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수상한 독서 모임

2024. 5. 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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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찾는 손님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간혹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책방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개 동네에서 뭔가 일을 꾸미는 활동가들이거나 독서 모임 구성원일 때가 많다.

다른 책방 사장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분들이 독서 모임 때 읽을 책을 여러 권씩 사는 일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헌책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똑같은 책을 두 권 이상 내놓지 않으니 독서 모임에서 단체로 온다고 해도 같은 책을 여러 권 팔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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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을 찾는 손님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절판되어서 헌책방을 돌며 특정 책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히 목표로 삼는 책 없이 슬슬 돌아다니다가 그때그때 끌리는 책을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간혹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책방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개 동네에서 뭔가 일을 꾸미는 활동가들이거나 독서 모임 구성원일 때가 많다. 책방 주인들이 반기는 분들은 역시 독서 모임 쪽이다. 책을 좋아해서 모임까지 하는 것이니 한번 방문하면 책도 많이 사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 구성원들이 책방을 찾는 건 책이 있는 공간을 탐방하면서 자신들의 모임에 크고 작은 자극을 주려는 이유일 테다. 다른 책방 사장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분들이 독서 모임 때 읽을 책을 여러 권씩 사는 일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간을 판매하는 가게의 이야기다. 헌책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똑같은 책을 두 권 이상 내놓지 않으니 독서 모임에서 단체로 온다고 해도 같은 책을 여러 권 팔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에 그와 비슷한 일이 생겼다.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 세 명이 우리 헌책방에 들어오더니 처음엔 자기들끼리 신나게 책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이윽고 화제가 독서 모임으로 바뀌니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그들이 독서 모임 구성원인 것을 알아차렸다. 셋은 아마도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마음이 맞아 독서 모임을 만든 것 같았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는데, 책 한 권 때문에 일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세 명이 거의 동시에 “아, 이 책이다!” 하면서 책장의 한 곳을 가리켰다. 조만간 그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할 예정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헌책방이다 보니 당연히 재고는 그 책 딱 한 권뿐이었다.

셋은 서로 의견을 나누더니 책 한 권을 셋이 공유해서 읽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세 명이 동시에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책값을 정확히 3분의 1로 나눠 각각 결제해 달라는 거였다. 안 될 것 없다. 하지만 뒤에 적어놓은 책 가격이 2000원이다. 2000원은 3으로 나눠 딱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결과는 ‘666.666…’ 뭐야 이거. 등골이 싸늘할 정도로 사악해 보이는 독서 모임이 아닌가!

나는 하는 수 없이 책값을 2100원으로 계산해 신용카드 세 개로 700원씩 결제하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한 명에게 주며 알아서 세 분이 나눠 가지라고 했다. 그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알겠다면서 심드렁하게 인사를 하곤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헌책방엔 이런 수상한 손님들이 자주 온다. 하지만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너무 수상한 눈빛으로만 보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나도 어느 가게에서는 꽤 수상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당연히 그럴 것 같다. 내가 봐도 가끔은 내가 좀 수상한 구석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오죽할까.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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