 최강자 삼성 반도체 평택 캠퍼스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군사’와 ‘첨단’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도시가 바로 평택이다.

평택시는 지금의 63만 인구가 100만을 돌파해 특례시로 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세계 반도체 수도 평택’이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2017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삼성 반도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발전 스토리를 써내려 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21세기 들어 서울과 경기도에 있던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통합 이전하면서부터다. 무릇 세상사에는 반대급부가 있듯 평택은 주한미군사령부, 미 2사단 등 주한미군 주력을 끌어 안는 대가로 지역 개발 관련 특별법을 챙겨 도시 발전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원래 경기도 소속인 평택시는 인구 집중을 유발하는 반도체 공장 같은 대규모 생산 설비 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수도권 과밀을 억제하는 취지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평택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장(연면적 500㎡)과 학교, 공공 청사, 연수 시설 등의 신설에 제한을 받았다.


“평택에 땅 사 밑진 사람 없어”


하지만 법체계상 특별법은 일반법에 우선한다. 평택시는 2004년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대규모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세우는 길을 닦았다. 나아가 차세대 반도체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도 유치하는 등 평택시가 선보인 규제 장벽 돌파·우회 전략은 국내외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성장 궤적은 잘나가는 다른 기초지자체의 그것과는 토양부터가 다르다. 달리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안보’라는 흔치 않은 기회를 ‘경제’ 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그래서인지 평택에서의 주한미군, 한·미동맹의 존재감은 각별하게 와 닿는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삼성 반도체가 한 세트로 묶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평택은 존재하기 어려웠다”면서 “이제 평택은 반도체 역량을 발판 삼아 세계도시, 국제도시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평택시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카이스트(KAIST) 김경수 대외부총장은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평택은 카이스트가 첨단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간중앙은 5월 9일 경기도 평택시청에서 열린 정장선 평택시장과 김경수 부총장의 대담을 통해 안보와 경제가 결합한 이색적인 도시 평택의 경쟁력과 미래 변화상을 조망했다.

평택에 오면 왠지 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부동산으로도 핫(hot)한 도시이지요?

정장선 평택시장_“지금 평택에 오셔도 손해는 안 볼 겁니다. 평택에 땅을 사서 밑졌다는 분을 저는 보지 못했어요(웃음). 평택시는 대한민국 경제와 안보의 중추(中樞)이니까요.”

김경수 카이스트 대외부총장_“카이스트도 평택에 캠퍼스를 세웁니다. 교수, 학생, 교직원까지 4000~5000명이 정주하지요. 평택이 젊은 도시, 교육 도시로 가는 데 활력소가 될 겁니다.”


‘기정학(技政學)’ 시대의 최대 수혜자


평택은 안보와 경제, 학문이라는 요소가 긴밀하게 맞물려 발전했습니다. 주한미군, 삼성 반도체, 카이스트 등 서로 상이한 요소가 집결한 도시라고나 할까요?

정 시장_“아마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이 없었다면 특별법도 없었고, 삼성 반도체도 어려웠을 겁니다.”

김 부총장_“그랬더라면 카이스트도 평택에 못 들어왔을 겁니다. 수도권 접근이 안 되는 카이스트가 특별법 때문에 진입한 것이니까요.”

정 시장_“주한미군과 가족까지 더하면 한 5만 명 정도의 미국인들이 평택에 살고 있어요. 여기에 외국인 근로자 3만 명을 더하면 평택은 세계인의 도시이기도 하죠. 다문화 공존을 통한 도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정책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결국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른 특별법 제정이 도시 운명을 가른 분수령이 된 건가요?

정 시장_“그렇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서울 용산, 경기 북부에 있던 주한미군을 평택시 험프리스 기지(K-6)로 이전하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했지요.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을 규탄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등 반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평택은 이미 오산 공군기지, 해군 2함대사령부 등 군사기지로 포화상태였는데, 새로 주한미군사령부와 기지가 더해진다고 하니 주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지요. 평택 국회의원이던 저도 거의 매일 현장에 있었기에 지역의 반발을 피부로 접했어요.”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군요.

정 시장_“저희도 고민이 많았어요.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은 국가 안보의 핵심 사안이자, 한·미동맹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 정부가 여러 가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거든요. 저희는 정부 결정을 수용키로 하는 대신 ‘군사 도시’ 평택도 경제적으로 잘 살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정부가 제시해주고,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지요. 여러 번에 걸친 대통령과의 면담, 당국 간 무수한 협의 등 관계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이기도 합니다. 당시 수도권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대기업과 대학 신·증설이 불가능했어요.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에 있는 평택시도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연면적 500㎡ 이상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수 없었습니다. 반도체 공장 설립도 여의치 않았지요. 주한미군 이전 관련 특별법을 적용받게 되면서 그런 규제가 풀려 대기업이 평택시에 올 수 있는 길을 열린 겁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정 시장_“미군기지 이전이라는 ‘안보’와 삼성 반도체라는 ‘경제’가 한 세트로 묶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평택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안보와 경제가 하나의 같은 축을 이뤄 평택으로 이동한 셈이죠. 그게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고요.”

김 부총장_“과거에는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동맹을 맺거나 싸우는 분야 연구를 지정학(地政學)이라고 했지요. 지금의 국가 관계는 기술이 좌우해요. 기술에 따라 동맹도 하고 갈라서기도 하죠. 반도체와 더불어 인공지능, 즉 AI가 부상하는 요즘 그런 경향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어요. 이런 관계를 이제는 지정학이 아닌 ‘기정학(技政學)’으로 불러야 한다는 게 우리 대학 총장(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평소 지론이기도 합니다(웃음). 미군기지 이전, 특별법이 아니었다면 카이스트도 평택에 못 들어왔을 겁니다. 대학도 수도권에는 캠퍼스를 새로 짓지 못하거든요. 특별법 때문에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가 가능해진 거죠. 지금도 대규모 연구 시설, 교육 시설은 수도권에 신규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워싱턴 방문 평택시장 영접하는 전 미 8군사령관


4월 30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한·미 연합 공수 훈련에서 주한 미 특수전사령부(SOCKOR) 장병들이 강하를 위해 치누크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도시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주한미군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겠습니다.

정 시장_“저는 주한미군 지휘부와 수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자택에 초대하기도 하죠. 제게 주한미군은 그저 군인에 지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분들은 대개 1년, 길면 2~3년 한국에서 복무합니다. 이들이 미국이나 해외로 나가면 평택에서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한국에 대해 얘기를 하겠지요. 그래서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소중한 관광객이자 한국을 알리는 외교 사절의 역할을 하게 될 분들입니다. 공무원뿐 아니라 평택 시민들께도 이 점을 늘 강조하고 있어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대한민국에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 추모비는 있는데 미군 전사자 추모비는 없다고 해요. 미국에도 있는 참전 미군 전사자 추모비가 한국에는 없다는 말이죠. 저희가 평택에 미군 전사자 추모비 건립을 준비하는 까닭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 3만5000명이 넘는 미군이 전쟁 중에 생명을 잃었다는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지요. 아직 구상 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향후 반환될 팽성읍 미군 CPX 훈련장에는 미군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곧 미국을 방문해요.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공원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이 있어요. 한국 정부가 건립비를 지원했지요. 이곳을 제가 방문하겠다고 하니 얼마 전 워싱턴으로 귀임한 윌러드 벌러슨 전 미 8군사령관이 몸소 현지를 안내하겠다는 거예요. (추모공원 방문을)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말이죠. 실은 우리가 (미군의 희생에)고마워해야 하는 건데 말이죠.”

김 부총장_“카이스트는 미국 뉴욕대와 함께 뉴욕 현지에 공동캠퍼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캠퍼스에 가동 중인 10개 연구센터 가운데 반도체·인공지능 센터가 있어요. 카이스트 내부적으로는 뉴욕대와 함께 공동 연구 센터를 평택 캠퍼스에 하나 더 두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 역시 평택의 국제화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평택시와 카이스트는 2021년 11월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및 세계 최강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양쪽이 뜻을 모은 결과다. 평택시 입장에서는 미래 국가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산-학-지자체 협력이 본격화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저 반도체가 왔으면’ 하던 바람이 가져온 엄청난 반전


경기도 유일의 국제항인 평택 포승읍 평택항 내 현대자동차 수출 부두의 모습.
카이스트가 평택 캠퍼스에서 그리는 미래 청사진을 소개한다면?

김 부총장_“대전 본원이 35만 평인데, 평택 캠퍼스는 반올림하면 15만 평에 달합니다. 분교라기보다는 카이스트의 확장 캠퍼스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려요. 저희 경쟁 상대인 미국 MIT 전임 교원이 1200명입니다. 카이스트는 현재 700명이고요. 이 규모로도 이미 대전 본원은 만원입니다. 세계 1등을 지향하는 카이스트가 더 많은 연구와 교육 공간을 구하던 차에 마침 평택시장께서 평택 캠퍼스 신설을 제안하셨지요. 평택 캠퍼스는 최소 150명의 교수진이 반도체, 인공지능, 첨단 전자 소재를 연구하고, 교육하게 됩니다.”

정 시장_“한국의 반도체 설비는 평택, 화성, 용인이 핵심을 이루지요. 카이스트 평택 부지는 이들 3개 도시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요. 최고급 인력을 공급하게 될 카이스트 평택 캠퍼스는 한국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 정부도 평택과 용인을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하는 등 지원 태세를 갖추고 있지요.”

김 부총장_“카이스트는 반도체 산업 육성과 기업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2022년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신설했습니다. 또 정부 지원을 받아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도 운영하고 있지요. 연구를 산업으로 연계하자면 최신 반도체 설비를 보유한 산업체와의 협업이 필수적이거든요. 평택 인근에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국내 반도체 유관기업의 60%, 지능형(차세대) 반도체 기업의 90% 이상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차세대 반도체 핵심기술을 평택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카이스트는 평택 반도체 특화단지의 연구·인력 양성 기관으로의 역할도 할 것입니다.”

정 시장_“공을 들인 끝에 삼성 반도체 공장, 카이스트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요즘은 반도체 생산라인 관련 인·허가, 인프라 구축을 정부가 알아서 다 해주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모든 절차는 관련 지자체, 기업, 정치권의 몫이었어요. 부지 매입부터 인·허가까지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정하다시피 해서 가까스로 이룬 결과물이 지금 삼성 반도체입니다. 처음엔 그저 ‘삼성 반도체가 평택에 꼭 왔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에서 시작했지요. 이렇게 반도체가 국가 주권, 국가 패권의 가장 핵심 요소로 등장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할 줄은 그땐 몰랐어요.”

김 부총장_“저희 입장에서 평택이 갖는 입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평택 인근에 동탄, 화성, 수원 등 반도체 사업장들이 있지요. 반도체는 핵심 인력이 없으면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기술입니다. 저희는 그런 인력을 평택에서 키워내서 삼성과 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공급할 수 있어 기쁩니다.”


“청년 창업자들이 평택에 정주하는 생태계 만들어야”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전경. / 사진:삼성전자
요즘도 전력·용수 문제는 반도체 생산 라인 건설에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 조성 시점에도 용수·전력 수급 문제로 골치 아팠다면서요.

정 시장_“평택시는 정부, 삼성전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공업용수 확보에 올인했지요. 당시 국회의원이던 저는 국토교통부장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을 만나 고덕 산단에 공급할 용수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호소했고 용수 물량을 확답받아냈습니다. 반도체 제조에 드는 전력 수급도 마땅치 않았지요. 다행히 2019년 서안성-고덕 송전선로가 건설되면서 숨통이 트였습니다. 인접 지자체, 한국전력, 삼성전자 등 관련 유관 기관이 긴밀히 조율한 끝에 전력 수급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었지요. 이제 카이스트 평택캠퍼스까지 합류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정주 여건 개선에 탄력이 더해질 전망입니다.”

김 부총장_“카이스트는 국가 산업과 관련한 핵심 기술을 이끌어가는 기관입니다. 단순히 학생을 가르쳐 졸업시키는 학교라기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기술을 끌고 갈 핵심 인재를 키워내는 일을 제1의 미션으로 하지요. 평택 캠퍼스를 졸업한 학생이 기업으로도 가지만 상당수는 젊어서 창업을 해요. 핵심 기술에 기반한 창업이라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이들을 중심으로 또 젊은이들이 모이게 되고, 평택은 핵심 기술로 창업하는 역동적 청년들로 넘쳐나는 도시로 발전하게 될 겁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청년들이 평택에 정주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지역사회도 성공하고, 카이스트도 그만큼 기여하게 됩니다.”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의 자국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김 부총장_“미국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나섰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반도체는 설계 능력 못지않게 그걸 싸게 제조하는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인들의 인건비가 꽤 높잖아요. 고(高)임금 노동이 만든 반도체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마련입니다. 미국은 마진이 왕창 붙는 비싼 반도체 쪽으로 치중할 것이고, 중국은 저(低)사양의 저렴한 반도체로 가겠지요. 중간 가격대의 반도체 시장이 남는 셈인데, 이 시장의 사이즈가 엄청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이 시장을 대부분 차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반도체 생태계 조성 정책은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예상해요. 이제는 미국도 내심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설계 능력과 제조 능력을 다 갖췄기 때문에 세계 시장 경쟁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정 시장_“2028년까지 설계에서 제작까지 반도체 자급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미국의 복안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에겐 앞으로 남은 4~5년이 골든타임이라고 하겠지요. 현재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는 1~6공장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반도체 팹(FAB, 생산 시설)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모든 공정을 2030년까지 끝낼 예정인데 투자 금액만 200조원에 달합니다.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전쟁터에 평택이 전위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평택시와 카이스트는 설계 등 고급 인력과 숙련된 노동력을 공급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책무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그에 따라 반도체산업 육성 5개년 계획 수립을 추진 중입니다.”

김 부총장_“우리나라는 대국에 견줘 작은 편이지만 사람들이 똑똑하고 열심히 하니까 기술로 치고나갈 수 있지요. 자동차, 조선, 반도체, 인공지능 등을 들 수 있어요. 그런 인력을 양성하고자 카이스트가 여기 평택에 온 것 아닙니까. 특히 평택은 세계 최고 수준의 K반도체 전략 중심도시이자 글로벌 반도체 허브로 도약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정 시장_“때마침 지난 1월 정부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평택을 미래 반도체 연구기반 시설 거점으로 지정했습니다.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및 교육 거점 조성을 위한 집중 투자의 길이 열린 것이지요. 평택시의 경우 소자, 설계 첨단 패키징을 위한 연구 거점으로 집중적으로 육성됩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술 경쟁이 첨예화하는 시점에서 이뤄진 정부의 추가 투자 결정은 삼성전자와 같은 앵커 기업, 메가 클러스터 내의 소재·부품·장비기업의 연구·개발(R&D)을 촉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손 먼저 내미는 중국 칭다오·옌타이, 일본 마쓰야마


김경수(왼쪽) 카이스트 대외부총장과 정장선 평택시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동력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라고 말한다.
평택과 카이스트의 야망은 세계를 향하는군요.

정 시장_“그렇습니다. 평택은 한국을 넘어 세계도시, 국제도시로 나아갈 겁니다. 미국과 독일 등 기술과 학문이 발달한 도시 규모는 60만~70만 명 정도이지요. 평택이 현재 딱 그 정도 사이즈입니다. 주한미군과 삼성 반도체를 아우르는 평택은 2021년부터 매년 평택 국제 평화·안보 포럼을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한반도 안보 핵심이자 첨단 산업의 선도도시로서 평택시의 역할과 가능성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통로이지요. 또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글로벌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국제도시 평택의 면모를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여파인지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중국 칭다오·옌타이·산둥성, 일본 마쓰야마 등 해외 주요 도시들도 평택과의 교류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달라진 평택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김 부총장_“카이스트는 평택에서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위한 핵심 인재 1000명을 육성할 수 있는 규모로 2029년 개교합니다. 평택 캠퍼스는 차세대 연구·인재양성 허브로 성장할 것입니다.”

- 진행·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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