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 찍은 게 작품이 되다니... 놀라운 그림책

전영선 2024. 5. 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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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 내 편견을 깨뜨려준 고맙고도 강렬한 책 <점>

[전영선 기자]

아이들 덕분에 눈 뜬 세상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세상 하나를 꼽으라면 '그림책 세상'이라고 말하겠다.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그림책'이라는 세상에는 눈 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책을 처음 만난 곳은 서점이 아니고 놀이터였다. 그림책 전집을 파는 외판원을 통해서였는데 그때  만난 그림책-에릭 칼의 그림책이었다-은 이야기와 그림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전집을 선호하지 않음에도 덜컥 구매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가온 그림책 세상. 이후 다양한 그림책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에 남는 그림책은 작가를 기억하게 했다.

데이비드 위스너, 모니카 페트, 레오 리오니, 레이먼드 브릭스, 로렌 차일드, 앤서니 브라운, 에즈라 잭 키츠, 윌리엄 스타이그, 존 버닝햄, 패트리샤 폴라코, 피터 레이놀즈, 하이타니 겐지로와 같은 외국 작가나 권정생, 김재홍, 백희나, 윤석중, 이수지, 이호백 같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기억 속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구나,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미술서이자 철학서구나.

프란츠 카프카는 책을 도끼에 비유했다. 그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도끼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준 그림책이 있다. 바로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 <점>이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아이
 
▲ 피터 레이놀즈의 "점" 피터 레이놀즈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저서로는 대표작 "점" 외에도 "느끼는 대로", "언젠가 너도", "너를 보면" 등이 있다.
ⓒ 전영선
 
어려서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수시로 주변을 떠돌았고 대개의 위인전에도 각별한 태몽과 계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라며 한 번도 위인이 되겠다거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서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보다는 통제의 말을 주로 내뱉었다.

그러다 피터 레이놀즈의 <점>을 만났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뿌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미술시간이 끝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교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도화지는 백지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아이 곁으로 선생님이 다가온다. 선생님은 텅 빈 하얀 도화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선생님의 이 말에서부터 그림책에 빨려 들었다. 빈 도화지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이렇게 대꾸한다. 

"놀리지 마세요! 전 아무것도 못 그리겠어요!" 

아이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자신을 선생님이 놀린다고 생각한다. 표정이 뾰로통하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에도 선생님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연필을 손아귀에 감아쥐고 도화지에 힘껏 내리꽂는다. 도화지에 찍힌 선명한 점 하나.

그 점 하나가 선생님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무척 궁금했다.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면 아이의 불손한 태도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작에 가만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흠... 도화지를 들어 가만히 점을 바라보는 선생님. 그러고는 아이 앞에 도화지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점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거침없이 휘갈겨 쓴다. 그렇게 과제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간 아이. 아마도 아이는 점을 잊었을 것이다. 근사한 액자 속 점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대수롭지 않았던 점은 그다음 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아이에게 다가선다. 멋진 액자에 담겨 미술실에 걸린, 그것도 선생님의 책상 뒤 벽면에 걸린 자신의 점을 발견한 아이. 액자에 담긴 자신의 그림을 본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놀랐을 테고, 왠지 모르게 뿌듯했을 테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금박을 두른 액자 속에 걸린 점 하나. 자신의 그림을 보며 아이는 중얼거린다. 

"저것보다 더 나은 점을 그릴 수는 있겠어!" 

이후 아이는 온갖 점을 그려 나간다. 크기도 색깔도 각기 다른 수많은 점들. 마침내 점을 그리지 않고도 점을 표현할 줄 아는 경지에까지 이른 아이는 전시회까지 열게 된다.

아마도 여기서 그림책이 끝났더라면 이 그림책을 두고 '도끼'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림책의 강렬함은 아이가 전시회에서 만난 또 다른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낌없이 놀라움을 마련해 놓았다.

전시회에서 아이의 그림에 반해 사인을 부탁하는 한 꼬마. 아이만큼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꼬마에게 아이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한다.

아이의 말에 꼬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꾸한다. 꼬마는 선 하나도 자를 대고 그려야 할 정도라며 자신의 그림 실력을 부끄러워한다.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랬듯 꼬마가 들고 있는 도화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선을 그려보라고.

꼬마는 용기를 내어 선을 그린다. 구불구불한 자신만의 선 하나를. 꼬마의 구불거리는 선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꼬마에게 그림을 내밀며 말한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그림책을 덮고 한참 넋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 어떻게 아이들을 대했던가 하는 반성이었고, 나는 이런 어른을 왜 한 번도 만난 기억이 없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이후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미리 판단하고 단정 짓는 태도 대신 숨은 잠재력을 들여다보려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림책에 '도끼'를 갖다 붙인 건 괜한 허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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