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가고 싶은데 갈 학교 없다"는 성인 장애인들, 왜?

조정훈 2024. 5. 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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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초·중등과정 졸업 앞둔 당사자·단체 기자회견... "고교과정 진학 방안 마련하라"

[조정훈 backmin15@hanmail.net]

 장애인단체들은 24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또한 중학교를 졸업한 성인 장애인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구시교육청에 노력을 촉구했다.
ⓒ 조정훈
 
"어릴 적 동생들이 학교 가고 나면 저는 혼자 남아서 방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학교를 가고 싶어도 저는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처음 다닌 학교가 질라라비장애인야학입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박경화씨는 성인이 돼서야 야학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다. 지금은 한글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매일 학교에 가는 날이 즐겁고 기다려진다고 한다.

박경화씨는 올해 8월 중학교 과정을 졸업한다. 하지만 더 이상 배울 수 없다. 공부를 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장애인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은데 고등학교 과정에 진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성인 장애인의 의무교육과 학력취득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전국 최초로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특수(초등)과정을 마련해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2021년에는 중학과정 1단계를 신설해 성인 장애인이 중학과정 졸업 학력인정서를 전국 최초로 발급해 중학과정을 이수하면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6년의 과정을 거쳐 초·중등 교육을 이수한 성인 장애인들은 올해 8월 첫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싶지만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검정고시를 통한 졸업자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검정고시는 어려워 엄두를 내기도 힘들다.
 
"성인 장애인 고등학교 과정 진학 방안 마련해야"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장애인단체들은 24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0일 뒤 중학교를 졸업하지만 진학할 학교가 없다"며 "성인 장애인들의 고등학교 과정 진학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평생 글자를 몰라 세상이 무서웠고 못 배운 한을 가슴에 새기고 살다가 학교를 다니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며 "이제 고등학교에 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나이가 많아 특수교육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고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에는 특수교육 과정이 없어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

이들은 대구시교육청에 중학과정 졸업생들의 고등학교 진학방안을 마련하고 중증 장애성인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또 국회와 교육부에 성인 장애인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평생교육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황보경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은 "강은희 교육감이 개교식에 오셔서 '학령기 때 소외받았던 성인 장애인의 교육에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며 "이제 우리가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지금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2018년 저희를 위해 학력 인정 과정을 열어주셨던 교육감에게 우리의 염원을 기대하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어릴 적 학교 문턱 앞에서 좌절했던 학생분들이 적게는 40대, 많게는 60대에 접어들어 6년간 공부하고 중학 과정을 졸업할 예정"이라면서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와 대구교육청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이어 "교육부에 여러 차례 협의를 했지만 여전히 검토만 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분노가 치밀고 절망스러워 이렇게 교육청 앞에 섰다"고 덧붙였다.

대구교육청 "장애 성인은 특수교육 의무대상자 아냐"

대구시교육청은 장애 성인은 특수교육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산과 교원을 확대 지원하는 것은 현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선 만 3세부터 만 17세까지 특수교육 대상자를 의무교육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성인 장애인(평균 나이 54.4세)은 특수교육 의무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평생교육법상 교육감이 설치·지정할 수 있는 문해교육프로그램은 초·중학교 수준으로, 고등학교 학력인정 문해교육과정을 설치·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현재 장애성인은 학력인정 중학과정 이수 후에도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해 학습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앞으로 평생교육법 개정이나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등이 이뤄진다면 여건에 맞춰 지원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의 55.2%는 중학교 이하의 교육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고등학교 과정에 진학하지 못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과 심한 장애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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