콸콸 흐르는 계곡 사이 절경, 아름다운 '한국의 서원'

문운주 2024. 5. 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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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1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전국의 모든 서원이 철폐됐다.

당시 서원은 100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아 있는 서원 중 9곳이 세계 유산인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게 된다.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2019년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으로 다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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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2박3일 여행 ⑨] 세계 유산 등재, 회재 이언적의 학덕 기리는 옥산서원

[문운주 기자]

▲ 옥산서원 세계의 유산 '한국서원' : 소수서원, 남계서원,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9개)
ⓒ 문운주
     
1871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전국의 모든 서원이 철폐됐다. 당시 서원은 100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아 있는 서원 중 9곳이 세계 유산인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게 된다.

지난 달 6일, 경주 양동마을에 이어 옥산서원을 찾았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다. '옥산 구곡' 중 3곡이다. 외나무다리, 용추폭포, 세심대가 있다. '옥산 구곡'은 이언적 사후에 이가순이 옥산천을 따라 9곳을 선정 명명했다. 

많은 물이 바위 사이로 부서지면서 콸콸 쏟아져 흐른다. 고목과 계곡물소리, 너럭바위 등 절경이 찾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선조 들은 일찍부터 혼자 사는 즐거움을 터득한 듯하다. '탐욕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기 위함일까. 
 
▲ 옥산천 옥산구곡 중 3곡으로 용추계곡, 외나무다리, 세심대 등이 있다.
ⓒ 문운주
 
 
▲ 옥산천 외나무다리 외나무 다리는 옥산 서원 정문인 역락문으로 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서원을 찾으라는 의미
ⓒ 문운주
   
▲ 세심대 회재 이언적이 이름을 짓고, 퇴계 이황이 쓴 세로글씨를 가로로 펼쳤다.
ⓒ 문운주
계곡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는 옥산 서원 정문인 역락문으로 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서원을 찾으라는 의미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세심대다. 회재 이언적이 이름을 짓고, 퇴계 이황이 글씨를 썼다.

세심대는 마음을 씻는 바위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음을 씻고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깊은 산속인 탓일까. 봄이 늦게 찾아온다. 용추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청아하다. 흥에 겨워 계곡을 따라 독락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회재 이언적이 7년간 거주했다는 곳
 
▲ 옥산정사(독락당)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
ⓒ 문운주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낙향하여 7년간 기거한 곳이다. 2010년 양동마을 일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531년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 좌천되자 낙향하여 증축했다. 주변의 4개의 산과 5곳의 계곡에 이름을 붙이고 '사산오대'라 칭했다.
독락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다. 지붕은 팔(八) 자 모양으로 한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특이한 것은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나무로 살을 만든 창을 달았다. 옥산천 냇물을 바라보기 위한 공간 구성이다. 바깥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온 차경의 정원문화다.
 
▲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 문운주
 
▲ 비각 옥산서원에 있는 회재 이언적 비각
ⓒ 문운주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강학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동·서재가 있다. 구인당 뒤편에 제향공간으로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가 있다. 현판 글씨는 아계 이산혜와 추사 김정희가 썼다.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2019년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으로 다시 등재되었다. 이른바 전학 후묘로 공부하는 장소를 전면에 배치하고 제사 지내는 장소를 뒤에 배치했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인 무변루의 건물 창은 나무문이다. 정문인 역락문쪽에 외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문을 닫으면 외부 시선이나 소음이 차단된다. 계곡 물소리가 공부에 방해되었던 때문이 아닐까.

무변루는 한석봉, 옥산서원의 바깥쪽은 추사 김정희, 안쪽은 아계 이산해의 글씨다. 구인당은 한석봉, 세심대는 퇴계 이황이 썼다. 그리고 옥산정사는 퇴게 이황의 글씨다. 현판은 글씨를 받거나 글씨체를 집자하여 제작한다고 한다.

회재 이언적의 발자취가 있는 양동마을, 옥산천, 독락당, 옥산서원을 둘러보고 마지막 여정을 끝낸다. 이번 여행은 형산강을 따라 펼쳐지는 신라 1000년과 조선시대 전통가옥, 서원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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