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많다는 학생인권조례, 획기적으로 바꿔줄 '이것'

유윤종 2024. 5.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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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조례를 지역별로 만들다보니 허점, 독소조항 많아... '학생인권법' 필요

[유윤종 기자]

지난 4월, 충남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재의 절차에서까지 가결되었다. 현재는 충남교육청이 폐지에 대해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그리고 4월 말,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됐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재의를 요구해 둔 상태다. 그 밖에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교육감 또는 국민의힘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고?
 
▲ 2024년,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행동 2024년 4월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을 막기 위한 피켓팅을 하고 있다.
ⓒ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고 드는 이들은 조례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근거가 빈약하거나 억지 주장이다. 예컨대 임신·출산을 이유로 학생을 차별하지 말라는 원칙을 명시한 것을 두고서 성관계와 임신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학생인권 보장이 이른바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자료상 인과관계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단지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무섭게 대하지 않으니까 교사들에게 대드는 것이다'라는 식의 단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논리일 뿐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작년 7월 28일, 국회에서 근거 부족을 지적받자 '학생인권조례가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생겨서 문화를 조성했다' 운운하는 두루뭉수리한 변명밖에 내놓지 못했다.

학교 현장에서 지난 10여 년간 뚜렷하게 드러난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내용 및 효과는 바로 학생에 대한 폭력, 불합리한 두발·복장 규제 따위를 억제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힘든 이유가 학생의 머리칼과 복장을 단속하지 못해서라니, 이건 오히려 교사들에게 모욕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학생인권조례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고쳐야 할 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교권을 떨어뜨려서'나 '학생인권만 너무 보장해서'와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도에선 두발 자유, 인천에선 두발 규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인천 지역의 고등학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두발 단속을 당해서, 교사에게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바로 옆 동네인 (경기) 부천은 머리 길이는 자유화됐다던데 우리는 왜 계속 단속해요?" 그러자 그 교사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싫으면 경기도로 이사 가든가?"

조례는 지역의 자치 법규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 그리고 2020년 충남과 2021년 제주까지 총 6개 지역에서 제정된 바 있다. 17개 광역 지자체 중 나머지 11곳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두발·복장규제 등의 반인권적 학칙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얼마 전에도 대전 지역에서 '앞머리가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하는' 규정으로 단속하는 고등학교의 사례가 알려졌다(관련기사 : '머리는 스포츠형'... 대전 중·고교 80% 두발 규정 존재 https://omn.kr/1wctg).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런데 어느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지에 따라서, 어느 학교에 재학 중인지에 따라서 인권이 보장되고 아니고가 갈린다는 것은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19년 한국 정부에 '영토 내의 모든 환경에서 간접체벌 등의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라고 권고한 이유도, 체벌 금지 등 인권 보장 조치가 지역에 따라 보장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었다.

지역에 따라 학생의 인권 보장 정도가 다르다는 문제의 해결책은 당연히 모든 지역에서 학생의 인권이 잘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국 모든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져 왔다. 그러나 여러 오해와 악선전에 가로막혀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 못 한 지역이 많다. 주민 발안, 교육청 제출 등으로 도의회의 문을 3번이나 두드린 경남이 대표적이다. 지역의 주류 정치 성향과 의회 구성상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요원한 지역도 많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란 수단만으로는 전국 모든 지역, 모든 학교 학생들의 인권이 동등하게 보장되게 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미 제정된 조례들의 허점
 
▲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 폐지안 통과  26일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조례를 지역별로 각자 만들다 보니 그 내용에도 차이가 있는데, 개중에는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조항이 빠져 있거나 인권 침해를 허용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가령 두발규제 관련 내용을 보더라도 전북, 충남 등의 학생인권조례는 두발을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게 열어 두고 있다. 경기 학생인권조례도 "두발의 길이를 규제해선 안 된다"라고만 하고, 정당한 사유(학생의 머리 스타일을 규제할 정당한 사유란 게 도대체 뭐가 있는진 모르겠으나)와 절차에 따라 학칙으로 두발 규제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충남 학생인권조례는 '반성문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조례 제정 논의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나 학생인권조례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학생이 정말 반성을 하는 경우에는 반성문을 작성하게 할 수 있지만, 반성을 하지 않는데도 반성문 작성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충남은 이런 상식적인 내용도 명시하지 못했다. 종교 수업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등도 없다.

제주 학생인권조례도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에 예시된 차별 사유를 8개로 대폭 줄이고 참여권 등의 내용을 축소시킨 점이 제정 당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논의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허용하기 위해서 예시된 사유를 줄인 정황이 명백했기 때문에, 사실상 차별 조장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제28조에서 '학교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한 정보나 상담 내용 등을 본인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선 안 된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의회는 조례 통과 과정에서 "보호자는 제외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즉, 상담 등을 통해 학생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됐을 때 학생의 동의 없이도 이를 보호자에게 알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사실상 '아웃팅' 등의 인권 침해를 허용한 독소 조항이다.

이처럼 지금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들에도 여러 문제점,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 교육청과 지방의회는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개선할지, 학생의 인권을 어떻게 더 촘촘하고 철저하게 보장할지를 고민해야 마땅하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고, 시대의 변화 속에 더 진전된 인권 보장 내용과 기준을 담아 나가야 한다. 실제로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2021년 개정을 통해서 '학교는 복장을 규제할 수 있다'라고 허용한 부분을 삭제했다.

학생인권을 충분히 지키지 못하는

마지막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한다고 해서 학생인권이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2021년, 서울의 학교 수십 군데에서 '속옷 색깔 규제', '양말 색깔 규제' 등 불합리한 복장 규제 학칙들이 다수 발견되어 시의회에서 지적받은 적이 있다.

서울은 2012년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어 10년 차를 맞이하던 시점이었는데도 이러한 규칙이 시행 중이었다. 일각의 생각처럼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한다고 해서 학생인권이 곧바로 완전히 잘 실현된다거나, 학생인권조례를 어긴 학교·교원 등이 어떤 조치를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사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을 개정하도록 유도하고, 인권 침해가 일어났을 때 구제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가해자를 바로 처벌하는 식의 강제적인 것이 아니다. 구제 절차도 주로 인권 침해의 시정과 재발 방지를 권고하는 것이다. 인권 침해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학교의 규칙이나 관행의 문제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접근 방법은 반발이나 법적 분쟁의 여지를 줄이고, 학교의 문화와 구조를 바꾸어 가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의 강제성이 약하다는 점은 명백히 반인권적 학칙 등이 개선되지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교육감이나 학생인권옹호관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서,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이나 구제 조치의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북에선 지역 사회에서 '교권 침해' 논란이 심해지자, 체벌 등의 인권 침해가 확인되어도 교육청이 제대로 조치하기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학생인권은 법률과 조례 모두로 보장받아야 한다
 
▲ 2021년 11월 학생인권법 통과 요구 기자회견 2021년 11월 15일, 학생인권법 통과를 요구하는 국회 앞 기자회견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바로 이처럼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학생인권을 조례뿐만 아니라 법률로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2006년 최순영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이 그 시초였고, 2021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아이디어이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로 충분히 학생인권이 보장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초·중등교육법'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초·중등교육법' 제8조는 학칙을 학교장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하고 있어서, 반인권적이거나 문제가 있는 학칙이 있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전혀 감독·시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 전국 모든 지역에서 학생의 인권이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2021년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이나 2024년 강민정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특별법은 공통적으로, 교육부·교육청에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 수립 등의 의무를 부여하고, 학교 규칙이 학생인권을 침해할 경우 시정 조치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교육청에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나면 구제하는 창구를 두게 하는 내용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이어지는 등 그나마 몇 지역에 있던 학생인권의 안전망이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시민사회단체들은 학생인권법 통과를 요구하는 서명을 모아서 22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학생인권법 통과 서명 링크) 교육청과 교육부, 국회 등은 학생인권조례의 '진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하루빨리 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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