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샷~ 세월을 날리다

백재연 2024. 5. 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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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여가 ‘파크골프’
폭발적 인기에 곳곳 조성
주로 공원·하천 근처 산책로 위치
“노년층 전용 공원인가” 잡음도


지난 8일 오후 1시쯤 서울 구로구 안양천변에 위치한 구로안양천 파크골프장. 18개 홀이 있는 파크골프장은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골프장 옆에 놓인 나무 벤치에서 과일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즐기던 구로파크골프협회 소속 ‘개나리클럽’ 회원 4명도 라운딩을 시작했다.

클럽 회원들은 2년 전부터 파크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회원 최모(70)씨는 매주 5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구로구에 거주하는 최씨는 “집 바로 근처에서 잔디를 걸으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데, 관절에 무리도 안 가니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클럽 회원 오모(66)씨도 “골프를 치던 사람들은 나이를 하나둘 먹으면서 멀리 다니기 힘들어지니까 파크골프로 넘어오고, 골프가 비싸서 안 치던 사람들은 파크골프가 저렴하니까 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고령화시대에 파크골프가 노년의 여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의 노인들이 소일거리 가운데 하나로 파크골프를 택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일부 지자체는 파크골프장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용으로 쓰던 공원 등의 공간을 특정 집단만을 위한 장소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크골프는 일반적인 골프와 마찬가지로 18홀을 돈다. 모든 홀을 도는 데 약 1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골프는 10여 개의 골프채를 들고 교외까지 나가야 해서 번거롭다. 반면 파크골프는 집 주변 하천이나 공원에서 파크골프채와 플라스틱 공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입장료도 저렴한 편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은 대부분 무료로 예약을 받는다. 유료 골프장도 입장료가 1만원 내외에 그친다.

골프는 어떤 채를 쓰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스윙법이 필요하다. 그만큼 번거롭다. 다만 파크골프는 일직선으로 공을 가볍게 툭툭 치기만 하면 된다. 공을 치는 데 큰 힘이 들어가지 않다 보니 노인의 관절에도 별다른 무리가 가지 않는다. 집 주변에서 천천히 잔디밭을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점도 노년층이 파크골프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서울 구로파크골프협회 소속 개나리클럽 회원이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안양천파크골프장에서 스윙하고 있다.


노년층 사이에서 파크골프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2018년 2만6462명 수준이던 대한파크골프협회 회원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14만2664명까지 폭증했다. 약 7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대한파크골프협회 관계자는 24일 “최근 들어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하거나 일부 대학에도 파크골프학과가 생기는 추세긴 하지만 협회 회원의 대부분은 시니어층”이라고 전했다. 파크골프장의 숫자도 덩달아 증가했다. 2019년 전국 226곳에 그친 파크골프장은 올해 상반기 현재 398곳까지 늘어났다.

높은 인기에 골프장 예약도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시의 경우 대부분 자치구에서 파크골프장을 1개씩 운영하고 있다. 영등포구 내 파크골프장의 경우 하계 기간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마다 18팀씩 예약을 받는데, 모든 예약이 거의 다 찬다고 한다. 신청 수요가 너무 많아 다른 지역구민은 예약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영우 영등포파크골프협회 회장은 “영등포구민 중 약 1200명이 협회 회원이다. 매년 봄·가을마다 신규 회원을 받는데 이번 봄에는 120명 모집에 약 400명이 지원해 추첨으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며 “1200명을 나이순으로 세워봤을 때 올해 73세인 51년생 회원이 딱 중간이다. 가장 고령인 회원은 92세”라고 설명했다.

파크골프 이용자들은 운동을 하며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기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모(59)씨는 “같은 클럽에 83세 할아버지가 있는데 집에서 맥없이 지내며 건강도 잃고 우울증도 겪었다”며 “파크골프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며 활력을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파크골프와 같은 여가활동이 노년층이 겪는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에게는 남는 게 시간인데, 그 시간을 무언가를 하면서 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의미가 있다”며 “녹색의 자연을 보며 우울증도 예방하고 사회적 관계를 활성화해 고독사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 여가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인 여가는 노인 돌봄과 건강, 경제 문제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 여가복지시설은 노인 복지관과 경로당, 노인 교실 정도다. 이 세 가지 유형 외에도 파크골프와 같은 다양한 노인 여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파크골프장을 둘러싼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부 파크골프장은 주로 공용 공원이나 하천 근처 산책로에 위치한다. 특정 연령층을 위해 지역 주민이 함께 사용하던 하천변이나 공원을 파크골프장으로 개조하는 것을 두고 반발도 존재한다. 동작구청은 최근 대방공원 잔디광장에 파크골프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잔디광장이 파크골프를 치는 노년층만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7일 대방공원에서 만난 학부모 이모(36)씨는 “파크골프장 때문에 아이들이 뛰놀던 잔디 구장이 사라지게 생겼다.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동작구청 측은 “추가적인 주민 설명회를 열고 설문조사를 실시해 주민 의견을 수렴한 이후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글·사진=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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